혼자 잘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은 즐겁게 다가왔다. 어느 정도의 신념과 취향이 자리 잡은 나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설계하는 일은 지루한 일상을 들뜨게 만들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오래 가져갈지, 잘하고 싶은 것을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고민하는 시간은 내가 살아온 어느 때보다도 생산적으로 느껴졌달까. 더 이상 넘어야 할 관문이 없는 삶. 허들이 사라졌으니 나는 내 속도대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늙어서도 오래 누릴 수 있는 취미를 위해 중학생 때까지 치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고, 집에 피아노를 들였다. 언젠가 꼭 배워보고 싶었던 기타를 치기 위해 학원도 등록했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이렇게까지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본 적이 있었나, 내 인생에 가장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혼자 살겠다는 결심이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는 시기였다. 그러던 중에 떠난 여행이었다.
5월,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 사이에 끼어 있던 목요일 덕분에 다섯 날이 온전히 비어있던 연휴였다. 나는 친구와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별 후 방황하던 시기를 지나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을 즈음, 친구가 제안한 여행이었다. 날씨와 바다는 5월답게 제 몫을 다 해주었고, 나는 그동안 마음에 남아 불편하게 했던 이별 후의 잔재 같은 것들을 탈탈 털어냈다.
해가 저물 무렵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예약한 6인실 도미토리에는 이미 중국인 네 명이 머물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중국어 대화 소리에 친구와 나는 방을 벗어나 마당으로 나왔다.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던 중, 친구가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그때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온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는 가볍게 거절 의사를 내비쳤지만, 계속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 앞에서 차마 매몰차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는 못했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사람과 나누는 짧은 대화를 단호하게 끊어내기도 애매하다 싶었고, 통화하러 간 친구가 돌아오면 대충 마무리 지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대화를 이어가는데 한 몫했다. 나는 주로 대답을 하는 쪽이었는데, 대답에 따라오는 적당한 리액션은 처음 보는 사람을 향한 경계의 마음을 풀어지게 했다. 그는 나보다 두 살 어렸고,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친구의 통화로, 나는 처음 본 사람과 개인 정보를 꽤 공유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친구가 돌아오기 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연락처를 물었다. ‘강릉에서 만났는데, 실제로는 가까이서 사는 사람이라는 게 신기해서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연락처를 건넸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 그는 종종 연락을 해왔다. 퇴근 후 내가 사는 쪽으로 일부러 오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분명한 호감을 드러냈지만, 나는 부담스러웠다. 비혼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이제 막 마음을 먹은 때였고, 연애 같은 것에는 큰 관심도 없었다. 물론 혼자 살기로 결심했을 때, 평생 연애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과 분리된 연애, 자유로운 관계에서 서로의 독립적인 삶을 지지하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삶을 생각한 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것은 언젠가 가능할지도 모를 미래의 이야기였지, 지금 당장 현실로 들이밀어질 장면은 아니었다. 그래서 불쑥 나타나 ‘연애하자’는 연하남의 제안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몇 차례 거절 의사를 전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불편하게 하지 않겠다’며 연락을 이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에게 처음과는 달리 마음이 조금씩 기울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내게, 함께 여행했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결혼할 것도 아니잖아.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 ‘어차피’와 ‘가벼운’에 찍힌 방점에 나는 결국 그 연하남의 ‘사귀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결혼이 없는 연애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