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는 결혼

by 김현주

굳이 따지자면, 나는 을의 입장이었다. 관계 안에서 주도권을 쥐기보다는, 상대에게 맞추는 쪽에 더 가까웠으므로, 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내 의견을 내기보다는 상대의 선택을 따르는 일이 많았고, 결혼 이야기가 오가던 연애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굳이 분란을 만들기보다는, 내가 받아들이면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여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연애가 끝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결혼으로 이어질 거라는 전제는 나를 더 작아지게 했다. 계속 이어져야 하는 관계 안에서 나는 불화를 피하는 대신 수용을 택했다. 관계가 끊어지면 안 된다는 약간의 강박이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앞으로 살아갈 지역이나 집, 삶의 방향을 정하는 문제 앞에서도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러자고, 혹은 그러겠다고 답했다. 뭐 구체적으로 준비한 결혼이라기보다, 슬슬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정도였는데도 그랬다. 다투는 것보다는 나를 맞추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늘 설명하기 어려운 찝찝함이 따라다녔다. 이별 후, 나는 친구들에게서 ‘얼굴이 폈다’라는 말을 들었다.


연애가 연애로만 지속되는 관계는 달랐다. 결혼으로 이어질 필요가 없는 연애,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관계 안에서 나는 더 이상 수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갑과 을의 구도가 사라진 연애에는 갈등이 생겼지만, 이전 연애에서 늘 따라다니던 찝찝함은 사라졌다. 연애가 연애로만 존재한다는 생각은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게 했다. 문득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에 마음이 서늘해질 때도 있었지만, 관계 안에서 종속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연인의 눈치를 살피거나 기분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연애였다. 나는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는 연애 초반부터 결혼에 큰 뜻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강경한 비혼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게 결혼이 인생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나보다 두 살 어린 그에게는, 결혼을 전제하지 않은 만남이 오히려 산뜻한 소식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혹시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는 결혼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종종 함께하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가 말하는 미래에는 늘 결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에게 결혼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내 생각을 존중받았듯, 나 역시 결혼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을 존중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소위 말하는 ‘결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므로 우리에게는 당장 결혼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결론 내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만난 지 3년이 넘었을 때,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와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 사람 앞에서 나는 내가 결혼을 ‘선택’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연애 안에서 어느 때보다도 안정적이었다. 그 안정감은 관계가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내도 괜찮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내 생각을 앞서 결정하지 않았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결혼해도 나는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이 다시, 내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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