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원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는 사실이, 인생에서 꽤 큰일을 해낸 것처럼 다가왔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재미도 매일 새로웠다. 낮에는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저녁에는 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하루 동안의 안부를 주고받는 시간이 더없이 따뜻했다. 결혼을 한 나는 서른이 넘은 성인이었고, 집과 안정적인 수입, 마음이 맞는 짝까지 함께였다. 무언가를 할 때 큰 제약이랄 게 없는 삶이었다.
주말 아침에는 알람 없이 눈을 떴다. 늦잠을 자도 괜찮았고, 아무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도 불안하지 않았다. 장을 보러 나갔다가 마음에 드는 빵집을 발견하면, 그날의 계획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큰 기복 없는 하루, 평화롭고 안정된 마음. 나는 결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결혼생활에 뒤따르는 사소한 다툼이나 시댁과의 어려움 같은 문제들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눈감아줄 수 있을 만큼 결혼생활이 만족스러웠다. 편안함에서 오는 행복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둘이 보내는 시간에 부족함이 없었으므로, 아이가 있는 생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 전, 비혼을 생각하던 시절에도 나는 결혼과 출산을 같은 문제로 묶지 않았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출산 역시 선택의 범주라고 여겼다. 다만 출산이라는 것이 너무 막연했기에, 쉽게 ‘안 낳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나는 남편과 둘이 생활하는 삶의 루틴을 깨고 싶지 않았다. 오랜 시간 이 평화를 충분히 누리고 싶었다. 이 평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결혼 전에 내가 꿈꾸던 삶을 결혼해서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딩크로 사는 삶에 자꾸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가 생긴다면 우리의 생활이 지금보다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둘이 사는 삶도 좋지만 아이가 있는 삶도 살아보고 싶다는 남편 앞에서,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지금의 삶을 흔들고 싶지 않은 마음과, 시기를 놓치고 나면 훗날 아이를 갖고 싶어도 쉽게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남편보다 두 살이 많았고, ‘노산’이라는 타이틀을 달만한 나이 앞에 있었다. 딩크로 살겠다고 확실히 선언할 만큼 확고한 마음도 아니었다. 이 평온을 지키겠다고 고집하다가 선택지 자체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뒤따랐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1년 동안 금연하고, 그 때 다시 생각해볼게’
1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주는 유예의 시간이었다. 혹시 마음이 바뀌어서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건강을 위해서도 모두에게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새해가 되자마자 남아있던 담배를 모두 처분하고 금연을 시작했다. 남편이 금연하는 1년 동안 나는 아이 없이 사는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었다. 늦은 밤, 둘이 소파에 나란이 앉아 영화를 보다 그대로 잠이 들던 날들,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떠나는 여행, 늦은 밤 드라이브. 함께 배우기 시작한 운동과 취미생활까지. 이 생활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리고 남편은 약속대로 금연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