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미래에 단란한 가정이 있었어

by 김현주

결혼하자 주변에서는 2세 계획에 대해 물었다. 아이에 대한 큰 생각이 없던 나는 ‘아직은요’라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가끔가다 ‘그래도 얼른 낳아야지’ 같은 말이 뒤따라왔다. 관심으로 위장한 오지랖이 반복되면 정말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이 쌓인다. 나는 자라는 내내 그 조급함을 체득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말이 불편했다. 부부에게 아이를 언제 낳을 거냐는 질문은 무례하게 느껴졌다. 미혼을 바라보는 딱한 시선이 무례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게 바로 ‘사랑’이고, ‘정’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나는 별다르게 대꾸하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를 크게 좋아하지도, 아이를 당장 낳고 싶지도 않은 나는 그저 웃으면서 ‘아직은요’라고 말하는 쪽을 택했다.


남편이 금연한 지 1년 반쯤 되었을 때, 그는 약속을 지켰으니,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딩크로 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각자의 커리어를 쌓으면서, 연차가 쌓일수록 올라가는 연봉으로 적당히 여유로운 삶을 누리면서, 주말에는 피크닉을 가고 함께 테니스를 치러 다니면서, 나는 그렇게 남편과 늙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그는 금연하는 내내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생각했다. 우리가 엄마와 아빠가 되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집을. 아이와 함께 피크닉을 가고 테니스 치며 보내는 주말을 꿈꿨다. 남편에게 제안한 1년이 나에게는 유예의 시간이었지만, 남편에게는 준비의 시간이었다. 남편은 약속을 지켰으니,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금연하면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건 확실히 나였다. 이제는 내가 약속에 답할 차례였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상상하던 미래에는 늘 남편과 아이들이 있었다. 국어나 사회 과목 시간에 종종 ‘내 미래의 모습’를 주제로 글을 쓰는 시간마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가 둘 있는 30대의 여자를 그려냈다. 엄마와 아빠, 아이는 둘, 외롭지 않은 짝수.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데에 더할 나위 없는 이상적인 조합이라는 생각이었다. 미래의 나는 다정하고 가정적인 엄마이자 아내, 사회에서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매번 엄마가 된 내 모습을 그려냈는지 모르겠다. 결혼과 출산, 그 둘을 분리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때였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이를 갖는 순간, 내가 그리던 엄마이자 커리어우먼이 되기는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결혼한 이듬해, 직장에서 계약을 연장하며 나는 앞으로의 ‘임신 가능성’에 대해 확답해야 했다. 나는 당분간은 임신 계획이 없다는 대답으로 계약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결혼하면서 나는 임신 가능성이 있는, 그래서 언제든 휴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그건 회사로서는 꽤 골치 아픈 일이었음을 알아버렸다. 나는 임신을 하는 일이 두려웠다. 딩크로 살고 싶은 마음에는 이런 현실적인 일도 섞여 있었다.


남편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도, 함께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운동, 목욕, 게임, 여행 등 아이와 같이하고 싶었던 걸 나열할 때는 들떠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과거의 내가 언젠가는 꿈꾸던 모습이기도 했기에,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남편 말대로, 지금은 아이 생각이 없지만, 언젠가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가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내가 그리던 ‘단란한 가정’이라는 장면을 이루지 못할지도 못한다는 생각 앞에서 서글퍼지기도 했다. 내가 아이를 원하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나 자신조차 나를 알기 힘들어졌다. 결혼이라는 큰 산을 넘었는데, 다음 갈림길 앞에서 갈피를 못 잡고 휘둘리고 있었다.


‘둘이 살아도 좋지 않아?’

내 질문에 남편은 지금보다 삶이 다채로워질 거라고 답했다. 지금도 물론 좋지만, 아이에 관한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에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금연을 조건으로 먼저 제안한 사람은 나였고, 남편보다 두 살이 많은 나로서는 그 시기라는 것이 마음에 자꾸 걸렸다. ‘노산’이라는 단어를 달고 싶지는 않았다. 좀 더 시간을 갖자는 나에게 남편은 시기를 정한다고 해서 때에 맞춰 임신이 바로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시기를 정하기보다는 시도를 해보는 게 우선이라는 의미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이를 생각한다면 내 생물학적 나이와 임신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다. 마음이 완전히 동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임신을 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임신을 시도한 날이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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