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도착한 세계

by 김현주

나는 건강상의 문제로 제왕절개를 해야 했다. 예정일보다 2주 빠르게 수술 날짜를 잡았다. 아기는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마지막 검진에서 들은 아기의 몸무게는 4킬로그램이었다. 막달에 접어들자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아이가 나올 날이 기다려지면서도, 그날이 정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겁났다. 예정대로 수술 하루 전날 병원에 입원했다. 약간의 진통도 없는 평온한 하루, 내일이면 배 속에 있는 아이를 만난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뱃속에서 아이를 품은 열 달 동안의 시간이 스쳤다.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과 벅참이 밀려들었다. 임신 소식에 한동안 갈피를 못 잡던 마음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간이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그래, 우리 이번이 아니었으면 아기 가지기 힘들었을지도 몰라.’




의사는 ‘16시 8분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구나, 꿈처럼 아득했다. 간호사의 손에 안긴 아기는 누워있는 내 옆으로 왔다. ‘축하합니다’ 간호사의 말이 들렸다. 나는 아직 채 눈을 뜨지 못한 아기를 바라보았다. 간호사가 아기에게 인사를 하라고 했지만, 머릿속이 하얘졌다. 흑백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매일 너의 얼굴은 어떨지 상상했다고, 나는 네가 정말 보고 싶었다고, 앞으로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 주겠다고, 너와 만나게 되는 날엔 꼭 이런 말을 해주리라 생각했는데 그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봄아’ 하고 불렀다. 열 달 동안 수도 없이 불렀던 태명.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떨리고 이내 울컥 눈물이 났다. 감격이라는 건 이런거구나. 감격스럽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감격이라는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게 된 날. 나는 앞으로 평생 이날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의 기념일이 된 내 아이의 생일.


‘봄아’라는 짧은 인사말을 건네고 나는 마취에 잠들었다. 회복실로 옮겨지는 동안 남편은 수술실 밖에서 아기를 만났다. 남편은 아기와의 첫 만남을 동영상으로 남겨 두었다. 핸드폰을 들었으나 갈피를 잡지 못해 흔들리는 앵글, ‘봄아 아빠야’하며 떨리는 목소리, ‘산모는 괜찮나요?’라는 질문과 ‘네. 지금 회복중이에요’라는 대답, 그리고 이어지는 ‘감사합니다’까지. 나는 남편이 보여주는 영상을 보며 또 한 번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었고, 아기를 낳았고, 누구보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 또 한 번 느끼는 감격의 순간. 우리는 이제 둘이 아니라 셋이구나. 새 생명을 품는 일이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순간 내가 겪는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 이런 아름답고도 숭고한 감정은 하루가 채 가지 않았다. 나는 제왕절개를 한 산모였고, 출산의 고통은 후불로 치러야 했다. 코로나 때문에 신생아실 면회는 하루 두 번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한 번은 신생아실 유리 너머로 보는 면회였고, 아이를 온전히 안을 수 있는 시간은 저녁 모유 수유 시간뿐이었다. 나는 아기를 낳았지만, 아기를 제대로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채 병실에 누워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빠른 회복을 위해 걷기 운동을 하라고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억 소리가 났지만 아기를 보러 가기 위해 걸었다. 배에는 복대를 차고, 링거 폴대를 붙잡은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병동을 돌았다.


유리창 너머 플라스틱 침대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유리창에 달라붙어 내가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이를 직접 안아볼 수 있는 시간은 늦은 저녁 모유 수유 시간이었는데, 그마저도 20분 남짓이었다. 간호사는 초산인 나에게 모유 수유 방법을 간단히 알려주었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자세가 잘못된 건 아닌지, 젖이 잘 나오고 있는 건지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저 아기랑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도 확인했고, 머리로도 아는데 내가 아기를 낳은 건지 체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아득했고, 불안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수술 부근의 통증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나는 병원을 나와 산후조리원으로 향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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