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 전, 산후조리원에 대해 들었던 숱한 말들. 시작과 끝은 모두 똑같았다. ‘무조건 쉬어라’. 살면서 누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격하게 쉬라고 신신당부한 적이 있던가.
‘수유 콜이 올 텐데, 힘들면 그냥 쉬겠다고 해.’
‘특히 새벽에는 수유 콜 안 받겠다고 미리 말해 둬.’
‘아무튼 그때가 편히 잘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나는 모유 수유를 하고 싶었다. 아기에게 모유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소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물론 모유 수유 역시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엄마라면 그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1년까지는 힘들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100일까지는 모유를 먹이겠다고 생각했다. 산후조리원에서는 모유 수유를 하겠느냐고 물었다. 모유를 먹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니 말로만 듣던 ‘수유 콜’을 주겠다고 했다. 산후조리원에서는 병원에서보다 모유 수유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산후조리원 원장님은 종종 내 방으로 들어와 모유를 먹일 때 옆에서 자세를 잡아 주셨고, 주의 사항도 일러주셨다. 젖몸살이 심해질 때는 가슴 마사지도 받았다. 가슴 마사지는 생각보다 아팠다. 아픈 걸 잘 참는다고 자부했지만, 제왕절개 통증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가슴 마사지까지 받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가슴 마사지를 받을 때마다 비명을 질렀지만, 모유가 잘 돈다는 말에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침저녁, 새벽 가릴 것 없이 모유 유축에 힘썼다. 유축기를 통해 나온 모유가 젖병에 찰랑거리는 걸 보며 뿌듯했다. 내 몫을 다하는 느낌이었다. 모유가 담긴 젖병에 아기 태명과 날짜, 시간을 적어 신생아실로 부지런히 보냈다. 수유 콜은 오전에 한 번, 오후에 두 번, 그리고 늦은 밤에 한 번 왔다.
모유 수유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 의지와 별개의 문제였다. 아기는 병원 신생아실에서부터 젖병을 물어서였는지 젖을 물지 않았다. 모유를 먹기 위해서는 젖병으로 먹을 때보다 60배가 넘는 힘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아기가 젖을 물지 않고 나서야 알았다. 출산 전,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하겠다는 마음만 있었지, 제대로 공부는 하지 않았던 내 잘못이 컸다. 모유 수유를 위해서는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 젖을 물리는 게 중요했다. 신생아실에서 우유를 먹으며 이미 젖병에 적응해 버린 것이 문제였다. 코로나 때문이었다지만, 좀 더 모유 수유를 적극 권장하는 병원을 선택했어야 했나 후회가 몰려왔다.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기가 젖을 물지 않는 만큼 나는 유축을 더 자주 해야 했다. 가슴 통증은 잦아졌고, 새벽에도 두 번은 일어나 유축을 했다. 젖 물기를 거부하는 아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수유 콜이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수유 콜 받지 말라고 한 건가 봐’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밤에 푹 잔 날은 입소 당일과 그다음 날 뿐이었다.
남편은 힘드니 모유 수유는 하지 말자고, 모유 수유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라며 다독였다. 그리고 남편은 늦은 시간 걸려 온 수유 콜을 받아 말했다. ‘이제 저녁이랑 이 시간대에는 수유 콜 안 받을게요’.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드는 불편함이 가슴을 꾹 눌렀다. 이게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남편의 말에 ‘아니야, 그래도 해볼게.’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종종걸음을 하고 서 있는 꼴이었다.
남편은 2주의 출산휴가를 받아 일주일은 병원에서, 일주일은 산후조리원에서 지냈다. 남편의 출산휴가가 끝나고, 나는 혼자 산후조리원에서 남은 일주일을 보냈다. 마음은 여전히 불편한 채로, 모유 수유를 하겠다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저녁 시간부터는 수유 콜을 받지 않은 채로, 수유 콜은 받지 않았지만, 새벽에는 여전히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모유를 유축하면서. 그렇게 남은 일주일을 보냈다.
2주간의 산후조리원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했다.
그래서 쉬라는 말은, 누구를 위한 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