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결혼을 하기로 했다. 상견례를 하고 식장을 잡았다. 디데이를 세며 결혼식을 올리는 그날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결혼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결혼 준비’라는 것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준비는 아주 부족할 수도, 충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같았다. 훗날에도 의미가 남을 것들에 집중하기로 합의하고, 같이 살 준비를 시작했다.
결혼 준비는 생각보다 많은 선택을 요구했다. 거의 모든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영역이지만 어쩐지 내 취향 보다는 가격에 마음이 흔들렸다. 일단 비싼 건 좋아 보였고, 가격 앞에서 자주 주눅이 들었다. 돈을 쓰게 만드는 ‘결혼 시장’이라는걸 알면서도 그랬다. 식장과 스튜디오, 드레스 숍을 오가며 왜 결혼식을 허례허식이라고 부르는지 몸소 체감했다. 보여주기식에 가까운 것들은 빼자고 마음먹었지만, 선택의 순간마다 나는 더 비싼 것 앞에서 망설였다. 드레스와 웨딩링을 계약하고 돌아오던 길에 생각했다. 결혼식이 곧 결혼의 전부라고 믿던 때에 결혼을 했다면, 나는 허례허식에 훨씬 더 매달렸을 거라고.
결혼 준비 과정은 전반적으로 순조로웠다. 큰 다툼도 없었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의견이 크게 엇갈리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고민하게 만든 것은 결혼식 당일의 입장 방식이었다.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결혼식에서 숱하게 보아온 장면이었고, 으레 그렇게 하는 행위라 여겨왔지만, 막상 내 결혼식 앞에서는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보호 아래 있던 여성이 결혼과 함께 다른 보호 아래로 옮겨진다는 상징, 여자의 소속이 바뀌는 듯한 그 장면을 나는 내 결혼식에서 재현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동시입장하자는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문제는 부모님이었다. 우리는 양가 부모님이 차례로 입장한 뒤, 마지막에 우리가 들어가는 방식을 원했지만 양가 어머님은 관습대로 어머님 두 분이 입장한 뒤 화촉을 밝히는 방식을 원하셨고, 아빠는 동시 입장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결혼 이야기를 꺼낸 순간부터, 아빠는 딸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는 장면을 마음속으로 그려왔을지도 모른다고, 딸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걷는 일이 딸 가진 아빠들의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빠의 서운함을 마주할수록, 나는 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출가외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내말에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내 선택을 받아들여주었다. 결혼 전날, 나는 부모님 방에 조용히 편지를 두고 나왔다. 누구의 아내나 누구의 며느리로 살기보다, 엄마 아빠의 딸인 나로 살겠다는 내용이었다. 잠들기 전, 아빠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고맙다고 했다.
“이제 우리집 사람인데, 너희 집 제사는 챙길 필요 없지 않니?”
결혼하고 맞는 첫 번째 명절에, 시댁에서 전을 부치고 있는 나에게 시어머니가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결혼식을 떠올렸다. 차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왜 아빠까지 서운하게 하면서 동시입장했는데.
그 후로도 종종 내가 나로 살 수 없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식장 안으로 들어가던 그날을 떠올렸다. 내 옆에 선 사람의 손을 잡고,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던 그 순간을. 동시입장을 해야만 했던, 내 선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