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설명서가 필요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매뉴얼’이었다. 인생은 답이 없다는 말처럼 모호하고 막연한 말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향, 다수가 옳다고 하는 방법이 곧 나에게 정답이었고, 길이었다. 나는 30년 넘는 세월 동안 줄곧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 방식이 결혼 앞에서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육아라는 전혀 다른 길에 맞닥뜨리자 나는 본능적으로 예전의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존재, 모든 것이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작은 생명체 앞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렸다. 육아서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책들을 사서 책장에 꽂았고, 구독자 수가 수십만에 소아과 의사의 유튜브를 밤낮으로 들여다보며 나는 육아의 정답을 찾고자 고군분투했다. 그것은 그저 아름다운 환상에 젖은 채로 엄마가 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임신했을 때의 그 행복하고도 숭고한 감정에 빠져 나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있었다. 실제로 마주한 육아는 그리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더 빠르게 정답을 찾고 싶었다. 잘 크기 위해 아이가 먹어야 하는 분유의 양,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시기와, 수면 교육의 방법, 신체 발달을 위한 놀이와 감기에 걸리지 않는 방법 같은 것들에 대해. 알아가야 할 게 많은 나로서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육아에 답이 없다’와 같은 말은 나에게 너무나도 무책임하게 들렸다. 나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오가며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넘치다 못해 범람할 정도의 정보 속에서 나는 매일 정신이 혼미했다. 그래서 이게 맞다는 건지, 저게 맞다는 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매뉴얼’을 원했다.
2주 간의 산후 도우미 계약이 끝나고, 나는 집에서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다시 먹이고 재우는 일을 반복했다. 아이가 잠들면 밀린 집안일을 했고, 아이가 깨어나면 어딘가에서 본 발달에 좋다는 놀이를 시도했다. 아이가 생각처럼 아이가 따라주지 않을 때는 책임을 나에게 물으며 자책하는 시간이 잦았고, 배고픈 아이를 먹이며 다음 밥시간은 언젠지 계산했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내가 너의 세상이 되어주겠다’라고 다짐하다가도 뒤돌아 마주한 산더미 같은 설거지 앞에서는 울컥 눈물이 났다. 아이가 있는 공간은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밤낮으로 쓸고 닦았고, 손에 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금방 다시 물이 닿을 손에 핸드크림은 사치였다. 더군다나 아이를 만질 손에 향이 있는 핸드크림을 바르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손은 건조하다 못해 거스러미가 올라왔다. 나는 100일 동안은 외출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예방 접종할 때를 제외하고는 100일이 될 때까지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지 않았다. 아이가 100일을 맞이할 때까지 집이 곧 내 행동반경의 전부였다.
어느 순간부터 거울을 보지 않았다. 가끔 화장실에서 마주하는 내 모습은 볼품없었다. 질끈 묶은 머리, 푸석푸석한 피부와 생기 없는 눈빛, 퉁퉁 불어올라 양쪽 볼과 턱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살까지. 외모를 가꾸는 일은 엄마로서 사치라고 생각했다. 엄마인 나에게는 할 일이 많았다. 아이를 낳고 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이가 100일이 지나자, 나에게는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아이에게 바깥바람을 쐬어주는 일. 햇빛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 의무적인 산책을 시작했다. 유모차에 필요한 물건을 주렁주렁 달고, 무릎이 다 나온 바지에 얼굴을 가리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다른 유모차를 마주치면 유모차에 탄 아이가 내 아이와 또래인지를 살피다가 은근슬쩍 상대 엄마의 옷차림을 훑었다. 단지 안에서 만난 엄마 중 내가 가장 초라하고 보잘것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의 잠투정이 길어지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서서 어르고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날에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라며 소리를 지르고 같이 울었다. 아이가 놀란 기색이라도 보일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심하게 대한 내 자신을 원망했다. 남편은 아이가 잠들 때쯤 퇴근했다. 남편은 그야말로 ‘칼퇴’ 후 지하철 환승 시간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 자기 전의 아이를 잠깐 안아볼 수 있었다. 남편은 나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지만, 나는 그 말조차 듣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하루 종일 보내고 나면 남편과 말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하루 동안 열 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허다했다.
날씨가 약간은 더워진 날, 의무적인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아파트 단지를 두어 바퀴쯤 돌던 때였다. 우리 집과 가장 먼 동 앞에 경찰차와 구급차가 서 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수군덕대고, 인도에는 폴리스라인이 둘리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 그 동 21층의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멀찍이 서서 그 광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 집이 1층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 출산 전에 받은 책을 꺼내 들었다.
저 산후 우울증인 것 같아요
책의 띠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산후 우울증,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