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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Oct 06. 2024

해피 데이즈

삶의 냄새와 향기

  지운은 어머니가 날이 좋을 때면 마당에 석유곤로를 꺼내놓고 들통에 빨래를 삶던 개운한 냄새를 좋아했다. 오래된 양은 들통에 애벌 빤 속옷과  세제를 푼 물을 붓고 끓이는 동안 냄새가 집안 구석구석 배어들었다. 그러나 그 냄새를 오염시킨 건 해피였다.


지운이 일곱 살 무렵 아버지는 친구가 잠시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며 진돗개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지운은 덩치가 큰 개가 무서웠다. 어머니는 지운이가 무서워한다며 당장 개를 도로 데리다 주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대꾸도 없이 개를 마당 수돗가에 묶어 놓았다. 당시 지운의 아버지는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개인 사업을 시작했고, 처음부터 이를 극구 만류하던 어머니와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시기였다. 어머니는 개털 날린다, 개 노린내 난다, 개 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등등 아버지에게 싫은 소리를 귀가 닳도록 해댔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들어와 어머니를 피한 아버지의 방법이 통한 건지, 싫다고 질색했지만 생명체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이었는지, 지운의 어머니는 마당 한가운데 가릴 곳 없는 한 데에 묶인 개를 위해 목공소에서 개집을 짜왔다. 그리고 어머니는 개집 안에 담요와 방석을 깔아 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아버지와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지운 역시 더 이상 개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한 두어 달 만 돌봐 달라 부탁했다던 아버지 친구와 연락이 안 되어도 어머니는 해피라는 이름의 진돗개를 보살폈다. 해피가 마당에서 살게 된 후 어머니는 위험하다며 마당에서 빨래를 삶지 않았다.

 그때는 개 사료를 따로 구입해 먹인다는 건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고 동네에서 키우던 개가 없어지면 개장수에게 도난당했다고 속상해하던 시기였다. 감나무집 할머니가 찾아와 기르던 스피츠가 없어졌다고 하소연을  후, 지운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남의 개를 개장수가 끌고 갈지 모른다며 해피의 집을 집 뒤편 장독대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그 며칠 뒤부터 장독대 근처만 가면 큼큼한 냄새가 났다. 장이 덜 달여져 상하는 냄새인지, 독에 금이 가 새는 건지 어머니는 고민하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장독대와 장들은 이상이 없었다. 하나 날이 갈수록 냄새는 심해졌고 어머니는 장독대 근처에 가면 나는 냄새 때문에 구역질을 했다. 며칠 더 지나니 방에 있어도 악취가 났다. 매사가 무딘 지운의 아버지마저 생선 썩는 냄새보다 독한 악취를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따라 해피를 목욕시키고 개집청소를 하기로 했다. 제법 해피와 친해져 공을 던지며 놀이도 하게 된 지운도 해피의 목욕을 구경하러 나섰을 때 어머니의 비명 소리가 났다. 지운의 어머니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구역질을 하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궁금증에 지운이 손으로 코를 막고 장독대 근처를 갔다. 청소를 위해 화분에 비스듬히 세운 개집 밑에 연두 빛 실패 같은 것이 보였다. 방에서 마스크를 찾아 쓰고 나오던 아버지가 지운을 제지했다. “지운아, 그쪽으로 절대 가지 마라.” 그리고 아버지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지운에게 다가서는 해피를 막았다. “저리 가, 이놈의 개새끼.” 아버지는 지운을 다시 채근했다.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마.”  연둣빛 실몽당이 같은  것이 궁금했던 지운은 “응”, 대답했지만  얼른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건 꿈틀꿈틀 움직이는 구더기뭉치였다. 연두 빛으로 차오른 구더기뭉치 끝에 까만 쥐머리가 보였다. 쥐를 보고 놀란 건지 꿈틀거리는 징그러운 움직임에 놀란 건지 지운은 그곳을 빨리 떠나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운도 어머니처럼 구역질이 나왔다. 아침에 먹은 음식물이 지운의 몸속에서 모두 다 튀어나왔다. 아버지가 지운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 들고 목욕탕 어머니  곁에 내려놓았다.

 아버지가 마당 청소를 여러 차례 반복해도 악취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운과 어머니는 토악질 끝에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다. 아버지도 사나흘 밥을 먹지 못했다. 그리고 쥐를 잡아 죽여 자기 집 밑으로 밀어 넣은 해피는, 연락 안 되는 원주인인 아버지의 친구 대신, 아버지 고향에서 과수원을 하던 먼 친척 집으로 갔다.

  해피가 떠나고 난 뒤, 강에서 자갈채취를 해 건설사에 납품하던 아버지의 회사는 회사 경리와 짜고 동업자가 자금을 빼돌려 부도가 났다. 지운의 집은 빚쟁이들이 찾아와 진을 치고 아버지 역시 연락이 두절되며 풍비박산됐다. 그 동업자는 해피를 아버지에게 맡긴 친구였다.  

    

 지하철에서 검색해 본 동명이인 무연고자의 장례고지를 털어버릴 수 없던 지운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된 쥐 사체와 냄새가 떠올라 메스껍게 만들었다. 연결하면 안 될 것들을 연결한 불경한 죄를 지은 느낌을 떨칠 수 없어 지운은 성당을 향해 걸었다. 종종 그녀는 자신의 기도에 일절 응답 없는 신을 찾았다. 어쩌면 그녀는 늘 신의 응답을 받지 못했기에 더 당당하게 울부짖을 수 있었다. 그녀의 걸음이 빨라졌지만 이내 멈춰 섰다. 주민 센터에서 독거 암 환자로 등록된 그녀에게 건 안부 전화였다. 

 지운은  독거,  무연고 중증환자로 보건소의 관리 대상자였다. 이 주에 한 번씩 독거 환자를 위한 안부연락과 가정방문 서비스가 생겼다는 안내에 지운은 즉석에서 신청을 했었다. 오늘도 상냥한 목소리의 여자가 지운에게 안부전화를 했지만 고독사의 공포를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키웠다.

 암 진단을 받고 이후 암 제거 수술과 항암치료로 죽음을 멀찍이 떨어뜨렸을 때, 지운은 더 유연하게 삶을 지속하고 자연스럽게 죽을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혼자 사는 삶에 만족했고 암 환자라도 약간의 주변이나 사회적 도움이 있다면 혼자서 내 집에서 치료를 받으며 마지막을 맞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안부전화 서비스를 받게 되며 안도했지만 이주에 한 번이란 기간은 너무 길었다. 시신부패가 진행되기 전에 죽음이 발견되어야 한다. 여름이나 난방기가 가동되는 기간이라면, 이 주일에 한 번으로는 주변에 악취와 정신적 피해를 줄 수도 있을 만큼 긴 시간이다. 시취로 주변에 죽음 알리게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지운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좀 더 신속한 해결책이 절실했다.

“오, 주여......”

 사후 걱정에 현재의 시간이 잠식당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신이 드디어 응답을 보내나? 자애로운 마리아상 앞에 눈에 번쩍 띄는 게 있었다.  '오호라...'지운 앞의 삶은 아직 견딜만했고, 살아 숨 쉬는 숨결이 향기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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