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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Apr 05. 2022

황무지에 움트는 생명력

4월이 없는 곳에 가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4월이 없는 곳에 가서 살면 좋겠다”.  묵은 곡식이 떨어지고 햇곡식이 아직 여물지 않은  춘궁이 절정일 때 우리의 옛사람들이 하던 말이라고 한다. 보릿고개의 정점에서 초근목피하며 연명하는 그 애달픔이 사월이면 현재에도 다방면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4.3 제주 사건,  4.19 의거가 이었고  세월호 침몰의 가슴 아픈 사건이 이었고 세계적으로는 체르노빌 핵 폭발, 노테르담 대성당 화재  등등 사월은 국내외 적으로  사건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내가 장애인의 멍에를 안게 된 사고가 난 달이 4월이다. 그래선지 4월이 되면 마음이 불안하고 몸이쑤시고 더 아파 온다. 옛날 어머니들이 자식 낳은 달이 되면 삭신이 쑤신다고 하시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4월은 아프지만 생명력이 기지개를 켜는 달이다.  

  사월 달력에 이달의 스케줄을 표시하다 보니 일주일에 두 번 꼴로 병원에 가야 한다. 벌써 표적 항암치료를 받은 지 6개월에 접어들었기에 종합 검사를 하여 내 몸속의 암의 추이를 살펴야 한다. 치아 치료도 마무리 차원에서 신경치료와 검사가 있다. 표적항암제는 과히 부작용이 심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 달에 삼주를 투여하는데 2주 차 중반부터 3주 끝무렵까지 열흘간은 피로도도 높아지고 두통과 호흡이 힘들어지곤 한다. 그리고 마지막 4주 차에는 표적 항암제는 쉬고 유방암 항암제만 먹는데 이때 면역력도 올라가고 몸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5개월째 였던 지난 3월은 여러 할 일이 많기도 하였고 날씨도 풀려가기에 외출도 자주 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산책을 시작하였다. 그래선지 우울한 기운도 조금 덜 느끼고 몸이 가벼워졌다고 느껴 이번은 항암제 부작용을 좀 수월하게 넘길 거라 생각했는데  표적 항암 3주 차 가 되니 어김없이 두통과 피로가 몰려들기 시작한다. 동네 뒷산에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화사한 생명력을 드러내니 심통이 난다. 화무십일홍이라고 내가 좀 살만하다 느끼면 져버릴 거라 생각하니 괜히 울적해진다. 울적함은 울적함으로 풀어야지.

  책장을 뒤적여 노튼 영문학사 두꺼운 책을 꺼내 T.S. 엘리엣의 “황무지”를 펼쳤다. 제1부  <죽은 자의 매장>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첫 구절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에 눈을 돌리다 보니 그토록 자주 다루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라틴어여서인지 그냥 건너뛰던 서문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Nam Sibyllam quidem Cumis ego ipse oculis meis vidi in ampulla. pendere, et cum illi pueri dicerent: Sibulla ti qeleiz; respondebat illa: apoqanein qelw."     


각주에 달린 영어 설명을 보며 무녀가 죽고 싶다던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쿠마의 무녀는  아폴로 신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원대로 한 주먹의 모래알 숫자만큼이나 긴 인생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그러나 영생을 얻은 무녀는 깜빡하고 젊음을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늙어갈 수밖에 없었다. 계속 늙는 만큼 몸이 쪼그라들었고 조롱 속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졌다. 살아 있는 게 죽음보다도 못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무녀는 "제발 죽게 해 달라"라고 빌 수밖에 없었다. 


 세계대전을 끝내고 정신적 물질적으로 황폐해진 세상을 보며 엘리엇은 현대인과 세상을 무녀처럼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메마른 황무지로 본 것이다. 그런 죽음과 다름없는 황무지에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은 그래서 잔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     


엘리엇은 1차 세계 전 직후인 1922년 이 “황무지”를 썼다. 전후 유럽의 정신적 황폐와 시인 자신의 무의미한 삶에 대한 개인적 회의가 동시에 담길 수밖에 없었다. 보통 “황무지”는 정신적 고길, 가치관과 일상적 가치의 붕괴, 그리고 생산 없는 불모의 성(性)과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에 대한 시라고 일컽는다. 그리고 모든 초월한 평화를 빈다. 

 대외적 개인적으로 뒤숭숭한 시기에 다시 읽는 “황무지”는 묘하게 마음의 공허를 메꾼다. 황무지에 찾아온 봄. 땅속에서 움트는 생명은 나약하지만 땅 위에 생기를 줄 것이다.  아마 대충 훒으며 읽었지만 마지막이 "샨티 샨티 샨티(Shantih shantih shantih)"로 샨티는 산스크리트어로 '평화'를 의미하는 주문(呪文)이라서 마음에 평 황가 온 건지도..........           


    https://brunch.co.kr/publish/book/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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