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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Jun 29. 2022

나에게 주는 선물

암환자의 생애 첫 제주도 여행

  지난 월요일이 생일이었다. 올해는 예년과 다른 생일 날을 맞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나이 숫자만 늘려가는 생일이라 구시렁대며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여태 누가 챙겨주길 기대만 했지 정작  나 스스로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라고 기뻐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스스로 이번 생일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멋진 선물을 하자.

 내가 혼자서도 만족할 생일을 보내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그동안 생각은 굴뚝이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못해본 일,  바로 제주도 여행이었다. 난  왜 제주도는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직 항암 중간이라 면역력이 떨어져 버거워,  림프부종이 비행기 타면 치명타라고 했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을 거둬 내기로 했다.  혼자서 겁내며 어딜 못 가는 사람이 아니었잖아.  간신히 마련한  몇 푼 쥐고 해외여행도 아니고 유학을 떠났패기는 어디 갔나. 한동안 그건 너무 무모했다고 후회도 했지만, 분명 내게는 인생에 도전하는  오기가 있지 않았던가. 그랬던 내가 암환자라고 웅크리고  있다. 사고로 장애자가 된 시점 보더 움츠러든 나의 기를 살리자. 일단 가서 힘들면 쉬면 되고 아프면 바로 돌아오면 된다. 실패는 도전한 자만이 겪는 경험이라고 나를 다독여보자.  암을 딛고  살겠다고 치료도 열심히 받는 나를 수고했다고 격려하자. 남들 다 하는 거 나만 못해 봤다고 부러워말고 기회를 만들자.

  비행기표를 먼저 구했다. 특가 상품은 거의 매진이어서 가격이 부담스러웠는데 생각해보니 국내선의 경우  장애인 할인이  적용되는 정상가로 끊으면 된다.  다음 호텔 정하기, 항상 가고 싶은 마음에 알아둔 뚜벅이 경로,  내가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서 걸어서 유명 명소를 갈 수 있는 제주 시내 호텔 추전을 해준걸 기억하고 호텔을 찾으니 특가 상품은 바다 전망이 아닌 산전망,  프로모션 특가에 만원을 더 보태 항구 전망을 선택했다.  이렇게 예약을 하며 정한 이번 나 홀로 여행의 테마는 "제주도에서 아침을"을 내게 선물하기였다.


  김포 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지쳐 몸이 후들거리기 시작해 비행기 타기 전 얼른 림프부종용 압박 기구인 오토 핏을 착용했다. 사람들이 그게 뭔지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 혼자라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기로 했으니 거추장스러운 가발도 모자도 쓰지 않았다.삼십 년 전 처음 비행기를 타던 설렘이 떠올랐다.  드디어 제주 공항에 도착. 후텁지근한 날씨와 바람과 그리고 야자수와 돌하르방이 나를 반겼다.

 설레서인지 몸상태가 괜찮아 호텔 체크인 전 택시를 타고 김만덕 기념관에 가서 좋은 기운을 받고 싶었다.  택시 기사분께 미안할 정도로 공항에서 가까운 서부두 항구와 마주 보는 김만덕 기념관에 도착하니 해가 쨍쨍한데 습한 바람에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건물 앞에서  휴대폰으로 확인한  날씨는 습도 80에 기온이 34도, 어째 일요일인데 지나치게 한산하더라.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니 시원하고 짐 보관 캐비닛도 있고 역시 관광에 특화된 도시구나. 게다가 무료입장. 사실 돈 받았으면 욕 나올 뻔했다. 전시품이 너무 빈약했다. 하지만 제주 역사 공부하기엔 독서실과 책도 많이 구비돼 있고 동영상 자료도 많아  이렇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했다.  다음으로 김만덕 객주에 걸어가서 옛 거리 복원한 것도 보고 객주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지만 너무 덥고 습한 날씨에 포기하고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 전복탕을 시켰다.  현지 느낌이 나서 들어갔는데 전복, 새우, 꽃게가 수산시장 앞이라 싱싱한 걸 쓴 게 보이는데.... 이 좋은 재료에 왜 화학조미료를 퍼 넣었을까.  어쩜 요즘 항암제로 입맛이 너무 예민해져 맛이 별로 였을 가능성도 있다. 덕분에 생일 아침은 호텔에서 조식 먹는 걸로 마음을 굳혔다.

김만덕 기념관에 서

하지만 아주머니들이 제주도 방언으로 대화하는 걸 엿들을수 있는 큰 수확을 거뒀다.

 김만덕 객주가기는 힘들어 포기하고 호텔로 가려 구글 맵을 보니 지척이다.  땡볕과 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호텔에서 일요일 오후 특가 적용으로예약가보다 가격도 내려가고 직원의 배려로 바다 전망 방을 배정받았다. 오메, 땡잡았다.  

게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또 호텔에 처박혀 있기 싫어 아라리오 뮤지엄을 기를 쓰고 다녀와서는 더 이상 몸을 쓸 기력이 없어 그대로 누워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  동트기 전 완전히 눈을 떴다. 새벽 4시 40분 아스라한 새벽의 푸름.  일기 예보에 비가 온다고 해 기대하지 않았는데 먹구름 사이로 해가 뜨기 시작한다. 인상파 화가들이 왜 빛에 집착하였는지 설명이 필요 없었다. 눈앞에서 빛에 라 바뀌는 세상을 목도했다. 수평선 너머 솟아오르는 해를 먹구름이 어지러이 가렸지만 오히려 그려서 더 빛의 효과가 실감이 되었고 먹구름을 해치고 나온 해에 감사함마저 느껴졌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선물. 제주도에서 아침을. 빛나는 해와 더불어 파발 파발 날아오는 축하 메시지들. 내게 주는 생일 선물 이만하면 대 만족이다. 제주 휘슬락 호텔 일요일 프론트 직원분이 방 바꿔준 덕이니 그분에게 감사해야 하나...

생일 아침의 태양과 구름
새벽의 항구

https://brunch.co.kr/publish/book/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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