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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Jul 19. 2022

오타의 여왕에서 하야하려면

오타 안 내기가 가능할까?!

오타 때문에 골머리를 썩은 지 삼십 년이 넘었다.  대학 졸업 즈음부터 컴퓨터가 취업의 필요요건이 되어 뒤늦게 컴퓨터를 배우러 학원에 다니며 타자 연습을 했다.   "~라떼"가 나오는 나이구나 싶지만 내 개인사를 하나 내놓자면  그즈음 사고를 당해 우편 마비가 생겨 오른손은 거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왼손잡이를 억지로 양손잡이로 만든 부모님 덕에 가위 같은 도구 사용이나 왼손으로 수저, 젓가락 질이 가능했던 터라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왼손에 붕대까지 감아놓고 연습을 시킨 덕에 펜을 잡는 것은 오른손으로 굳어 버렸다. 그래서 다시 왼손 글씨 연습을 열심히 시작했지만 왼손도 수전증 때문에 도통 글씨가 늘지 않았다. 그때 컴퓨터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거라며 차라리 타자를 치는 연습을 하라는 주변의 조언과 나 자신의 결단으로 시작된 컴퓨터 사용은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보다는 쉽고 속도도 빨랐다.

 그러나 한 손으로 컴퓨터를 치다 보니 자판을 외우고 있다 해도 자판을 보고 글을 쳐나가야 했다. 그때는 1분에 몇 타나 칠 수 있는가가 주요 관건이었는데 나는 한 손으로 치니 아무리 연습해도 최고 150타를 넘기지 못했고 지금도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 손가락 하나로 심지어 발가락으로 타자 치는 장애인도 있으니 오른 손도 재활 연습한다 생각하며 시도를 해 보았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독수리 타법이니 메뚜기 타법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손에 감각도 없어 키보드를 눌렀지 안 눌렀는지 느낌이 없다는 것이고 뇌에서 오른쪽의 움직임을 컨트롤하지 못하니 의도치 않은 생체 반응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왼손으로만 타자를 치며 생각을 기록하는데 의식의 흐름은 내 손놀림보다 빠르니 늘 조급증으로 타자 입력에 몰두하다 보면 당연히 모니터를 보지 않고 치니 어마어마한 오타가 생겼다.

  특히 쉬프트 키와 동시에 눌러야 하는 한글 쌍 자음이니 이중모음 표기는 지 없이 오타가 났다. 그나마 왼쪽의 쌍자음은 왼손가락을 모두 사용하면 가능한데 자판 오른쪽의 이중 모음은 왼손가락으로 커버가 되지 않는 위치이다 보니 여지 없이 오타가 난다.  그래서 다시 읽으며 수정하는데 문제는 수정을 하며 또 오타가 나온 다는 것이다. 오타 줄이는 방법은 다시 읽으며 수정하는 수밖에 없으니 여러 번 수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서너 배의 시간이 걸려 늘 시간에 쫓겨 대학원 시절에는 페이퍼 마감 시간에 쫓겨 한두 번 수정으로 그냥 제출하고 말았다.

"내가 웬만하면 참으 려고 하는데 정말 오타 때문에 내용이 눈에 안 들어오니 정말 나도 미칠 노릇이다."

교수님들의 답답한 토로가 이어졌지만 그걸 듣는 나도 내 상황에 답답하고 눈물까지 나는 지경이었다. 보다 못한 친구가 내가 생각을 말하면 자기가 타자를 쳐주겠다고 했지만 일기 쓰는 것도 아니고 연구하며 참고문헌을 보며 내 논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누구에게 타자를 시키는 방법도 효율적이 아니었다. 결국은 내가 미리 쓰고 점검 밖에는 길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  길이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사실 역설적으로 오타 덕을 본 적도 있는데, 영국에서 공부할 때 논문 초안을 지도교수에게 미리 보내고 만나기로 한날이었다. 그때 서사의 이동성을 19세기 영소설의 영화화 통해 분석하는 게 목표였고  여러 소설 중 하나가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였다. 그런데  내가 요크셔 방언으로 '바람이 거센' 이란 뜻의 wuthering을 watering으로 그것도 제목에 오타를 낸 것이었다. 오타 스펠링이 말이 되는 오타 검색에서 잡아내질 못하고 그야말로 '폭풍의 언덕'을  '물바다 언덕'으로 만들어 놓았다. "너의 오타가 네 학문적 성과를 강등시킨다" 늘 심란한 얼굴로 말하던 노교수가 그날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 손까지 잡아끌며 자신이 내 제목을 지난밤에  받아보고  이게 과연 오타인지 혹시 내가 영국식 두음법을 이용한 서구식 사고 뒤틀기였는지 밤새 생각하느라 잠을 못 잤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 논문 가제가  "Blurring the boudaries 경계 흐리기"였고 서사 이동이 곧 새로운 창조라고 글을 쓰고 있었으니 교수는 watering을 창작에 물을 주는 행위이자, 서사에 창조성을 공급하는 원작 소설이라고 연결을 시켜 해석하였던 것이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교수의 엄청난 해몽에 정작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찌 되었던 오타 덕분에 교수와 급격하게 친해지고 그 논문을 교수가 직접 손을(오타교정) 봐주며 학교에서 연구비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추억은 어쩌다 얻어걸린 거고 나는 아직도 심지어 이 글을 올릴까 말까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오타로 고통받고 있다.  음성인식도 시도해보았지만 발음 인식이 안되거나 잘 안 쓰는 단어를 말하면 자동완성으로 이상한 단어로 변환시켜버려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휴대폰처럼 한 손용 PC자판을 개발해야 하는 건지, 하긴 내가 휴대폰 문자도 오타로 수수께끼 같은 문자를 보내기 일쑤인데....

과연 오타의 여왕이란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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