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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Sep 11. 2022

생일에 미역국도 못 먹고 컸어?

어머니의 마음음 ?

생일에 미역국도 못 먹고 컸어.

 여름에 태어난 나는 생일에 미역국을 먹은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여름에 불 앞에서 음식 만드는 걸 싫어하셨고 미역국은 더 싫어하셨다. 심지어 내가 태어나고 병원에서 산모식사로 나온 미역국도 언니가 대신 먹었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누군가를 모욕을 주려고 쓰는 말, “네 어머니는 너 같은 애 낳고 미역국 드셨다니?”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나한텐 저런 말로 화풀이해 봤자인데라고 회심의 미소를 짖지만, 이제는 가끔 지나가다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뜨끔 해서 인생을 반성한다.


  중학생 때였나 언니가 결혼하고 난 후 내 생일에 어머니가 왜 미역국이 진저리 나게 싫은지 이야기를 하셨었다. 십여년 후 어머니를 여의고 내 생일에 외국에 살던 언니가 전화를 했다. "생일인데 네가 혼자라도 미역국 끓여 먹었니?" 나는 그때 언니가 어머니가 왜 미역국을 싫어하는지 이유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항상 나이차 많은 언니로부터  "모르면 가만히 있어"란 말을 듣던 나로선 회심의 일격을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나는 “먼저 태어나서 엄마, 아빠를 더 잘한다더니, 언니는 그것도 여태 몰랐어”라고 반격을 했다.


  언니가 태어나기 직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러니 시집살이하던 어머니는 집에서 산후조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의 친할머니는 어머니를 위해 끼니때마다 따로 산모용 음식을 한다는것이 귀찮았던 모양이다. 농촌의 일 많은 여름에 할머니는 번번이 미역국 끓이고 덥히기가 짜증이 났던지 가마솥에서 밥이 다되면 밥을 푸고 남은 빈 공간에 미역국을 대접에 담아 데우던가, 참기름도 안 들어간 맨 미역국을 오래 끓여서 주었다 한다. 코 풀어놓은 것 같은 국물에 흐물흐물 떠다니던 미역에서 진동하던 바다 비린내는 그 잔상이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탓에 어머니는 그 후 미역국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궁금한 것이 그렇게 분명한 이유가 있는 미역국 혐오를 언니가 결혼을 하고 외국으로 떠나고서야 내게 왜 이야기해 주었냐는 것이다. 내 생일에 미역국을 안 끓여주니 미안해서? 아니면 혹시 딸 낳았다고 시댁에서 대접받지 못한 것이 화가 나고, 그 얘길 들으면 언니가 자존심 상해할까 봐? 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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