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제, 폭우가 쏟아져 우산을 쓰고 걷기 버거워 택시를 탔다. 내가 목적지를 말하고 나자 택시 기사가 내게 물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내 병명을 물은 건가? 대답하기 싫다. “아, 네.”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내가 병원 앞에서 택시를 탔구나. 어디가 아프냐고? 더 이상 질문을 못하게 눈을 감았다.
“손님, 기운이 없어 보이시는데 옛날 음악 좀 들을까요? 신나게 음악을 들으면 기분도 업 되니까.”
싫다고 말하면 배려에 생채기 내는 거 같아 두루뭉술하게 “트로트는 싫어요.”라고 말했다.
“7080 음악이 딱 어울리실 거 같은데요.”
“전 그렇게 나이 들지.......”
내가 대답을 다 하기 전 음악은 시작되었다. 대학가요제 대상곡인 <꿈의 대화>가 흘렀다. 비 오는 날 택시 안에서 듣기 좋았다.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엔, 서러움도 없어라, 우리들의 꿈속엔.......“
1980년, 젊은이들의 노래가 40년의 시간을 건너서 내게 꿈결처럼 말을 건넸다. 풋풋하게 젊다는 것은 미성숙하고 영글지 못한 과일 같다는 생각이 어느덧 자리 잡은 나도 어제는 젊었다.
1980년, 10살이었던 나는 피비린내 나는 이 땅의 현실을 짐작도 못하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땐 너무 어려서 몰랐고 어제는 또 다른 핑계를 내세워 현실을 외면했다. 아니 나는 현실을 볼 줄 몰랐고 아직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 고개를 쳐들고 내 눈은 항상 저 너머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응시했기 때문이다. 저 너머를 보느라 눈길도 주지 않은 내 옆, 앞과 뒤, 나와 보조를 맞추던 이들이 방향이 달라진 것도 모르고. 멀리 가버린 것조차 몰랐다. 고개를 내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이제는 꿈속에서 조차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서툴러졌다.
택시기사가 내게 말했다.
“도착했는데 어디서 세울까요?”
“저 앞, 아니, 바로 여기 세워주세요.”
나는 이제서 현실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