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골 샌님 Jan 20. 2023

나에게 하이파이브

삶을 긍정하는 행위의 발견

 지난밤 편의점에서 셈을 치르고 나오는데

"아이고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가 봐요. 여태는 긴가민가 했는데 오늘은 다리를 많이 저시네."

라며 주인아주머니가 안 됐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사고로 우편마비가 있어요."라고 답하며 얼른 나오려다, "겨울이라 더 심해진 모양이에요"라고 덧붙이며 관심에 대한 성의를 표했다.

 뼈로 암이 전이되고 표적 항암치료를 받는 내게 의사는 암이 뼈를 약하게 하고 그 암을 없애려는 표적 항암제가 또 뼈를 약하게 하고 덩달아 주변 근육들도 약화되어 살짝만 부딪혀도 뼈에 손상이 가니 항상 주의하라고 경고를 한다.  아울러 몸을 많이 움직이는 운동이나 집안일도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곤 한다. 하여 약물로, 운동부족으로 몸에 특히 다리에 근육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오른쪽 마비된 다리가 걸을 때 휘청거림이 심해졌다.

 그래도 겉으로 눈에 띄는 장애는 아니었는데 이젠 감출 수 없구나. 의기소침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모자가 내려와 눈을 가려 불편했다. 또 안경에 김서림까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아무리 감춰도 드러나기 마련인데,  '나 아파'라는 사실 대신 '난 괜찮아'라고 내 병을 감추려 할까.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며 남이 나를 장하다고 칭찬해 주길 바랐고 더 깊은 속내는 외면받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러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나를 비웃고 또 비웃을 가상의 사람들에게 원망을 퍼붓는 걸로 풀며 불면의 밤을 보내곤 했다.

  따뜻한 집에 들어서자 모자부터 벗었다. 홀가분하다. 손을 씻고 세수를 하다 욕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았다. 그새 움푹 파인 눈, 듬성듬성한 앞머리, 유난히 가늘어진 팔다리. 이게 나다. 수증기가 거울에 차 오르며 내 모습을 가린다. 거울에 서린 김을 손으로 닦아낸다. 거울 속 내가 다시 드러났다.

 거울에 서린 김을 닦으며 치켜든 손. 거울 속 나를 향해 팔을 쭉 피고 손가락을 쫙 펴  손바닥을 거울에 대었다. 나와의 하이파이브. 머릿속에 각인된 긍정을 의미하는 몸짓. 아하 왜 여태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찡그리기만 했지. 이렇게 내가 나와 하이파이브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 발견 때문인지 몸에 열기가 훅 올라왔다. 옷으로 모자로 안경으로 렌즈로 가리지 않은 온전한 나의 모습이 편해 보였다. 안경도 렌즈도 벗어 뵈는 게 없어서인가. 실없는 생각에 피식 웃다 거울 속 마주 선 웃는 나와 다시 하이브파이브, 이 긍정의 몸 짓이 나를 다독였다. 내가 나를 가린 적은 없다. 좀 더 괜찮아 보이려 치장을 한 거지. 그렇게 내 부족을 메운 건 삶의 열정이고 살고자 하는 의욕이 강했던 거지. 좋아, 잘 살아왔어. 앞으로도 잘하자.

  사전적 의미로 하이파이브는 승리나 성공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이 손을 들어 올려 마주치는 일이라 하며 우리말은 손뼉맞장구라고 한다. 'highfive' 영어 스펠링이 행위의 의미를 명확하게 한다. 거울 속의 나와 하이파이브를 다시 시도한다. 올해도 열심히 잘 살자.



이전 08화 빈궁마마 유비무환이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