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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Mar 25. 2023

고민청소

뭣이 중헌디...?

 치열하게 잠도 못 자고 고민하고 고민했다. 방에서 미끄러지면서 얼굴을 그대로 방바닥에 박아 코가 부러지고 엄청난 피를 흘렸다. 지난 일 년가량  마치 암을 만성질환 마냥 관리하며 잘 견뎌왔다. 그래서 너무 안도했던 것일까 2월 마지막 주말에 넘어져 쿵, 눈앞에서 별이 몇 개가 아니라 은하수가 펼쳐졌고 블랙홀까지 보였다.


  멈추지 않는 코피에 어찌할 바를 몰라  휴대폰으로 119를 부르려다  '우선 피로 척척한 옷부터 갈아 자'생각했다.  욕실로가 찬물로 얼굴을 닦고 렌즈를 꼈다. 그러는 사이 피가 멈췄다. 렌즈를 끼고 보니  그 와중에 집안 꼴을 누가 볼까 고민했다. 내가 움직인 자리마다 피투성이다.  우선 그야말로 피로 얼룩진 집안을  닦아냈다. 그러고는 온몸에 기운이 빠져 일단 좀 쉬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피가 멈추니 119를 부르는 것도 민폐란 생각도 들고 더구나 병원도 지정할 수 없고 등등 혼자만의 판단으로 좀 쉬다 택시를 불러 항암치료를 받는 병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누우니 몸을 더 이상 움직일 엄두가 나질 않아 그렇게 병원에 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그대로 누워  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코가 부러져도 5일 이내로 병원에 가면 원상복구 된다는 말에 뭉그적거렸다. 인터넷을 어야지...  그 시간에 병원을 갔으면 고민이 없었을 텐데...

 시간이 지나며 얼굴은 점점 퉁퉁 붓고 머리가 아프자 겁이 나서 월요일 새벽 암 치료를 받는 병원 응급실에 갔다. 임시 선별 진료소에서 간단한 문진을 받고 응급실에 입성했다. 월요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한산한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마 흉터는 바로 안 오셔서 피가 이미 엉겼어요. 흉터 생기겠어요."  코 말고 이마 고민이 늘었다.

"의식을 잃은 적은 없으시다하지만  머리에 이상 있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코에 집중된 내 예상이  빗나갔다. 그래,  머리가 더 중요하지. 고민이 가중됐다.

  CT를 찍고 다양하게 얼굴 각도를 바꾸며 포즈를 취하라는 요구에 맞춰 X -RAY를 찍었다. 다시 응급실, "오늘 항암제 드셨어요?" "검사에 지장 있을까 봐 안 먹었는데요.""지금 얼른 드세요" "안 가져왔는데..." "아아..." 고민이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그때 신경외과 의사가 왔다.  "혹시 넘어지고 구토나 메슥거림이 있었나요?" "메슥거림은 항암제 때문에 늘 있는데" "아.... 일단 CT사진으로는 머리에  다행이 손상이 없어요. 하지만 경우에 따라 뇌혈관이 외상 충격으로 부었다 가라앉으며 일주일 후나 한 달 후에도 터질 수 있어요. 한 달 동안 계속 지켜봐야 해요."  이제 코 걱정은 내 안중에서 사라졌다.  

 성형외과 의사가 왔다. "코뼈가 양쪽 다 부러졌어요. 이건 수술받아야 할 것 같은데 항암 환자라 수술 못할 수도 있어요. 코는 뇌 근처라 전신마취를 해야 돼서." "수술 안 하면 제 코는 어떻게 되나요?" "뼈는 그냥 두면 다 붙어요.  제자리에  안 붙어 코가 내려앉거나 휘어질까 봐 수술을 하는 건데요." "코는 깁스 안 돼요?" "그 깁스하는 과정이 수술이에요." "그럼 제 코는?"  " 코뼈가 흐트러지진 않았는데... 아마 안경 쓰고 계셔서 그런 것도 있고 방 안에서 넘어져 그런 것도 있고... 그래도 안경이 박살 나지 않아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서 제 코는...."  꼬치꼬치 물어보면 의사에게 민폐환자가 될거라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수술 안 하면 원래보다 좀 낮아질 수도 있고 매부리코가 될 수도 있고 들창코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수술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내 속이 다시 답답해졌다. 내 고민스러운 얼굴에 의사가 다시 말했다. "어차피 수술해도 부은 거 가라앉아야 하고 그러려면 빨라야 삼사일 뒤에 할 거예요. 마취과랑 얘기해 봐야 하니 내일 외래 진료 다시 오세요." 다시 코 걱정에 입원걱정까지 고민이 무한대로 늘어났다.  

그때 다시 신경외과 의사가 다가오며 말했다. "될 수 있으면 당분간 많이 움직이지 마시고 내일 신경외과 외래도 오세요." 아니 병원 오라며 움직이지 말라니,.... 택시를 타야 돼 나 고민이 스친다.

  성형외과 의사도 한마디 붙인다. "당분간 안경 쓰지 마세요."  고민이고 뭐고 뵈는  게 없어졌다.

  하필 그때 언니한테 안부전화가 왔다.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울었어? 감기 목소리가 아닌데...."  "지금 코뼈 부러져서 병원이야. 수술해야 코가 원상 복귀하는데 항암환자라 못할 수도 있대." 언니한테 괜히 말했나? 근데 병원인데다 목소리 때문에 어쩔 수 없었잖아.  고민이 증식됐다.

  집에 돌아와서 코를 살펴보는데 그새 코가 낮아지고 이마와 미간이 함몰된 거 같다. 얼굴이 부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수술 못하면 이렇게 납작하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자기 복제를 한다.  

"나 내일모레 한국 들어갈게. 이미 비행기표 샀어. 너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공항에서 곧장 병원으로 갈 테니 그리 알아." 허걱, 성질 급한 언니, 내가 엄살을 부렸나, 고민이 확장했다. 덕분에 정신이 블랙홀에 빠졌다.   

 불면의 밤을 보낸 다음날 "수술은 안 하는 걸로 하죠. 항암 환자에게 전신 마취는 무리고, 마취과에서도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사는데 지장을 줄 것도 아니라고..... 원하시면 코 수술은 나중에 항암 끝내고 미용성형으로 하세요"  나중이라니, 내 항암이 언제 끝날줄 알고....  또 언니는 얼마나 허탈할까.  이제까지의 수술고민이사라지자 코 없는 스마일 이모티콘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사는데 지장 없지만 코가 납작해져 살고 싶지 않다고,  난 지금 내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요.  분명 수술하러 병원에 또 입원하는 게 싫었는데 그 마음은 간데없다. 블랙홀에 흡수되지 못한 고민이 아직 남아있었다.

"한 달 동안 안경 쓰지 마세요." "뵈는 게 없어요." "그럼 쓰세요." 얼굴 상처 치료를 받으며 의사와 신경전이 오갔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간호사가 끼어든다. "안경 쓰시더라도 돋보기처럼 위로 쳐들고 보셔야 해요." 괜히 떼쓰는 어린애 같아 보였나 보다. "이거 집에서 소독하고 붙이세요. 그래야 흉터가 덜 남아요" 의사가 치료하고 남은 습윤밴드를 준다. 왠지 약국에서 파는 거보다 좋아 보인다.  어차피 병원비에 포함될 텐데....   그래도 감사 인사는 잊지 않았다.

 고민의 끝은 집에서 다시 대상포진이 왔나 할 정도로 앓았다. 피부과 의사가 민감한 아토피 환자라 상 후유증으로 열꽃이 일어나 습진이 생긴 거라고 했다.

"언니가 오셔서 몸의 긴장이 풀렸봐요. 몸도 의지 할 데 있다고 맘 놓고 아픈 거네."

 

   열흘쯤 지나 혈액종양내과 검사와 진료가 있던 날 의사가 말했다.

"암 환자도 코 수술 가능해요. 현재 상태가 크게 나쁘지 않으니 원하면 전신마취하고 수술해도 되는데.... 근데 제가 보기에 전과 달라진 거 없어요. 수술 필요 없어 보여요.   그래서  성형외과에서 수술 안한다고 그랬을 거에요. 하지만 머리는 아무래도 더 검사 아봐야 할거 같아요. 신경외과에서도 연락이 오고 해서  다음 암추적 검사 때 머리 MRI 추가할게요." 이건 또 웬 생뚱맞은 소린가, 여태 항암치료 때문에 수술 포기로 알고 이었는데...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이젠 내가 말귀도 못 알아듣나,  고민이 증폭 됐다.

 "항암이 코 수술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보다, 암환자니까 더 사는 게 더 중하다는 말보다,  이젠 암환자라고 광고하는 얼굴로 사는 거보다,  암 환자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삶의 질을 따져보고 싶다.   사실 이젠 하고 싶어도 몸이 안 따라서 포기하는 게 점점 늘어난다.  그런데 거기다 또 포기하라고 하니 이해는 하면서도 괜히 내 마음이 어깃장을 놓은 것인지 모른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가르는 판단의 기준에  목숨연명과 더불어 삶의 질도 따져보고 싶다.  

   코가 부러진 덕에  조카까지 출장을 핑계로 한국에 왔다. 그런데 기도 빠지고 멀쩡해진 내 얼굴에 허탈한 눈치다.  그래도 한국에서 가족이 모여 북적북적 하니 고민할 틈이 없었다. 언니도 조카도 생각보다 코가 멀쩡하다며 안도하고 다시 돌아갔는데 코뼈는 잘 붙고 있는지,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이렇게  지난 한 달 나의 고민은 쌓였다 말 한마디에 사라지고 또 새로 고민이 줄을 잇고 있다.  "네가 할 일이 없으니 별 걸 다 고민하는구나 ." 늘 뭔가 불안해하는 내게 언니가 하는 소리다. 안 해도 될 고민? 그런 거 안 할 방법은 할 일에 집중할 때인 거 같다.  고삼 때 수학 선생님이 그랬다.  "고삼 고민은 공부 안하는 애들이 하는 거다, 공부하는 사람은  고민할 시간이 없다."  그땐 그 선생님이 정말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좋은 선생님이셨다.

  이 글을 쓰다보니 고민이 해소됐다. 이제 집 청소도 좀 해야 되겠다. 고민이나 먼지나 대체 어디서 들어오는지  닦아도 금세 쌓인다. 그래도 육체노동이든, 정신이든, 움직이며 청소를 해야 쾌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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