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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Oct 19. 2023

암 생존자가 되다

삶을 질 향상을 위하여

  몇 달 만에 운동이랍시고 산책을 하던 중에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병원에서 온 설문조사라 나중에 해야지 하다 깜박했는데 자정이 넘은 시간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생각이 났다. 전이암 환자대상 연구자료 모집과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약속을 한 터라 또 잊기 전에, 이메일 제출이니 담당자를 깨우진 않겠다 싶어,  설문에 응답을 시작했다.  내 정보를 입력하자 "암 생존자 자기 효능감 척도..."라고 설문이 시작되었고 암 생존자의 일상생활 만족도에 대한 질문이 길게 이어졌다.  답을 하다 보니 5년 전 10월 18일에 입원해서 19일에 첫 암제거 수술과 임파선 조직 검사를 시행한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 수술 전에 유방암은 5년 생존율이 초기 발견의 경우 90% 이상이지만 암 2기부터 생존율이 대폭 떨어져 임파선 전이가 심한 3기의 경우 절반으로 뚝 떨어진 통계를 보고 덜컥 겁부터 났었는데,  아직 암이 내 안에 있어 표적항암치료를 받고 있지만 내가 5년 이상 암과 잘 싸워 암 존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삶의 의욕이 솟아났다.


암 생존자란 암을 진단받은 시기부터 남은 일생에 걸쳐있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며, 가족 구성원, 친구, 돌봄 제공자도 이러한 정의에 포함될 수 있으나 흔히 암 치료 이후 건강하게 살아있는 암 환자를  암 생존자로 정의한다.

 변혜선 외, 「암 생존력에 대한 개념분석」, 『종양간호연구』 12권 3호, 대한 종양 간호학회, 2012, (283-284)

 

  잠도 오지 않아 작년에 비혼 암환자의 일상을 여러 시점으로 구성한 『쿠마이의 무녀』를 쓰며 찾아보았던  논문을 다시 들쳐보았다. 그리고 완치판정도  받은 내가   생존자가 맞눈지  정확한  의미를 되짚었다. 올여름 시작부터  이사와 여러 일들이 겹쳐 몸이 굉장히 힘들었다. 아직 그 여파가 지속되고 있어 만사가 귀찮고 시 큰 퉁 했는데 암생존자가 되었다 생각하니 어깨가 좀 으쓱했다. 담당 의사가 지난달 진료에서 삶의 질 향상을 강조한데에는 이런 이유도 이었으리라.

  갑자기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만성질환처럼 암을 끼고 사는 사람으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 했다. 내 삶의 목표도 있고 간간히 일도 하고 있으니 내가 원했던 고상하고 우아한 삶은 아니어도 삶을 우울하게 견디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체력도, 경제적으로도 바닥을 치고 있으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뭐 있을까?   우선 생활에 불편한 점부터 해결하자는 생각에  그동안 짐을 늘리지 않겠다고 사지 않았던  물품들을  온라인 장바구니에 휙휙 담았다.  돈들이지 않고 삶을 질을 높이는 법을 고민해 놓고 돈 쓸 일을 만들고 있었다. 이건 진정한 삶의 질 향상이 아니다.  우선 현실의 불평불만이 인 무거운 머릿속부터 정리하자. 그런데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에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암 생존자가 되었음을 알리며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고민 중이라 했다.

"뻔데기 앞에서 주름잡고 있네. 하던 대로 살아. 괜히 부산 떨다 병나지 말고...."

아, 언니는 암 생존 27년 차다. 역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 진리다. 하던 대로, 좀 더 잘 먹고 잘 자고  활기찬 몸을 유지하는 게 삶의 질 향상에 으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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