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골 샌님 Jun 29. 2023

빈궁마마 유비무환이옵니다

  "어머, 그사이 빈궁마마가 되셨구나."

얼마 전 근 4년 만에 다시 만난 부동산 중개사가 내게 한말이다.  함께 집 보러 온 사람을 먼저 보내고 할 이야기가 있다길래 나는 이사관련 문제라고 생각을 했는데 단순히 친교가 목적이었다. 동생이 유방암에 걸려 임파선에 이어 자궁까지 번졌는데 내게 현재 괜찮냐고 물었다. 하여 내가 자궁 난소를 드러내고 한숨 돌리니 뼈로 전이가 돼서 표적항암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그러자, 내게 빈궁마마가 됐다고 한 것이다. 그분은 웃자고 한말인데 내가 죽자고 달려들어 그런 표현 듣기 싫으니 다신 쓰지 말라고 하기도 뭐 하고 "아, 그렇게도 표현하는군요" 정도로 받아쳤다.


   처음 들었지만  빈궁마마란 말이 유쾌하지 않게 계속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구글링을 해보니 사전적 정의는 당연히 없고 '자궁을 적출한 여성'을 속되게 이르는 여성비하 표현으로 여성운동 단체등에서 이미 규정했고, 몇 년 전 공영방송 드라마에서 사용되어 논란이 일 정도로 꽤 널리 사용되는 말이었다. 메이저 언론사들도 "무분별한 빈궁마마 만들기..., " "자궁근종으로 인한 빈궁마마...." 등등으로 기사제목을 올리며 자연스럽게 사용 중이었다. 내가 그 표현에 거부감이 든 것은 일단 내가 속칭 그들이 말하는 빈궁마마이고 여성성을 상실하고 궁 뒷방으로 밀려나 독수공방 한다는 이미지가 생성되었기 때문이었다.


   거의 5년전 암으로 유방 절제를 하고, 뒤이어 항암치료 과정 중 생긴 결석과 용종으로 담낭 제거 수술을 받고 또 항암제 부작용으로 자궁내막암이 의심되어 자궁과 난소를 적출했다. 그러고 나서는 뭔가 속이 휑해 기분을 달래려 '속없이 살기로 했다'란 표현을 자주 썼다. 그리고 '암, 아무렴"이라는 말장난도 치며 글쓰기를 했지만 빈궁마마는 타인이 쓰든 내가 쓰든 비하의도가 보여서 맘에 들지 않는다. 나의 얹잖았던 기분의 원인이, 조선시대 세자빈을 칭하던 빈궁(嬪宮)을 빈궁(貧宮)으로 한자를 바꿔 동음이의어 말장난으로 가볍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사용하는 말이겠지만,  여성성을 상실한 채  사회에서 밀려난 별 볼일 없는 여자란 부정적 이미지가 내게 덧 씌워진 것 같아서였다. 언어란 생각을 표현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수단이면서 언어가 사람을 규정짓기도 한다. 이미 자궁 적출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희화하고 비하하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빈궁마마와는 대조적으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될 것이 없다'는 말을 병원 유방암 환자 교육 때 사용하는 것을 보았고 그때는 유방암 예방과 치료를 위해 적절히 잘 활용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생존율 높은 암이니 미리 대비했으면 나처럼 고생 안 할 수 있다는 후회와 내 몸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니 오히려 긍정적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부정적인 말씨를 뿌리지말고 긍정적인 말을 뿌려야한다는 것은 내가 직접 체험한 일이기도 하다.

 오래전 영구 장애 판정을 받고 장애인 등록을 하던 날 "아 오늘 진짜 병신 됐네요"라고 말하는  내게 장애 판정서를 써주던 의사가 "그 말 진짜 병신 같은 말인 거 알죠?"라고  되받아쳤다. 그러면서 "장애는 극복하라고 생기는 거예요"라며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 말들이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아프고 싶고 장애를 갖고 싶은 사람 없고 누구도 닥치면 피할 수 없는 것이 병마와 장애이다. 이 세상에서 죽음과 병, 장애 등은 모든 인간에게 찾아오는 가장 평등한 것들 인 듯싶다,  그러니 너무 쉽게 말하지 말기를, 말의 씨를 뿌릴때 쭉정이 말고 좋은것으로 뿌려야 수확도 보람차지 않겠는가.




이전 07화 받기 싫은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