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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Apr 08. 2023

나무야, 나무야

나이테가 연륜이라네

  분명 여기쯤에 있었는데. 수혜는 고개를 크게 갸우뚱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봄을 맞아 가지치기를 하여 커다란 나뭇가지가 하늘을 두 팔을 뻗은 모습, 그리고 그사이로 황금빛 태양이 걸려 이었다. 둘레가 장대하고 키가 큰 나무인 데다 색색의 리본이 주렁주렁 달려, 주변 나무들 중 그저 눈에 들어왔을 뿐이라고 착각이었다고 할 만한 나무도 아니었다. 게다가  수혜는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었다. 다만 지는 해라도 정면으로 바라보기에는 눈이 부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찍은 사진이라 다시 찾아보니 사진은 나무의 상부만 나와 있어 나무가 있는 자리를 분명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또 길을 헤매네.’    

 

 타고난 왼손잡이인 수혜가 오른쪽이 바른쪽이라는 세상에 적응하느라 일까. 그녀는 방향감각이 없었다.  중학교 체육시간에 “좌향좌, 우향우, 가로정렬”이런 소리에 공포감을 느끼곤 했었다. 방향이 늘 틀리는 수혜에게 “우향우! 밥 먹는 손이 어디 어디야? 그걸 생각하면 되잖아.” “저 왼손잡인데요 “ 말대답 때문이었는지 민망해서였는지 얼굴이 새빨개진 체육 교사는 수혜에게 방과 후 운동장을 오른쪽으로 세 바퀴, 왼쪽으로 세 바퀴 돌게 했다. 그때 그런 벌이 부당하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체육교사의 몽둥이가 무서워 묵묵히 분을 삭이며  운동장을 돌았다.


 숲길을 뱅뱅 돌며 그때 생각이 났다. ‘허구한 날 헤매냐, 왜.’  수혜가 자신에게 화를 낼 때 숲 속 쉼터라고 적힌  벤치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물었다. “뭐 잃어버린 거 있어요?”“아뇨. 이 근처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던 거 같은데, 안 보여서.” 수혜는 머쓱한 웃음을 띠며 할머니에게 다가가 휴대폰 사진을 보여줬다. “아마 저쪽 산자락 공터인 거 같은데. 여기서 저 오솔길을 내려가면 중학교 뒷문 근처에 여기하고 비슷하게 공터도 있고 약수터도 있고 그렇지. 근데 나무에 뭐 소원 빌게 있나 보오.” “네에? 아, 아뇨. 아무튼 여기가 아니네요.”

“이 동네 새로 이사 왔어요?”할머니의 질문에 자리를 뜨려던 수혜가 엉거주춤 섰다. “네, 이사 와서 산책할 만 곳을 찾다가 나무가 멋지길래.” 수혜는 월세를 벗어나 전세를 살게 되어 좋아했지만 막상 이사를 오니 주변에 나무 한그루 보기 힘든 빌라, 아파트 촌이었다. 나무에 대한 열망에 불을 붙인 건 수혜의 사주에 나무가 없어 사주팔자가 기를 펴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부터였다. 땅과 금과 불이 많아 땅에 불을 지폐 금을 이런저런 형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데 땔감으로 쓸 나무가 전혀 없는 사주라고 했다. 그러니 점쟁이는 늘 나무를 가까이하라는 조언을 했다.

“전에는 여기에 성황당이 있었다오. 아직도 가끔 무당들이 와서 여기서 굿도 하고 기도도 많이 하지.”“아, 네”

 “여기도 원래 밀고 아파트 더 지으려다가 공원 만드는 게 낫다고 놔둔 모양이야. 나도 여기에 얽힌 얘기 듣고 좀 섬뜩해서 젊었을 때는 잘 안 왔었는데 나이가 드니 무서운 게 없어지나, 이젠 귀신이 나와도 나랑 얘기나 좀 하자고 붙잡을 판이야.”

할머니가 던지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수혜가 벤치로 가 할머니와 나란히 앉았다.

“여기에 무슨 사연이 많은 가 봐요?”

“여기가 원래는 높지 않아도 더 큰 산이었는데 이십 년 전에 개발하며 밀어서 지금은 한 삼분지 일가량 남은 셈이지. 말로는 녹지 조성이지만 여기 터가 세서  남겨놨지. 이 산 밀 때 사고도 많이 나고. 그때 사람 여럿 죽었지. 그게 여기 원혼들이 많아서 그렇다고들 그랬지.”

햇살 좋은 봄날인데도 수혜의 몸에 냉기가 몰려왔다.

“그 사진 속 느티나무인지는 몰라도 동란 때 인민군들이 내려와서 반동분자 색출한다고 사람들 끌어다 나무에 묶어 놓고 사람들을 총으로 쏴서 죽였는데, 다음에 국군들이 여기 점령하니까 이번엔 그때 죽은 사람 자손들이랑 고생한 사람들이 괴뢰군에 부역한 사람들 잡아다 여기 묶어 놓고 매질을 해서 맞아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하더라고.”

 “너무 가슴 아픈 얘기네요.”

 수혜는 오싹해져  “얘기 잘 들었습니다.”  일어나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덧붙였다

 “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어찌 보면 무도 희생자 아니겠소.  내려가다 그 느티나무 나무 보면 소원 한번 빌어 봐요. 모진 세월 버틴 나무라 영험하다고들 하더라고.”

 언덕을 면한 산이지만 비탈길은 꽤 가팔랐다. 중학교 후문이 보이고 약수터도 보였다. 수혜는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았다. 바로 여기다. 수혜는  나무를 봤다. 해가 지난번 보다 기울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지는 해의 위력은 금세 시들해져 오늘은 수혜가 나무와 해를 정면으로 응시할 만했다. 그러나 지난번의 찬란함 대신 나무에는 처연함이 감돌았다. 가지에는 누군가 소원을 빈 리본들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나부꼈다.  

 ‘이 꼴 저 꼴 사람들의 행태를 지켜보다 답답해서 사람들의 소원을 수리하는 건 아닌가’.

수혜는 영험하다는 나무에 몰입했다.

 ‘나무야, 넌 소원이 뭐니? 오래 살면 뭐가 좋아?’  나무에게 호감이라도 사려는 듯 수혜가 나무에게 물었다.  한 백 년, 아니, 이백 년 이상 살았나? 수혜가 나무 둘레를 가늠하며 세월을 계산할 때 새가 날아와 나무에 가지에 앉는다. 또 한 마리가 더 날아온다. 새들이 지저귐이 요란하다. 자신들의 보금자리라는 외침처럼. 새소리에 질린 수혜가 중학교 담벼락을 끼고 모퉁이를 돌아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의 눈에 숲의 나무들보다 보다 더 빽빽한 건물들이 보인다. 숲에서 들은 얘기보다 삭막하다.  그녀에게 퍼뜩 생각이 날아들었다. 이곳이 기가 센 것은 나무를 살리려고 그런지 모르겠다. 나무를 그냥 놔두라고. 나무의 소원은 아무도 숲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리라.

  사람이 셈을 셈을 치르지 않고도   얻는 것 , 아니 신용카드처럼 후불제로 인생을 따라다니는 게 나이다.  수혜는 나이 값하고 살기 어렵다고 늘 한 숨을 쉬었다. 연륜이 있는 사람으로 존경받으며 산다고 했는데.... 국어사전에서 연륜이 나무의 나이테를 뜻한다는 걸 보고 수혜는 놀랐다. 나이 값을 치르는 일이 나무가 나이테를 두르며 단단해지는 일이라 생각하니 삶을 산다기보다 버틴다고 생각한 자신이 어쩌면 그럭저럭 나이 값하며 사는 건지 모르다는 생각이 차 올랐다. ' 여기 이 숲마저 없으면 얼마나 삭막할 뻔했어.'  수혜는 기 세게 땅에 뿌리를 깊이 박고 버티며 연륜을 두르는 나무에게  감사했다. 가까이 나무들이 있으니 사주팔자에서 말하듯 운이 트일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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