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화학 약물이 몸에 쌓이면 병마를 생각처럼 쉽게 떨치기 어렵고 삶의 질도 저하된다. 그럼에도 생명은 강인하다. 물론 병원에서 치명적이지 않게 환자의 상태를 보고 약물을 쓰는 것이 주효하지만 신체의 작용은 참으로 오묘해서 죽을 것 같던 몸도 회복을 한다. 암세포는 무서운 세포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세포들들도 만만치 않다. 어떻게든 몸을 살려낸다. 내가 겪은, 앞으로 다신 겪지 않길 바라는 부작용에 대해 얘기해 본다.
림프부종이 극심해진 것은 항암치료 끝무렵이었다. 항암 치료 여파로 전반적으로 몸이 부었다고 생각했는데 유방외과 주치의가 림프부종이 심하게 온 것 같다며 수술한 쪽과 안 한쪽 팔 둘레를 비교하여 잰 결과는 무려 십 센티나 차이가 났고 몸무게도, 일주일도 안되어. 배출되지 못한 림프 액이 고여 6-7 킬로가 늘었다. 림프부종은 일반적으로 잘 생기지 않고 극히 일부의 선천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임파선 전이가 있는 암 수술 후 겪게 되는데 수술한 쪽 안 한쪽의 팔이나 다리 둘레가 2센티 이상 차이가 나면 림프부종이라 하며 최선의 치료는 도수 배출 마사지이다.
수술 때 떼낸 임파선 영향으로 순환시킬 림프절이 없어 림프액이 배출되지 못하고 고여 붓고 벌겋게 열이 났다. 림프부종이 손과 팔이 부풀어 올라 손이 고무장갑에 바람 넣은 것처럼 변하는 그토록 심각한 것일 줄은 몰랐다. 항암치료 외에 재활의학과 진료가 추가되어 매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옷, 신발, 심지어 양말까지 맞는 게 없어 엑스라지로 주문한 옷과 신발이 도착하기 전 할 수 없이 병원에 갈 때 베란다용 삼선 슬리퍼에 고무줄을 끼워 신고 가야 할 지경이었다. 항암 막바지에는 심부전 증상과 근육통까지 심해져 집에서 꾸물대도 5분이면 가는 병원을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3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너무 힘들어 집에서 좀 쉬는 게 더 빨리 낫지 않겠냐는 말에 재활의학과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림프부종은 일반 부종과 달리 더 심하면 석회화되고 60퍼센트의 환자가 우울증을 겪게 된다고 그러니 앞으로 살아갈 삶의 질을 생각해서 한 달 정도 힘들게 치료받으며 버텨보라고 하는데, 의사의 삶의 질이라는 말이 아주 강력하게 와닿았다. 당시 신체가 받는 고통으로 삶의 질은 정말 바닥이었다. 여기서 더 아파봐야 죽기밖에 더하겠어. 아픈 채로 하루를 연장해 산다는 것이 의미 없어 보였다. 삶의 질이 유지되어야 살아있어 좋다는 생각도 하겠지... 림프 도수 마사지와 약물, 림프 배출을 돕는 모비덤과 저 탄력 붕대 사용법을 배웠지만 오른손에 마비 증세가 있는 나로서는 감당이 안되어 오토 핏이라는 출시 된 지 얼마 안 됐다는 압박 기구를 집에서 착용했다. 노력의 결과인지 한 달쯤 경과하자 상당히 호전되어 양팔 둘레의 차이는 육 센티 정도로 줄었다.
항암 후 림프부종에도 불구하고 방사선 치료까지 마치자 림프부종도 상당히 호전되었다. 물론 림프부종이란 병은 치명적 공주병이라 물건을 들거나 심지어 가방을 메어서도 안되는데 혼자 살며 전혀 안 쓸 수는 없기 때문에 지금도 손과 팔을 많이 쓰고 나면 어김없이 림프부종이 찾아온다. 그래도 이젠 혼자서 도수 치료와 운동 요법 오토 핏으로 어느 정도는 제어를 한다. 외출도 간간히 할 수 있게 되고 짧은 산책을 하며 아침해와 저녁 노을을 마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이사도 했다. 이사는 당최 엄두가 안 났는데 포장이사 덕을 톡톡히 봤다.
림프 부종은 부은쪽과 안 부은 쪽에 차이가 확연하다. 항암영향으로 손톱도 시커멓게 변했다. 절대 손 안씻은거 아님.
하지만 항암치료 1년 후 정기 검진에서 암 치료와 정확한 연관성은 설명이 안되지만 담낭(쓸개)에 돌이 들어차고 이것이 용종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직접적인 고통은 없지만 간수치도 안 좋고 암으로 진행될 확률도 있다고 해 담낭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야말로 쓸개 빠진 채로 살게 된 날, 수술 후 간담췌 외과에서 전혀 의외의 소리를 했다. 자궁에 이상이 있으니 산부인과 진료도 보고 퇴원을 미루라고 했다. 자궁 내막이 지나치게 두꺼워 자궁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궁 초음파와 mri검사 결과 자궁 내막암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러나 마취와 몸에 다시 칼을 대야 하는 조직검사는 내 몸이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간담췌외과 의사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심난하게 산부인과 외래를 찾았을 때 유방암 항암제로 복용하는 타목시펜의 부작용으로 자궁 내막암이 생긴 듯하다고 했다. 암이 더 이상 생기지 말라고 먹는 항암제가 암을 유발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조직검사를 하는 것도 어차피 수술로 해야 하니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으로 자궁을 적출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자궁 적출은 피하고 싶어 상담차 찾은 유방외과 주치의는 한술 더 떠서 자궁도 문제지만 난소가 더 암 재발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니 난소도 함께 제거하자고 했다. 소파수술로 위험한 것만 제거하고 타목시펜을 끊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유방외과 산부인과 협업 회의 결과 자궁 난소를 모두 제거해 위험성을 없애고 타목시펜을 계속 복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타목시펜 때문에 자궁내막암이 의심된다며 자궁을 제거하고 계속 그 약을 먹으라니.......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처음 타목시펜을 처방받고 동의서를 작성할 때 부작용 중에 자궁 내막암이 천분의 일 확률로 발생한다는 내용을 봤고 의사의 설명도 있던 기억이 났다. 그 천명 중에 한 명이 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설마 그 한 명이 내가 되겠어? 하지만 천분의 일 확률도 내게 닥치면 백 퍼센트가 되는 것이다.
천주교 신자인 친구는 내게 하나님께서 "너 이래도 내게 냉담할래" 하는 뜻인 것 같다고 성당에 다닐 것을 종용했다. "하나님이라면 공평하셔야지. 왜 이렇게 나한테만 몰아서 고통을 주냐? 좀 해도 너무 하지 않냐?" 내가 울분을 토하듯 말하자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난히 너한테 심하긴 하지."
어차피 전신마취는 연거푸 못하기에 두 달의 기간이 내게 주어졌다. 그사이 무너진 마음도 다독일 겸 병에 너무 매어 사는 것도 싫어 친구를 만나 수다도 떨고 통영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동피랑에서 바라보는 통영은 내가 모르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덕분에 마음을 다지며 수술 확답을 하고자 서울로 올라왔는데 한쪽 눈에 검은 커튼이 내려온 듯 앞이 안보였다. 집 근처 안과에서 중형병원으로 다시 대학병원으로 하루 동안 병원을 정신없이 옮겨 다녔다. 망박 박리로 실명 위험성 때문에 모든 병원에서 응급으로 처리해준 결과였다. 우편 마비에 암환자라 대학병원에서 조차 어려운 환자라고 고민을 했지만 바로 다음날 수술에 들어갔다. 고도 근시에 노안이 오고 아토피에 항암의 여파까지 병원에서 모든 망박 박리 원인을 모두 가지고 있어 딱 집어 원인을 말하기는 어렵고 다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했다. 망막을 다시 붙일 때 가스를 주입하여 붙이는데 가스가 빠지고 망막이 자리를 잡기까지 2주 동안 엎드려서 지내야 했다. 참 곤혹스러웠지만 잘 견뎌 냈다.
그리고 다시 두 달 후 산부인과를 찾아 수술 예약을 잡고 난소와 자궁을 모두 적출하기로 했다. 어차피 쓰지도 안을걸 몸 안에 두어봐야 암 위험만 높이지 뭐하나 싶어 결정을 했지만 나의 여자라는 정체성은 이 로써 없어져 버리는가 싶기도 하고 부작용으로 신장이나 장유착 몸의 균형 상실 여러 부작용이 생각났지만 병 고치러 온 병원에서 알아서 고쳐주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4개월 동안 줄줄이 3번 전신 마취 수술을 하는 천분의 일 확률에 당첨된 병력이 특이하긴 한건지 수술전날 마취과와 산부인과 유방외과까지 전공의들이 줄줄이 찾아와 논문에 내 사례를 써도 되는지 동의를 구했다. 나한테는 비극이지만 이 나라 의학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하나 싶어 모두 다 열심히 동의해줬다.
이번에도 보호자로 언니가 이 엄중한 코로나 시기에 귀국해 자가 격리를 마치고 함께 병원을 오가자 한결 마음이 안정되었고 신기하게 언니가 꼬박꼬박 집밥을 챙겨주니 더 잘 먹는데도 살이 빠졌다. "진짜 제대로 잘 먹으면 살이 안 쪄요."라던 의사는 역시 가족의 관심은 최고의 치료약이라고 했다.
그리고 수술과 조직검사 결과 타목시펜으로 인해 자궁 내막증이 암으로 진행 단계 초기였고 자궁과 난소 제거로 암의 위험은 없어졌으니 계속 열심히 타목시펜을 챙겨 먹으라 했다. 참 아이러니하다.
이제 몸도 점차 회복되지만 역시 속이 비니 항상 뭔가 허전하다.
먹는 걸로 라도 채워야겠다. 요즘 또 나를 심난하게 하는 뼈 전이 의심도 내일 결과가 나온 다.
먹고 힘내서 들으러 가는 걸로. 의심은 의심으로 끝나길.
비혼 독신 암 환자가 진단과 치료 그리고 암 전이를 극복하며 새로운 일상으로 복귀하눈 과정을 생생하게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산문집 [쿠마이의 무녀 ]가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