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빨간약

항암치료의 시작

by 창골 샌님



3년 전, 10월 중순, 유방 일부 제거로 암수술을 끝내고 상처도 잘 아물고 회복도 빠른 편이어서 열흘 기약 입원이었는데 4일 만에 배액관 - 보통 피주머니라 부르는- 을 달고 퇴원을 했다. 무슨 일 생기면 응급실이나 병동으로 바로 전화하고 오라는 당부를 받았는데, 당시 집이 병원에서 도보 4-5분 거리라는 것도 조기 퇴원에 한 몫했다. 수술 자국도 겨드랑이부터 가슴까지 15 센티 정도 길게 일자로 옆구리로 나있어 눈에 띄지 않았고 누구에게 가슴 보여줄 일은 없지만 나의 언니는 가슴도 수술 뒤 처지지 않고 더 보기 좋아졌다고 만족해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 수술 경과와 임파선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외래를 찾았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담당 의사는 피주머니 제거 후 다른 때 보다 긴 시간을 할애하며 자세히 내 상태를 설명했다. 유방의 암덩이는 4.8 센티로 큰 편이지만 퍼져있지 않아 제거가 잘 됐다고 했다. 그러나 겨드랑이 쪽 임파선은 생각보다 전이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암 전이 의심이 가는 림프절을 28개 떼내 조직 검사를 실시한 결과 28개 모두에서 암세포가 자리 잡고 있어 미처 떼내지 못한 암세포를 염두에 두고 세게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최대 화학 요법 용량을 모두 사용할 예정이어서 남들보다 더 오래(6개월) 그리고 더 힘들 거라고 했다. 그 후에도 방사선 치료와 호르몬 수용체로 유방암 치료제 타목시펜(2년 정도 처방받는 게 일반적)을 5년 이상 10년까지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아직 항암 시작까지 3주의 여유가 있으니( 항암치료는 대개 수술 후 4주 이내에 시작한다) 그 시간 동안 항암 준비를 위해 정맥주사 관을 몸속에 삽입하는 케모포트 시술을 받고, 하던 일과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긴 기간 여행 같은 것도 불가할 테니 기분 전환 겸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뭐 죽으러 가냐? 여행은 무슨....."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보다 더 심난해하는 언니를 보며 처음 '아 이래서 사람은 가족을 이루고 사는구나'란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 수술 후, 3주는 주변 정리, 주로 앞으로의 치료비 대책을 세우느라 빠르게 흘러갔다.


항암 치료 첫날, 마음 단단히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데이(day) 병동에서 하루 동안 치료를 하는 곳도 있지만 내가 다니는 병원은 1박 2일로 입원을 시켰다. 처음에는 겁을 잔뜩 먹고 혼자서 집에서 밥 해먹을 여력도 없을 것이니 내게는 차라리 입원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피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이 있었고 전공의가 들어와 앞으로의 항암 일정과 약물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아갔다.

AC( Adriamycin+cyclophosphamide ) 항암이 3주 간격으로 4회 그리고 TC( Docetaxel+Cyclophosphamide) 항암을 1주 간격으로 12회로

총 16회의 화학적 약물 요법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항암 첫날 입원하고 친구가 언니에게 건강하다고 보내려 찍은 사진. 그리고 2주 뒤 저 머리는 모두 사라졌다.


병실은 모두 암환자로 긴 머리로 입원을 한 사람은 나밖에 없어 누가 봐도 1 회차라는 걸 알았다. 일흔 넘어 무슨 수술이냐며 수술을 포기한 갑상선 암환자, 위암 4기로 위를 거의 절제하고 아직 살아있으니 만족한다는 삽 십 대 초반의 환자, 4살 딸내미가 탈모가 온 자신의 머리를 보고 자지러지게 울더니 엄마를 피해 고민이라는 환자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다. 70대 환자가 젊은 사람들이 많으니 분위기가 밝아 좋다고 했지만 도통 적응이 안 될 정도로 왁자지껄하고 지나치게 명량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의 AC 주사액이 들어오며 병실은 한순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보통 암환자들이 빨간약이라고 부르는 안드레아 마이신 혹은 독소루비신이라는 약물은 정말 선홍빛의 새빨간 약물이었다. 간호사는 독한 약물로 움직이다 주사액이 흐르면 피부가 괴사 하니 격하게 움직이지 말 것을 당부하며 소변이 오늘 밤 빨갛게 나오니 놀라지 말라고 했다. 항암을 끝내고 방사선 치료만 받는다는 (입원을 안 하면 보험료가 안 나와 입원해서 치료받는다는 ) 맞은편 병상의 환자가 간호사에게 빨간약만 보면 속이 뒤집히니 그 약을 안 보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간호사가 커튼을 치고 계시라 말했다. 그러나 그건 갑갑해서 싫으니 내쪽에서 가려야 된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진상이네'라고 생각했지만 항암 3회 차를 넘어가면서는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빨간 약이 바로 암환자 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전형적으로 묘사하는 구역질, 구토, 오심, 심장 협심증, 그리고 탈모를 유발하는 바로 그 약이었다. 처음이라 그런가 약간의 어지러움 외에 별다른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소변이 피가 나오는 것처럼 새빨갛게 나오자 실감이 났다.


그래도 나는 입덧보다 더 심하다는 메슥 거림도, 구토도 심하지 않아 병원에서 나오는 밥을 모두 꼬박꼬박 열심히 먹었다. 모두들 냄새 때문에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하고 냄새를 피해 식사시간이 되자 우르르 몰려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아 뻘쭘했지만 나는 나중을 생각해 꿋꿋이 다 먹었다. 물론 회가 거듭되며 나 역시 음식 냄새에 구토가 나 식사 신청을 아예 안 했다.


경우 모두들 큰 이상 반응 없이 잘 넘어가나 보라고 신기해했다. 머리도 금방 안 빠질지도 모르겠다면서. 역시 혹시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마련이다. 역시나 나도, 오히려 더 빨리, 항암 1차 주사를 맞은 지 딱 2주일이 되는 날 저녁 머리를 묶으려 잡는 순간 머리카락이 그대로 다 빠져 손아귀에 쥐어졌다. 쓰레기통에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은 내 몸에서 나간 것인데도 섬뜩했다.

모자와 가발이 생활필수품으로.....



항암의 횟수를 더해 갈수록 몸이 힘들어지고 심지어 서있는 것도 힘에 부치자 머리카락은 안중에서 사라졌고 오히려 몸도 힘든데 간수하기 간편하다는 생각도 했다. 다만 겨울이라 집에서도 머리가 시려 모자를 밤에 잘 때도 쓰고 있어야 했다.

머리는 삭발을 하고도 까무잡잡하게 까슬까슬 모근이 남아 있었지만 그나마도 두 번째 항암 후에는 눈썹, 코털까지 빠졌다. 눈썹과 코털이 빠지니 눈에 먼지가 유난히 많이 들어가고 콧물도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인간의 몸은 쓸데없이 몸에 붙어 있는 건 없구나 절실하게 느끼며 있을 땐 몰랐던 깨달음을 얻었다. 손톱과 발톱도 검푸르게 변했지만 손톱이 완전히 빠져버린 사람도 있어 내 경우는 고민 축에 끼지도 못했다. 항암주사를 맞으면 4, 5일 정도는 속이 메슥거리고 몸이 처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면역력이 떨어져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하고 다녔다. 그러다 다시 항암 주사를 맞으러 갈 때쯤 백혈구 수치도 오르고 기력도 살아났다. 항암주사를 맞고 난 후 육류 냄새가 싫어지고 간이 센 음식은 혀가 쓰라려 먹을 수가 없었는데 배와 누룽지가 가장 속이 편했다. 채식과 과일 위주로 식사를 하게 되고 머리도 없고 외출도 거의 없어 본의 아니게 수도승처럼 도를 닦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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