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암? 어불성설이다.

착한 암의 사악한 본성을 키운건, 바로 나!

by 창골 샌님

갑상선암, 유방암처럼 진행 속도가 느려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이 높은 암을 보통 착한 암이라고 부른다. 암에게 착하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어색하지만 진단 받고 손쓸 수도 없이 금세 퍼져 버리는 다른 암에 비하면 환자 입장에서 생존율 높은 암이라는 사실은 적잖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착한 사람이 참다 폭발하면 더 무섭듯, 시기를 놓치면, 무한 증식이 특성인 암세포를 제거하는 과정은 고통이고 검사 때마다 불안이 엄습한다.

가슴에서 몽글몽글한 무언가가 만져진 것은 2018년 1월 초 무렵이었다. 언니가 유방암으로 고생해본 가족력이 있어 의심은 갔지만 설마하며 선뜻 병원을 찾을 생각을 못했다. 얼마뒤 다시 만져보았을 때 몽우리가 잘 잡히지 않는 느낌에 안도해 그냥 월경통이 심해 나타난 증상일거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 5월 부터는 가슴 속에 말랑한 탁구공이 들어있는 것처럼 계속 몽우리가 가슴에서 만져졌다. 겁이 났고 유방외과를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리 한구석에서 치고 올라오는 강한 두려움이 실천을 붙잡았다. 무엇이든 닥친일을 미루면 인생에는 혹독한 이자가 붙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아니면 다행이지만 만일 암진단이 되면 바로 치료를 시작해할 텐데 시간강사 주제에 병원 갈때마다 번번히 강의를 빼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여름 방학이 되면 검사하자고 마음을 정했다. 하지만 방학을 하고도 성적처리를 핑계로 미뤘다. 그러나 사상최초 서울의 기온이 40도를 육박하던 8월, 가슴의 몽우리말고도 겨드랑이가 툭 불거져 나오고 아팠다. 더 이상의 회피는 안된다고 생각해 병원을 찾았다. 이미 예상된 상태로 검사를 받아선지 유방암 진단을 받을 때는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강의 재계약 욕심에 진단받기까지 망설이던 내 마음과 달리 담당의사의 결정은 빠르고 신속했다. 유방암 3기로 임파선 전이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항암부터시작하는 사람들과 달리 수술부터 받아 유방의 암제거와 임파선 전이 정도를 파악할 조직검사를 동시에 실시하기로 했다.

암세포와 전투에 전력을 다지며 늘 그랬던 것 처럼 혼자 이겨내 보리라 하였지만 수술과 항암 치료에는 보호자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병원에서는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겠지 하는 생각에 결국 멀리 사는 언니와 주변에 내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엉뚱한 상황에서 감정이 북받쳐 올라 괜한 원망과 자학 그리고 눈물을 쥐어짜내고 말았다.

"유방암은 착한 암 이래잖니? 치료 잘 받으면 될 거야......."

생존 확률이 높고 완치율이 높다고 나를 위로 해주려는 말임에도 내가 사투를 버릴 암을 착하다고 표현하는 친구의 말에 화가 났다. 심술난 어린애처럼 마음이 울컥했다.

"세상에 착한 암이 어디 있어! 착하다면 사람 몸속에서 자라지도 말아야지"라며 나는 착한 암이라는 표현에 내 고통이 경감되는 것 같아 반발을 했다. 온순하게 순리에 따르는 것을 표현하는 착하다는 말과 몸속에서 유해세포가 무한증식 하며 내 몸을 잠식하는 암을 합성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처럼 보였다.


유방암 위험군에 속한 내 몸에 자라기 시작한 암세포는 악마의 순리를 따라 세상사의 중압에 출구 없이 허우적거리며 피폐해진 내 몸과 정신 상태를 보고 적절한 서식지라 여겨졌을 것이다. 초경을 일찍 시작하고 오십이 가깝도록 폐경을 안했고 독신으로 출산 경험이나 모유 수유 경험이 없는데다가 가족력까지 있는 여자의 몸 한구석, 쓸모를 잃은 유방에는 아무래도 암세포가 증식하기에 적격이었으리라. 내 몸을 귀하게 돌볼 여력이 없는 틈을 타 급기야 암은 임파선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내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직장, 돈, 노후보장, 건강의 문제들로 삶을 그저 견디고 있다고, 인생사에 진저리치던 결과물인 암의 발견은 오히려 내 생활의 짐을 내려놓을 구실을 주었다. 암 때문에 좀더 가까이 다가온 죽음 앞에 아둥바둥 사는 세상사가 부질 없어 보였다.


수술 전, 유방 전체 절제를 할지 부분 절제를 할지 담당의에게 질문을 할 때, 말없이 지켜보던 언니가 끼어들었다.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가슴까지 없으면 너무 삶이 허전해질 거 같으니 가능한 보존해 주세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담당의는 “신체 균형을 생각하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덜한 부분 절제로 가는 게 좋을 겁니다. 대신 항암과 방사선치료를 좀 오래 받으셔야합니다”라고 응수했다. 수술하는데 나이 오십을 지척에 둔 사람에게 결혼 여부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었지만 언니나 의사나 비혼이라 발생할 수 있은 인생의 기회를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언니 역시도 전체 절제를 하는 유방암 수술치료를 받았기에 돌봐주고 의지 할 남편이나 자식 없는 인생을 사는 동생이 못내 걸리는 모양이었다.

“자식 낳고 쓰라는 몸이 그렇지 못하니 탈이 난거야.”

언니의 말에 순간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산 언니도 걸렸잖아’라는 투정이 스쳤지만 언니의 푸념이 맞는 말인 듯하고 속상해하는 모습이 아리기도 해 오히려 위로를 건넸다. 나도 결국 친구의 말을 반복하는 것이 위로 였다.

“유방암은 착한 암이라잖아.”

위로는커녕 오히려 나 보다 더 발끈한 언니가 나대신 세상에 항변을 했다.

“착한 애들이 응큼하게 뒤통수친다고 사람 목숨 갉아 먹는 게 암인데 세상에 착한 암이 어디 있어?”

언니의 말처럼 암을 착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항암 치료는 암 세포만 죽이지 못하고 폭탄이 투하되듯 온전한 세포들도 죽어나가게 했다. 살 자고 치료를 받는데 몸은 항암치료 횟수가 거듭될수록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은 삶에 오기를 불러왔다. 하루하루 안 아프고 잘 살고 싶어졌다. 생각하면 할 수록 하고 싶은데 나중에라고 미룬 일들을 하고 싶었다.그러고 보니, 이토록 삶에 집착을 가져왔으니 착안 암이 맞긴 맞는가.


핑크리본유방암 인식의 국제 상징이다. 일반적으로 핑크색과 핑크색리본은 유방암 상표와 함께 착용자와 후원자를 식별하고 여성 유방암 환자를 위한 도덕적인 후원을 표현한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D%95%91%ED%81%AC_%EB%A6%AC%EB%B3%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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