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품들 사이 빈공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잠시 쉰다. 아직 허공에 뜬 내 열정이 보인다. 고맙게도 친구가 이 순간을 포착해 사진을 전송해 줬다.
속없이 살게 됐다.
어느새, 비혼, 독신이란 말보다 독거란 말이 삶에 그림자를 드리운 나이에 화들짝 놀라 나의 나이를 세어본다. 오십이 훌쩍 넘었다. 지천명, 나이 오십이면 하늘의 이치를 안다는데, 하늘의 이치는 언감생심이고, 오십 년 넘게 써온 내 몸도 알지 못한다. 40대 내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굴레를 벗어나려 애쓰고 견디며 내일의 희망을 꿈꿨다. 그러나 내일의 희망은 오지 않았고 지친 오늘을 그저 반복하는 악몽이 지속되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다'는 한 숨 속에 천지개벽외에 내가 잘 살 방법은 없어 보였다. 말이 씨가 된다고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때문인지 정말 죽을 병에 걸렸다. 암진단과 암투병. 그리고 뒤이어 코비드 19의 창궐로 정말로 천지가 개벽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온 이 일들이 복권 당첨 마냥 막연하게 내일을 꿈꾸기보다 이미 들어선 오늘을 소중하게 만들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기다리느라 더이상 오늘을 버리지 말자. 죽을 병에 걸리니 더 살고 싶어졌다. 여전이 잘 숨쉬고 살고 있는 오늘이 소중하다. 게다가 전염병의 창궐은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병치레로 모든 일을 놓아 버린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나만 왜?"가 아니라 모두가 멈춰섰다는 사실은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투덜대던 내게 다소 세상이 균질해진 느낌을 갖게 했다.
40대 후반 유방암 3기 말 진단을 받은 후 암 제거와 항암 치료를 반복하다 보니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내 몸은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때마다 없어지지 않은 암세포의 잔재들로 유방, 담낭, 난소, 자궁 이렇게 하나씩 적출됐다. 결혼하여 아이를 갖을 나이도 지나 앞으로도 쓸일 없을 장기들이지만 수술때 마다 내 몸에서 퇴출되는 장기와 더불어 나도 이 세상에서 퇴출되는 것 같은 공포가 찾아 왔다. 그러나 수술을 끝내고 암세포의 공포에서 벗어난 몸은 홀가분했다.
'난 이제 쓸개도 없는 X야"
"나 정말 속없는 사람이 됐어."
속없이 내던지는 내 말들에 주변 사람들의 심난한 얼굴에 다시 친근한 웃음이 어린다. 속이 없어진 대신, 그들의 웃음처럼 삶이 친근해졌다.
빨강머리 앤이 그랬던가? "삶이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은 멋진일이다. 생각지도 못한 멋진 일이 일어나니까."
암치료를 받으며 죽을것처럼 아픈날, 이렇게 까지 하며 내가 살이유가 뭐냐고 투덜거리고 여전히 내가 바라는 내가 꿈이 지체 되어 조바심 냈다. 그러나 몸의 회복력의 꾸준한 활동으로 어느새 고통은 자취를 감추고 하루가 다르게 개운한 몸으로 아침을 맞는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어느날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 설레기도 한다. 내 삶의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암투병, 꿈을 향한 질주, 망가진 외모와 관계 회복 이런 최근 내 삶의 궤적이 앞으로 살아 나갈 토대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이 이야가들을 브런치에 내 놓고자한다. 지천명하는 삶의 첫 바퀴를 이렇게 앞으로 굴려 본다.
뼈전이가 의심되어 오늘 다시 검사가 있다. 김종삼 시인의 "어부"의 한 구절을 되내인다.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비혼 독신 암 환자가 진단과 치료 그리고 암 전이를 극복하며 새로운 일상으로 복귀하눈 과정을 생생하게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산문집 [쿠마이의 무녀 ]가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