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1차 후 퇴원을 할 때 수간호사가 말했다. "머리 모근이 이제 다 빠지려고 머리 밑이 아플 거니 그럴 땐 고민 없이 삭발해버리세요. 그러면 머리가 덜 아파요."
그러나 그다지 실감도 안 되고 와닿지도 않았다. 하지만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딱 이주가 되는 날,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세수를 하고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자 머리카락이 한 움큼 딸려 나왔다. 은근히 안 빠질 수도 있다는 기대는 허물어졌다. 목욕탕과 방 휴지통에 빠진 머리카락들로 가득 찼다. 휴지통을 비우고 돌아서면 순식간에 방바닥은 머리카락으로 풀밭이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의 암환자들은 머리가 빠져 울부짖는 장면만 나오며 애처로움을 극대화하지만 가장 골치인 뒤처리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검은 비닐봉지를 찾아 주워 담으며 가족이 없어 이런 꼴 보이지 않아도 되고 나도 섬뜩한 저 머리카락을 누가 보지 않아 다행이라고 독신 독거의 장점을 되뇌었다.
아무리 버텨도 결국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자발적 삭발을 할 것인가 아니면 화학 약물에 버터 내지 못하는 내 몸의 세포들의 흐름을 따라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결국 이래도 저래도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탈모가 시작되었고 어차피 모두 빠질 테지만 우선 걸을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를 주체하기 힘들어 삭발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야밤을 틈타 손님 없는 미용실을 물색했다. 머리카락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인지 삭발은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아쉬움이나 내가 살자고 별짓을 다 하는구나 등등을 생각할 틈도 없었다. 생각대로 내 모습은 낯설었다. 예쁘지도 않았지만 흉하게 보이지도 않았다. 내 눈엔. 나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구나. 민머리를 손으로 톡톡 치고 훑어내리며 쓰다듬었다.
"탈모는 약효가 잘 듣는다는 증거겠지."
그나마 외모에서 유일한 자부심이었던 ‘비단 같은 머릿결'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삭발도 한 마당에 도를 닦아 진짜로 초극해 볼까, 내 몸을 살리고자 함은 삶의 의지다.
“가발 쓰고 갈까, 모자 쓸까?” 병원 입원 준비를 하는 데 동행해주겠다며 집으로 찾아온 친구가 내 질문에 기가 찬 듯 피식 웃는다.
“이 와중에 설마 그런 질문은 안 하겠지 했는데, 예상을 빗나가는 법이 없군.”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친구가 모자를 가리킨다. 외모에 자신감을 얻는다는 건 치장에서 오는 건 아닐 텐데. 뭐 그렇다고 본판 불변의 법칙을 강조하고 하려는 건 아니지만 예쁜 사람이야 삭발을 해도, 거지 분장을 해도 예쁘다. 아, 그것도 분장이니 그럴까. 난 배우가 아니다. 외모로 먹고사는 것은 아니지만 뭐든 예쁜 게 좋다. 외모를 가꾼다는 건 내 품질을 좀 더 빛나게 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실속형으로 가야 하나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나아 보일까 하던 허영심에 머쓱해진다. 친구가 내 가방을 챙겨 들며 말했다.
“환자는 환자답게.”
참으로 시의적절한 말이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1개월쯤 지나자 머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 그때 까슬까슬 올라온 머리에 세상 근심이 다 날아간 것 처럼 안도를 했다. 하지만 머리가 자라는 기간은 더디고, 타목시펜 복용 외에 항 에스 트로겐 주사를 맞으면 여성 호르몬이 없어서인지 머리가 상당수 빠지고 다시 나길 반복하고 올 초 난소와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한 후 앞머리가 홀라당 빠져버렸다. 여자 대머리가 될까 봐 고민 중인데 피부과에서도 미장원에서도 모근은 살아 있으니 기다려 보자고 한다. 이 기다림이 결코 길지 않길 바라며 탈모로 고심하는 남성분들에 대머리라 키들거린 거 반성한다. 아무래도 마음을 곱고 바르게 써야 머리가 잘 자랄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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