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필요한 것들
제빵에 있어서는 갓 구운 빵이 어떤 것보다 맛있는 반면 내일이 더 맛있는 품목들이 있다.
대게 제과 품목들이 당일 구운 것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먹을 때 맛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케이크도 당일 제작한 케이크보다 하루가 지나고 나면 더욱 맛있어진다.
마카롱은 당일 제작해서 하루의 냉장시간을 보내고 나면 크림과 꼬끄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식감에 따라 취향이 갈리는 스콘과 쿠키도 풍미가 살아나는 건 하루가 지나고 나서 이다. 파운드케이크와 시폰케이크는 만들어 밀봉해서 실온 보관한 뒤에 먹으면 내상이 더 촉촉한 맛을 낸다.
제과에는 버터를 베이스로 하는 제품이 많아서 당일 만들었을 때도 맛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버터의 풍미가 살아나고 실온에서 보관했을 때 맛있어진다.
제빵은 반죽할 때 공들이는 시간이 길다면, 제과는 굽고 나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빵반죽은 발효시간이 12시간 이상 걸리고, 제과반죽은 구운 후 하루가 지나면? 단 몇 시간이라도 지나야 맛이 살아난다.
우리는 빵반죽일까? 제과반죽일까?
잘 빚은 반죽으로 구워질지, 구워진 반죽이 맛이 들기를 기다려야 할지.
나는 그 어디쯤 일까?
어릴 땐 서른이 넘으면 그럴듯한 어른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밀가루덩어리 인가보다.
빚는다고 빚어봤는데 발효도 덜 된 거 같고, 이도저도 아닌 그런 반죽 말이다.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치열하게 살지 않은 것도 아닌데 뒤쳐진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런 밀가루 덩어리들은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못난 자격지심이 되어 나를 집어삼켜버렸다.
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