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관점에서
제빵 마스터과정과 제과 마스터 과정을 수료한 지도 1년이 넘게 지났다. 그간 여러시도를 하면서 테스트도 하고 새롭게 만들어 보기도 하며 혼자서 사부작 되는 시간을 보냈었다. 막상 다시 매장을 오픈하지 않고 취미로 남겨두니 손에 밀가루 안 묻힌 지도 몇 개월이 흘러버렸다. 빵은 굽지 않으면서 르방만 꾸준히 키우며 지냈다.
빵을 한창 만들 때는 빵을 무의식적으로 안 사 먹게 되었고 이미 만들어둔 빵을 소비하게 되었다. 빵을 만들어 먹는 게 익숙해지면서 정말 핫하고 유명한 빵집이 아니라면 쉬이 도전하지 않았다. 약간의 오만과 고집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빵을 만드는 사람이고 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배운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스스로에서 씌워서 있어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빵쟁이들은 빵을 만들지 말고 사 먹으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 속의 숨은 뜻은 빵을 만드는 과정과 시간이 많이 드니까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만드느니 맛있는 빵을 종류별로 골라 사 먹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그런 생각이다.
나 또한 동의한다. 만들어 먹으면 마음대로 원하는 재료를 넣고서 만들 수 있고, 가장 좋은 컨디션의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에 매료되어 만들어 먹기에 빠지면 답이 없다. 그리고 저온발효를 통해서 빵을 만들면 최소 이틀의 시간이 소요되니 요즘처럼 하루만 쉴 때는 만들기 조차 쉽지 않다. 만들어진 빵을 골라 담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달까? 그렇게 빵을 점점 사 먹게 되는 거다.
동네의 작은 빵집에 들러서 사장님이 만들어 두신 빵들을 차근차근 보면서 만드는 과정만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 혼자서 일하는 소규모 빵집에선 생각에 잠긴다. 혼자서 어떻게 이 많은 종류의 빵들을 만들어 내신 걸까. 종류가 스무 가지 넘어가는 걸 보면 몇 시에 출근하셔서 일해야 할까 계산해보기도 하고, 가격표를 볼 때면 얼마나 팔아야 이윤이 남을까를 골똘히 생각해 본다.
요즘처럼 경기가 침체되고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잘되는 가게도 문을 닫기 십상인데, 유지를 위한 판매를 해야 하는 난처한 입장을 잘 알기에 괜스레 하나라도 더 담고 싶다가도 한참 오른 물가상승률에 멈칫하게 되기도 한다.
이제는 카페사장도 아니고 베이커도 아니고, 그냥 소비자가 되어보니까 과거 나의 카페의 기억이 불현듯 생각도 난다. 카운터 안에 있던 나와, 카운터 밖에 있는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지만 입장은 달라져버린 허탈한 감정과 여러 복잡한 마음들이 뒤엉켜있다. 언제 다시 베이커로 돌아갈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때보다는 예민했던 마음들이 잔잔해졌고, 날 괴롭혔던 공황도 이겨내고 평온해졌다. 당분간은 홈베이커이자 소비자의 입장에서 빵을 마주하며 행복한 기억들을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맛있는 빵과 따뜻한 커피 한잔이 바로 행복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