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는 우리, 아직 거기 살아
잊었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직장에서 마주쳤던 동료, 마음을 주고받았던 누군가.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풍경 속에서 나는 또 당신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아이폰에는 ‘숨김’ 기능이 있죠. 그렇게 가려두었던 당신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숨어 있던 많은 사진들 사이에서 멈춰버린 그 시절의 우리가 있었습니다. 도대체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두 사람 모두 함박웃음을 짓고 있어요. 망가진 채 찍은 4컷 사진도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지울 수도 있었지만 지우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내가 참 즐거워 보였거든요. 자연스럽고 맑은 내 모습이 예뻐서 그렇게 숨겨두었습니다. 꼭꼭 감춘다고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과 함께 말이죠.
당신과 나의 이야기는 늘 여름을 닮았습니다. 햇볕이 뜨거울수록 우리는 더 애틋해졌죠. 매번 ‘올해 여름이 가장 더운 것 같다’고 느끼듯, 그 시절 주고받았던 마음도 매번 ‘가장 진했던 것 같다’는 착각 속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번엔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다시 돌아올 거란 근거 없는 확신 속에서요. 그러고 나니 내겐 남은 게 없었습니다. 비워진 마음만 공허하게 남아 있습니다. 우산도 없이 쏟아지는 폭우를 바라보며 그저 멍하니 서 있습니다. 데리러 올 이 없는 그곳에서 비가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죠.
둘이었던 사진을 혼자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더 외롭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미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배신했다고 원망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나눌 수 있었던 마음과 줄 수 있었던 사랑에 감사하려 합니다. 처음엔 모든 걸 준 내가 참 바보 같았습니다. ‘조금은 남겨둘 걸 그랬나’ 후회도 했죠.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비워야 비로소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걸요. 그리고 그걸 깨닫게 해 준 것도 뜨겁고 아릿했던 그 여름이었습니다. 곧 가을이 오면, 매미 소리도 조금씩 잦아들겠죠. 요동치던 마음도 이제는 한풀 꺾일 겁니다. 저무는 여름을 기억하며 다시 당신을 떠올립니다. 당신이 퍽 밉다가도 어딘가 안온하길 바라는 그런 모순된 마음으로요.
아직, 여기 혼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