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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퀸들의 행복

에필로그

by 나철여

쭈욱 늘려 쓰면 끝이 없고
잘 쓰려면 필력이 없고
약속은 지켜야 하겠고

연재마감이라는 말대신 행복하다는 말 <아즈 함 바훗 쿠스 해>로 글 속에 살짝 남겨뒀는데

자꾸 자와의 연재 약속을 지켜 달라는 알림이 뜬다.


이 타이밍에 <선우정아의 도망가자>가 크게 들린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 돌아가자 씩씩하게...


월ㆍ화ㆍ수 연재를 월요일로 살짝 고쳐놓고는 이렇게라도 마감이라는 목차로 전하고 있다.

에필로그는 왠지 쑥스럽고 왠지 부족한 변명 같아서 망설임을 거듭하며 다시 쓴다.


쓰면서도 행복했던 여행 이었다.

또 다른 기억들을 불러오고 다시 감사하게 된,

쓸 때마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파이브퀸들의 인도 여행기였다.


박 씨 가문에 시집와서 낙타등이 되어버린 시간들을 애써 감추려는 언니들의 웃음과 눈물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여행 마지막날까지 체력의 한계를 웃음으로 승화시킨 언니들의 깔깔거림은, 비 내린 뒤 반짝이는 거미줄 같았다.


올케언니 넷이랑 함께한 인도여행은, 사진 툭 글 툭으로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왔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신들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헤르만 헷세, 싯다르타도 인도를 배경으로, 류시화도 인도를 배경으로 신을 찾았다 했지.




'이런 글 누가 읽어줄까' 하며 큰 기대 없이 썼다.


그저 여행기록 하나로,

'언젠가 조카들이라도 우연히 브런치북을 접할 있다면' 하는 1초기대가 시작점이었다.


능력과 영감이 충만한 대작가도 한 권을 쓰려면 얼마나 고독했을지 감히 짐작된다.

짧은 필력으로 얇은 브런치북 하나 만드는 것도 구독자가 없었다면 이마저도 쓸 없었을 거다.


누구나 하는 여행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케언니들과의 여행이었다.


음식 때문에 매번 곤욕을 치른 해외여행,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티 내지는 않았지만, 인도에 대한 나의 선입관은 인도의 공기조차 내 비위를 거슬렸다.

하지만 비위를 다스리는 더 큰, 이브퀸들의 분위기 휩쓸려 다녔다.


나의 위치는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사명감으로 가득 차게 했다.

올케언니들의 쉼을 위한, 퀸들이라 붙여 준 오빠를 위한, 모두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위한 사명감이었다.


메이드 아리나(중앙)의 손맛과 환대 잊지 않을거야


오빠의 뜨거운 환영과 아리나의 정성 담은 식탁이 여행 내내 우리를 행복하게 했고, 따뜻한 배웅이 인도를 떠나는 우리 발걸음을 더 가볍게 했다.


- 메이드 인도 아가씨 아리나는

유튜브로 배웠다며 김밥이랑 한국음식을 제법 맛깔스럽게 차렸고, 더운 날씨로 땀 젖은 옷 세탁까지 마다하지 않고 우릴 극진히 대해 주었다.

나는 몇 년 동안 오빠를 잘 도와 착하고 착실한 아리나에게 빨간 장미색 립스틱을 선물했다. 선물을 받고 너무 좋아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


아리나로 인해 모든 인도 여성에 대한 좋은 이미지 하나 더 남아있다. 짧은 작별 포옹에서도 처음 느껴본 오감이었다.


오지랖도 오감이야 로 시작한 여행기는 이렇게 막을 내리며

나태주 님의 시 <다시 중학생에게>를 <다시 퀸들에게>로 살포시 얹어본다






나태주 / 다시 중학생에게

사람이 길을 가다 보면
버스를 놀칠 때가 있단다.

잘못한 일도 없이
버스를 놓치듯
힘든 일 당할 때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아이야
잊지 말거라.

다음에도 버스는 오고
그다음에 오는 버스가 때로는
더 좋을 수가 있다는 것을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야
너 자신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너 자신임을 잊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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