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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들고 떠납니다 D-5

바꿔 꿰찬 걱정주머니

by 나철여

남편은 본인의 걱정보다 내 걱정을 더 하고 있다.


남편은 이미 중증 등록 된 공식적인 폐암환자이지만, 나는 명칭도 어정쩡한 난치성(D352) 등록된 환자다.

병명에 걸맞게 원인도 치료도 난해하다. 굳이 들자면 원인은 스트레스이고 신경을 과도하게 쓰면 치료도 어렵다는 병이다.

남편의 발병 후 3년까지는 내정신이 아니었다.

고비도 크게 세 번의 죽을고비를 넘기 만 7년이 지났다.


어느날부터 내 눈에 핏발이 자주, 심하게, 터져 안과를 갔는데 의사는 더이상 안과 문제가 아닌것 같다며 종합병원 신경외과로 의뢰서를 써주었다. 정밀검사를 했다. 검사결과 뇌의 콩알만 한 뇌하수체에 쌀알 반의 반 만한 크기의 종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청천벽력 같았지만 남편을 생각하면 무너질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그로 인해 온갖 검사를 하던 중 뇌경색을 발견, 다행히 초기라며 주치의는 약으로 다스리자 했다. 뇌하수체 종양 역시 난치성으로 수술보다 지켜보자는 쪽이었다. 벌써 일 년이 지났고 아예 그조차도 신경 안 쓰고 산다. 의사의 말대로 과로와 스트레스를 멀리하려 한다. 매사 단순하게 살고 즐기며 살기로 했다. 그중의 하나는 글 쓰기와 여행이 들어있다. 또 그중에 다섯 살 손자의 재롱은 우리에게 비타민이고 엔도르핀이다.

결론은 무서운 폐암도 우릴 함부로 못 건드린다는 거다.


여하튼, 여행은 잘 다녀오라고 등 떠밀면서 되레 내 건강 걱정을 하고 있는 남편이다.

나는 두고 가는 남편걱정, 남편은 내 체력 걱정 서로 바꿔 꿰찬 걱정 주머니를 달고 있다.


아 참,
나 5일 후면 여행 가잖아!
캐나다 로키로

나의 걱정주머니에는 설렘도 들어있다.

여행은 특히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한다.'

여행 가기 전 설렘을 증폭시킨 예습 참고서가 있다. 실비아님의 브런치북이다. 절대 내돈내산, 누구의 청탁도 아니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다.

가이드도 그렇게 못 하고 그 어떤 여행작가도 그렇게 쓸 수 있을까 싶다.

세 권으로 엮어낸 실비아작가의 록키 브런치북은 혼자 두고 보기에도 아깝다. 직접 가족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다녔던 곳곳마다 스토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https://brunch.co.kr/@canadasylvia/188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사정이 사정인 만큼 티브이로만 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지구마블]을 즐겨보고 [세계테마기행] [톡파원 25시] 프로 등도 즐겨 보지만 글로 보는 여행기는 처음이. 이 타이밍에 실비아작가의 글을 만난 것도 필연 같은 우연한 축복이다.

여행짐 싸는 건 몇 시간이면 족하다.

디데이를 정하고 여행 준비하며 글 쓰는 건 쉽지 않다. 그 와중에 세권의 브런치북을 완독했다.

(나도 브런치 북을 만들어봤지만 완독률은 1도 안되었다.)

댓글까지 다 살폈다. 댓글에도 참 따뜻하고 애정 담긴 답글들이었다.

더워도 너무 더운 한국의 8월과 달리 캐나다의 8월은 선선하고 여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란다.
우연치곤 기가 찬 여행일정이다. 생각이 많아진다.


'같은 장소도 실비아님과 또 다른 시각으로 느껴지겠지?'

'틈나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기록해야지!'

'실비아 님과 공동작품을 만들면 어떨까'

제안도 해 볼 참이다. 하이킹과 투어가 다른 점은 분명 있을 테니까.

(아, 너무 선 넘었나...)


내가 쓴 댓글에 작가님의 답글



나의 여행지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와 꿀팁까지 친절하게 달아 놓았다. 나는 알뜰하게 저장하고 맛있게 따 먹는 중이다.


"어느 지역에 가든 먼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라. 책에 쓰여있지 않은 살아있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져오는 법이다."

중국역사서로 빠질 수 없는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의 아버지가 하신 말씀도 또 새기고 있다

먼저 가 본 실비아 작가님, 더군다나 현지에 살고 있으니 더 귀긋. 미리 보는 생생한 스토리는 보너스 같고 선물 같다.


아직도 여행하고 싶은 곳이 많다.

아직도 완독해야 할 브런치북이 많다.

아직도...



대문사진 출처는 얼마 전 셋째 올케언니가 크루즈 여행을 위해 일본에서 잠시 머물 때 찍어 보내온 거다. 사진 속 인형은 일본의 소프트 아이스크림 회사인 닛세이(日世)의 캐릭터인 '닉쿤(ニックン)'과 '세이짱(セイちゃん)'이란다.

어쩌면 우리 부부는,

대문 사진처럼 입은 웃고 손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데 서로 속마음은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걱정도 아이스크림 같이 녹을 수 있다.

그게 늙은 호박 같은 사랑이라도 좋다.


여행의 기다림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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