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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철여 01화

프롤로그

나철여를 소개하다

by 나철여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은 글을 또 쓰고 있다.
언제나 절대는 절대 지킬 수 없었다.
'절대 안 놀 거야' 했던 소꿉친구와 절친이 되었고, '절대 엄마처럼 안 살 거야' 했는데 엄마처럼 살고 있다.

6ㆍ25를 거쳤던 세대들이 모두 그랬듯 찢어지고 찢긴 상처를 안고 살았다. 누군 전쟁통속에서도 살아 돌아왔고 누군 전쟁터에 뼈를 묻었다.
또 누군가는 고철을 주워 팔다 철강회사 사장이 되었고 또 누군가는 버려진 시래기 주워 시래기 죽을 끓여 자식새끼들 배를 채우고 있었다.

사람 앞일 아무도 모른다.
6ㆍ25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품에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란 그와, 아버지의 몽둥이를 피해 담을 넘던 둘째 오빠는, 대구 계성고등학교 둘도 없는 동기동창이었다. 그가 남편이다.
내가 국민학생일 때 미리 점찍었다는 그는 매일 오빠의 가방 모찌를 자청하며 집에도 자주 놀다가곤 했단다.
여동생을 미끼 삼았던 오빠도 친구가 매제로 될 줄 정말 몰랐단다. 거짓인지 참인지 캐고 싶지도 않다.

오빠 넷에 남동생 하나, 사내들 소굴에서 여자라곤 달랑 하나였다. 치마 두른 사내 같은 울 엄마는 못 배운 게 한이 되어 자식 공부 시키는데 온갖 한을 품고 살았다고 했다.

옷에도 한이 맺혀 있었다. 안 입고 안 먹고 그저 자식새끼들 공부시키고 출세시키는 일념으로 참고 살았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술과 여자로 엄마를 잡았고, 집 나가려는 엄마의 발목은 자식들이 잡고 있었다.

오빠들은 모두 학사모를 썼고, 그 틈에 나와 동생은 겨우 얻어걸린 학사모를 썼다.
일단 엄마의 한恨은 하나 풀었다.

엄마는 돈에도 한이 맺혀 있었다.
버는 재주 없으면 쓰는 재주라도 있어야 한다며 모든 걸 아꼈다. 비누도 물도 아끼고, 옷도 대물림하는 재주가 남달랐다는 걸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재봉틀은 사라졌지만 틀 돌리는 소리는 아직 생생하다.
나는 엄마처럼 안 살고 싶었다. 막 쓰고 막 입고 막 잘살고 싶었는데 흉보며 닮는다더니 나도 아끼고 있었다. 나도 걱정 주머니를 속바지꼬쟁이 속에 달고 살았다. 남들 보기에 아무 걱정 없는 것처럼.

나는 돈 버는 재주가 있다고 했단다.
어릴 적 엄마 손잡고 점쟁이집을 따라갔었나 보다.
사주에 나와 있다는 그 점쟁이 말은 나의 섣부른 자부심이 되었고, 바닥을 길 때도 힘이 되었다.

'난 돈 잘 벌 수 있대.'

'팬티만 입혀 내보내도 비단옷을 걸친대'

'그 점쟁이는 용하대'

진짜 용했다.
'삼십 년 후에 내가 옷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 줄 어떻게 알았지? 하나님이 점쟁이를 통해 예언하게 하고 미리 산전수전 겪게 하셨던 거구나!'


그래도 난 다시하라면 옷장사는 하기 싫은데... 비단옷도, 돈도 다 싫다.

'그냥 내 청춘 다시 돌려놔!'



억지는 억지 일 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다시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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