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약하나
옷장사의 길을 삐삐 시절부터 5g 시대까지 달렸다.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마음의 지평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 까마득히 멀어지는 풍경,
그 쓸쓸한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나는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 하네
- 나희덕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중에서 -
장사라곤 처음이다.
장사를 해본 적도 없지만, 온 집안을 털어도 장사한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다. 장사를 장사치로 여겼던 엄마다. 재래시장에서 가격을 물어보곤 못 사고 돌아서는 뒤통수에 대고 욕지거리하는 그런 안 좋은 선입견이 있어(옛날엔 그랬다), 딸이 옷장사를 한다는 말에 한숨부터 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는 고정관념을 신념인 줄 안다.
오기가 생겼다.
'두고 보라지, 장사꾼이 될 터이다.'
어릴 적 용한 점쟁이 말은 마술사의 비둘기처럼 파닥거리며 나타난다.
"돈 잘 벌 팔자야".
"팬티만 입혀 내 쫒아도 비단옷 입고 들어 올 사주야."
상식과 이해의 작은 차이가 큰 파장을 가져온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체질을 형성하고, 목표를 세워야 한다.
88년도에 남편은 부산 기장에서 일본의 반도체공장으로 수출하는 반도체 협력 공장을 차렸었다.
철저한 준비 속에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기술 없는 투자는 리스까지 끌어당겨도 결국 깡통신세가 되고 알았다. 마치 식당을 차릴 때도 주방장만 모셔오고 사장이 기술 없으면 주방장의 곤조부림을 당해야 하는 그 이치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몰랐다.
삐삐시절 92년 9월, 내 나이 서른일곱에 옷장사를 했다.
17평으로 남성복 중저가 브랜드 매장을 시작했다.
전답까지 다 팔아 부산서 서울로 갔다가, 다시 고향인 대구로 왔던 터라 돈도 없다. 남편이 새 사업을 준비하는 시점이었고, 지인의 권유로 잠시 하기로 한 옷장사였다.
가계수표를 한껏 끊어 썼으니 손 내밀곳이라곤 친정 오빠들 밖에 없었다. 오빠들은 하나같이 말로만 걱정했다. 하나같이 올캐언니들 손바닥에 놓여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만, '모르겠고', 철여는 당장 가게를 계약해야 한다. 계약하지 않으면 가假계약금이 몽땅 날아갈 판이다.
엄마는 항상 돈이 없었어도 돈 걱정은 걱정도 아니다 했다.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게 진짜 걱정이라 했다.
하지만, 그게 당장 돈 걱정을 하는 사람에게 위로랍시고 할 말이냐고?
돈 꾸어주기 싫으면 싫다 말할 것이지.
하긴, 돈 빌려달란 말을 얼마나 힘들게 꺼냈을지 알 리 없다.
큰오빠는 방직공장 기술자, 둘째 오빠는 행정 공무원, 셋째는 대학교수, 넷째는 대기업 간부,
모두 남편이 매달 안정적으로 벌어다 주는 생활을 한 올캐언니들인데 옷장사하겠다는 시누이의 사정도 어떻게 알겠냐고.
그래도 그렇지...
섭섭 마귀가 떼로 몰려왔다. 엄마도 섭섭고 형제들도 섭섭다.
교회로 달려갔다.
아이고 하나님 우짜까예 돈 좀 내려 주이소... 아멘!
급하면 사투리가 툭 튀어나온다. 화살기도다.
엄마의 새벽기도를 흉보다가 닮아버린, 새벽기도였다.
간절한 기도를 길게 하면 하나님도 오래 고민할 거 같아서 요점만 짧게 했다
다른 것도 아닌 돈 달라는 기도를 하다니, 여태 없이 살아도 돈 기도는 안 했다. 그때,
철여의 머리를 휙 스치고 지나가는 음성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길은 온통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셋째 오빠가 먼저 전화 왔다.
은행에서 신용으로 대출이 가능하다 하니 형들이랑 넷째한테 도장만 들고 은행으로 집합하라 했다고 한다.
올캐언니들도 엄마도 모른다 했다.
새벽기도 응답인가?
다 해결했다. 이제 남은 건 장사해서 차근차근 갚아 나가면 된다.
직원을 세팅하는 게 급선무다.
벼룩시장의 구인란에는 구직자도 많았다.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듯, 사람은 많은 데 인재가 없다. 경력자 우대라는 문구는 기본이다. 여러 명 면접을 보고 느낀 건 경력보다 인상이었다. 철여는 타고난 재능보다 성실을 강조하지만, 살면서 성품도 인상을 만든다는 소신을 오래 담고 있다.
어느 날 늦은 저녁, 황금동 KFC에서 주문을 하려던 중이었다. 바로 뒤에 서있는 아가씨가 한눈에 반할 정도로 인상이 참 좋았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먼저 말을 걸었다. 삐삐번호를 건네며 일할 마음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다.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예쁘고 맑았다. 낯선 사람에게 명함을 건네는 것도 처음이다. 열흘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기다림에 익숙한 철여였지만 먼저 연락을 했다.
판매 쪽 일은 처음이라 현주도 망설이던 중이었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예측은 적중했다. 판매경험은 없었다. 현주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일찍 세상에 나왔다.
낮엔 심부름센터에서 잔 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노래방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가 거둬 키웠다. 일찍 모든 걸 배운 것 중에는 담배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고운 얼굴 답지 않다. 손님이 끊어지면 화장실로 가서 줄 담배를 피워댔다. 나올 땐 향수를 뿌리고 감쪽같이 밝은 얼굴로 판매를 한다.
일찍 사회생활에 굴러 본 현주는 판매도 곧잘 하고 단골도 늘어갔다. 불우한 환경이 반드시 어둡고 불우한 사람을 만드는 건 아니라는 걸 현주를 보며 알게 되었다. 노래실력은 가수보다 더 잘 부르고 모르는 노래가 없었다. 현주가 한번 잠수 타면 일주일은 각오해야 했지만 현주에게 기대는 매출 때문에 다른 직원을 채용할 수도 없었다. 기다리면 왔다. 그런 현주가 답이 없다. 답답한 놈 우물 판다고 철여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무조건 출근만 하라고 삐삐를 보냈다.
다음 날도 현주는 출근하지 않았다.
가게문은 항상 불쑥 열린다.
노크대신 "구경 좀 할게요~" 하며 들어온다.
"잘 봤어요, 다음에 올게요!" 하고 나간다.
철여가 기다리는 사람은 현주다. 오후가 되었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현주는 오늘도 잠수, 삐삐를 쳐도 답이 없다. 장사경험이 없으니 손님이 들어와도 겁부터 났다. 경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었다.
직원에게 당연한 것도 당연하게 시키지 못했다.
손님이 오면 "어서 오세요" 속으론 '어서 가세요' 했다.
흉내만 내다 말았다.
기다리는 현주는 오지 않았다.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던 철여도 용기를 냈다. 조금씩 인사도 달라졌다.
"어서 오세요, 편하게 구경하시다가 찾으시는 것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철여가 생각해도 어색한데, 그 남자 손님은 얼마나 이상했을까.
"주인이세요? 직원은 없어요?"
질문으로 봐선 처음 온 고객은 아니다.
"아 네, 아니요, 잠깐 수선실 갔어요."
일단, 모면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그 남자도 다음에 오겠다며 나가 버렸다.
옆 가게 금방 사장의 측은지심이 발동해, 참한 직원하나 소개 해 주겠다고 한다.
참한 직원, 덜 참한 직원,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새 직원이 왔다. 현주도 돌아왔다. 직원 한 명으로 충분한데 의도치 않게 두 명이 되었다.
참한 직원은 이름도 반짝거리는 샛별이다. 현주랑 나이는 같은 스물 넷인데 첫딸을 낳고 3개월 된 아기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소개받은 곳이 철여의 옷가게였다. 애가 애를 낳은 새댁이었다. 깡마르고 작은 체격처럼 신상을 묻는 말에 군더더기가 없다.
"그냥 돈 벌고 싶어요!"
그냥 그냥 그냥...
다행히 둘도 거부감 없어 보였다.
'다행'은 얼마 못 가 둘은 피 터지게 싸우고, 현주는 나갔고 샛별이는 떠나버렸다.
문이 열려 있으니 고객이 들어오고, 철여는 그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문은 더 이상 철여에게 닫힌 문이 아니다. 소질을 발휘할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순적하게 시작했던 직원 세팅은 허사가 되고, 나의 예감도 추측도 다 틀어져 버렸다.
죽을 결심을 안 하면 은행대출도 오빠들의 사랑도 모두 물거품이 될 지경이다.
법대를 나온 남편은 법도 모르고 사업을 하다 망했고, 여전히 법 없이 살면 밥이 나오는 줄 아는 철부지였다. 다시 죽을 각오를 하고 손발 걷어붙여야 한다. 오빠들 사이에서 자란 억새풀 기질을 발동하기로 마음먹으니 죽었던 용기가 되살아났다.
신사복 매장에 신사는 없었다. 고객만 있다.
한번 다녀 간 고객은 이름까지 외웠고, 직원들 없이도 1인 5역을 했다.
판매도 하고 청소도 하고 창고정리도 했다. 집에 가면 다음날 아들 딸 학교 가서 야간자습 때까지 먹을 도시락 네 개를 준비해야 했고, 시어머니 식사까지 챙기는 며느리 노릇도 했다.
판매일지를 들춰보지 않고도 지난번 구매했던 고객의 제품을 기억했다. 모든 인간의 본능은 자기를 기억해 주면 바로 반응한다. 감동은 스스로 지갑을 열게 했다.
옷과의 대화가 통하니 코디능력은 절로 생기고 매출은 절로 따라왔다.
판매가 몸에 익으면서 대박이 났다. 3개월 만에 억 소리 나는 돈을 다 갚았다.
매일 돈 세는 재미로 피곤도 모르고 안 먹어도 배불렀다. 본사도 놀라고 오빠들도 놀랐다.
오빠들에게 사랑의 빚은 남아있다. 엄마도 철여를 대하는 얼굴빛이 달라졌다.
(continue.)
'돈이 있어야 얼굴빛이 달라지는 건가, 얼굴빛이 좋아야 돈이 붙는가?...'
직원도 갑이었다.
나를 철(힘)들게 한 여러분 속에 남편이 있고, 직원들이 있었다.
옷쟁이 옷을 벗은 지 7년 만에 다시 거울 앞에 섰다.
오늘의 옷차림은 흰 남방에 찢어진 청바지,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고 있다.
언제라도 부르면 뛰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