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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5

나의 시

by 이효범

나의 시



구녕 이효범


불려지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듯이

읽혀지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

나의 시는 읽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시는 시가 아니다.

나의 머리를 겨누는 총이다.

억울해서 세상으로 부리를 돌리는 총이다.




후기:

시가 무엇입니까?

“나는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데 왜 시를 씁니까?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 속에서 나는 전율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나는 먼지보다도 더 미미한 존재입니다. 내가 힘들게 살았던 이 찰나와 소중하게 만들었던 이 관계는 너무나 미미해서 곧 잊혀지고 말겠지요. 그런 삶에 개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나의 삶이 진정으로 허무했다면 나는 왜 살았을까요?


봄날 꾀꼬리도 수양버들 위에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나도 그 어려운 인간으로 태어나서 기적처럼 살았음을 알리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곧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나는 모래 위에 내 이름을 쓰고 싶습니다. 유치하고 창피하지만 그 누구를 사랑했다고도 쓰고 싶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시를 쓰나요?


“아기가 울듯이 씁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쓰고, 아프면 아프다고 씁니다. 또 소녀가 옷 입듯이 씁니다. 소년한테 잘 보이려고 매일 매일 몇 시간씩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색다르게 꾸며봅니다.”

그래도 시가 안 써지면 어떻게 하나요?

“침묵하든가, 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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