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을 달리는 버스
차고지에 도착한 성훈은 헐레벌떡 기사 휴게실로 달려갔다. 그에게 주어진 점심시간은 단 8분. 도시락을 5분 안에 먹는다면 화장실에 들를 여유가 간신히 있을 듯했다.
[재정난에 점점 사라지는 시민의 발
서울시는 마을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하라!]
도대체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다급한 식사 후에 화장실까지 무사히 다녀온 성훈은 버스 앞에 걸어둔 현수막을 읽었다. 이 현수막을 달고 다닌 게 몇 달 째인데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한숨만 나왔다. 한 시간 동안 동네를 부지런히 달렸던 초록색 카운티는 8분의 짧은 휴식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차고지를 빠져나갔다.
동산07. 성훈이 1년 반째 운행하고 있는 이 마을버스는 칠복동 주민들에게 없어선 안될 소중한 교통수단이었다. 언덕이 많고 도심에 비해 다소 낙후한 이 동네엔 몇십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터줏대감들이 많이 살았다. 그래서 동산07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은 대다수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었다. 때문에 성훈은 버스를 운전할 때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였다.
"할머니, 자리에 앉으세요."
"아유, 나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거야."
"그래도 앉으세요. 서계시다가 넘어지면 큰일 나요!"
승객들에게 민원이 들어오지 않도록 친절한 버스기사가 되어야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운행 중에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앞으로 몇 개월만 경력을 더 채우면 시내버스 운전기사에 지원할 수 있는데 찰나에 일어나는 사고 때문에 그 기회가 통째로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 버스 운전 경력 2년, 무사고 무민원.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되려면 갖춰야 하는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성훈은 오늘도 막중한 부담감을 등에 업은 채 언덕진 동네를 달렸다.
하루에도 열몇 번씩, 시내버스가 들어설 수 없는 좁은 도로를 달리다 보면 선글라스 너머로 동네 풍경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폐업한 가게와 새로 오픈한 가게의 모습. 학생들의 등하굣길. 직장인들의 출퇴근길과 같은 것들. 하루에도 몇 번씩 매일매일 같은 길을 운전하다 보니 성훈은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승객들의 얼굴과 그들이 버스를 주로 타는 시간대, 타고 내리는 정류장까지 외웠다. 앞유리창으로는 동네 풍경을, 백미러로는 승객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성훈이 운행 중에 몰려오는 지루함을 쫓는 방법이었다.
근무시간 중 성훈은 초등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을 가장 기다렸다. 타이밍만 잘 맞으면 아들 민준이 집에 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난으로 회사에 한바탕 인원 감축이 이루어지면서 잘리지 않고 살아남은 기사들은 하루에 3시간씩 추가 근무를 해야 했다. 월급 삭감 대신 추가 근무를 택한 성훈은 누적된 피로를 잠깐이나마 만나는 민준의 모습으로 해소했다. 버스가 명화초등학교를 지나갈 무렵, 성훈은 마스크를 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민준을 찾기 위해 눈동자를 힐끔힐끔 굴렸다.
그러나 버스가 명화초등학교를 벗어날 때까지 민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타이밍이 엇갈린 모양이다. 아쉬워도 별 수 없었다. 이번 정류장은 평안 사거리입니다. 안내 음성이 나오자 뒤에 앉은 승객 중 누군가 벨을 눌렀다. 성훈은 후발 버스와의 배차간격을 확인하며 사거리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머지않아 평안 사거리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을 때였다. 승객을 내려주고 출발하려던 성훈은 우연찮게 민준을 발견했다. 민준은 친구들과 사거리 신호등 앞에 서있었다. 반가움에 성훈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마음 같아선 문을 열고 민준을 부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이밍 좋게 신호에 걸리면서 아들의 모습을 조금 더 오래 보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잠시 후 민준이 서있던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성훈은 민준이 길 건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15, 14, 13... 초록불이 깜빡깜빡거리며 아이들의 걸음을 재촉했다.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아이들이 무사히 길을 건넌 것을 확인하고 마음이 놓이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건넜던 길을 되돌아오는 민준과 아이들을 보고 성훈은 의아했다. 그러다 곧 그 이유를 알게 되면서 픽 웃어버렸다.
민준과 아이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흰색 모자를 쓴 노인은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는 성훈이 버스를 운행할 때 종종 보는 할아버지였다. 버스를 출발시켜야 할 때 미처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못한 노인을 기다리다가 애가 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아이들이 지금 그 노인의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도움으로 노인은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신기하게도, 노인이 혼자 길을 건널 땐 매번 자동차들이 클락션을 울려댔는데 방금은 누구도 노인과 아이들을 재촉하지 않았다. 노인과 무어라 말을 나누는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 씩씩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성훈은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며 생각했다. 오늘 퇴근하는 길에 치킨 한 마리를 사들고 집에 가야겠다고.
성훈이 버스를 운행할 때 스트레스받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단연 손에 꼽는 것은 승객들과의 실랑이였다. 카페 일회용 컵은 반입 금지라고 스티커까지 붙여놨는데 금방 산 거라며 들고 타려는 승객, 현금이 부족하다며 백 원 이백 원만 버스 요금을 깎아달라는 승객, 밤 중에 술에 취해 시비를 거는 승객. 실랑이가 벌어지는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다. 하지만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것은 마스크 미착용 승객으로 인한 실랑이였다.
"할아버지! 마스크 안 쓰시면 버스 못 타요!"
"나 여기 밑에 약국 가려고 그래! 금방 내리니까 괜찮아."
"그래도 안돼요. 타지 마세요."
"이 땡볕에 걸어가 그럼? 내가 버스만 20분을 기다렸는데!"
마스크를 깜빡하고 그냥 나왔다는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성훈은 그를 태울 수 없었다. 집에 가서 마스크를 쓰고 나오라고 단호하게 말한 뒤 버스 문을 닫고 출발해버렸다. 사이드미러로 자신을 원망하는 노인의 얼굴이 보였지만 애써 모른척했다. 노인들의 사정을 봐줄 수 없을 때 느끼는 불편함은 언제 느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금방 사라질 줄 알았던 코로나 바이러스는 3년째 전 세계인들을 괴롭히는 중이었다. 성훈 역시 코로나의 큰 피해자였다. 세 식구가 먹고 살 정도로만 근근이 운영되던 식당은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끊기면서 끝내 문을 닫았다. 장사를 접었더니 당장 할 줄 아는 게 운전밖에 없었던 성훈은 새 일자리를 찾던 중에 근무환경과 보수가 안정적인 시내버스기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어느 회사든 시내버스 기사에 지원하려면 최소 2년 이상의 마을버스 운전 경력을 요구했다. 성훈은 이 경력을 채우기 위해서 지금 회사에 취업한 것이다.
2년만 버텨보자며 패기 있게 취업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마을버스 기사의 근무환경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일하는 시간에 비해 보수는 턱없이 적었고, 마음 편히 화장실에 들를 휴게시간도 보장되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버스 이용객이 줄어들면서 마을버스 회사마다 재정난에 시달렸다. 그 타격은 고스란히 버스 기사들에게 날아왔다. 기사들은 월급이 줄어들거나 월급을 제때 받지 못했고, 몇몇 노선이 폐지되면서 강제로 퇴직당하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기사 인원을 줄이고, 그로 인해 남은 기사들이 일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그렇게 운영하는 것도 어려워 결국 버스 배차간격을 늘려버리니 기사들은 물론이고 승객들의 불만까지 나날이 쌓이는 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사가 코로나에 걸리면 그에 따르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우선 코로나에 걸려 자가격리에 들어가면 그 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한 만큼 월급이 줄어든다. 그리고 자가 격리하는 기사의 몫을 다른 기사가 감당해야 한다. 하루에 12시간을 운전하는 것도 고된데 동료 중 누군가 코로나에 걸리면 다른 기사들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풀타임 근무를 해야 했다. 성훈은 승객한테 코로나를 옮아 일을 쉬었을 때만 생각하면 여전히 끔찍하다. 정말이지 그 일주일 동안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다. 동료들이 코로나에 걸려 풀타임 근무를 했던 날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젠 코로나에 걸릴 사람들은 한 번씩 다 걸렸다지만 요즘 코로나 재감염 사례도 늘어나고 있으니 승객들한테 싫은 소리를 해서라도 코로나에 재감염되는 일만큼은 방지해야 하는 게 버스기사들의 의무였다.
주말에는 직장인들이 일을 쉬는 게 보편적이지만 마을버스 기사에겐 평일과 주말의 구분도 없었다. 주 6일 근무가 기본인 탓에 성훈은 토요일인 오늘도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승객들이 넘어질까 봐 조심, 골목길에서 오토바이나 전동 킥보드가 튀어나올까 봐 조심, 우회전하기 전에 잠시 정차해야 하는 것을 잊을까 봐 조심.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조심하며 버스를 운행했다. 그러던 중에 만난 익숙한 얼굴은 장시간 운행에 지친 성훈에게 달콤한 선물 같았다.
"아빠!"
명화초등학교 정류장이었다. 남아있던 승객 한 명이 내리고, 뒤이어 민준이 버스에 폴짝 올라탔다. 민준은 버스카드를 찍고 성훈의 바로 뒷좌석에 앉았다. 아이의 손엔 파란색 껍질의 빵 한 개가 들려있었다.
"오늘은 얼마나 기다렸어?"
"음... 앞에 두대 지나갔어."
"오래 기다렸겠네. 근데 왜 거기서 탔어? 집 앞에서 안 타고."
"이거 빵 사려고. 집 앞에 갔는데 안 팔아서 학교까지 와서 샀지."
민준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나 저녁시간에 성훈이 운행하는 버스를 종종 타곤 했다. 성훈이 버스 운행 중에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으니 정류장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아빠의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는 것이었다. 오늘은 기다리는 동안 버스 두대가 지나갔다고 하니 아마 한 시간 가까이를 뜨거운 햇빛 아래에 서 있었을 터였다.
민준이 버스에서 하는 일은 운전하는 아빠와 동네 풍경 구경하기였다. 이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버스 탈 땐 버스카드 꼭 찍기, 승객이 타고 있을 땐 아빠한테 말 걸기 금지. 기사가 버스에 아들을 태우고 다니는 게 불편하다는 민원이 들어올까 봐 성훈이 정해놓은 규칙이었다. 민준은 이 규칙을 착실하게 지켰다. 승객들과 함께 있을 땐 조용히 있다가 그들이 모두 내리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성훈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점심은 먹었어?"
"먹었지. 엄마가 싸준 도시락."
"그럼 저 빵은 이따 배고플 때 먹으면 되겠다."
"아빠 것만 산거야?"
"응."
성훈은 민준이 조수석에 올려놓은 빵을 힐끔 보고 피식 웃었다. 편의점에 파는 생크림 단팥빵은 성훈이 좋아하는 빵이었다. 편의점에 가면 먹고 싶은 게 천지일 텐데 자기 것은 안 사고 아빠 것만 사온 아들이 기특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말임에도 함께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라서 많이 미안했다. 이젠 사회적 거리두기도 완화되고 남들은 해외여행까지 가는 추세인데 국내 여행은커녕 가까운 곳에 나들이 한번 가기도 힘든 상황이 서럽기만 했다. 엄마 아빠 고생하는 걸 알아서 투정 한번 부리지 않는 어린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맙다는 말 뿐이었다.
"통통 치킨이다!"
상가가 늘어선 도로를 지나가던 중이었다. 민준이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며칠 전에도 먹은 통통 치킨은 성훈네 가족의 오랜 단골 가게였다. 코로나의 여파로 동네 가게들이 줄줄이 폐업할 당시에도 단골손님들 덕에 살아남은 곳이지만, 바로 맞은편에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생긴 이후로 통통 치킨의 매출은 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했다. 통통 치킨 사장님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수수료가 비싼 배달어플에도 입점했으나 어플 수수료며 배달비며 리뷰 이벤트로 제공하는 음료값까지 제외하면 남는 게 거의 없다며 한탄했었다. 전직 자영업자로서 사장님의 어려움을 이해하기에 성훈은 치킨을 먹는 날이면 어려운 사람끼리 돕자는 마음으로 꼭 통통 치킨에 가서 포장해왔다.
아빠를 위해 빵을 사다 준 아들을 생각하면 오늘 저녁으로 치킨을 먹고 싶지만, 이번 달에 남은 생활비를 생각하면 선뜻 그러지 못했다. 성훈은 하루빨리 경력을 채워서 수입이 보장되는 시내버스 기사로 이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월급이 적어도 이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면 버틸 수 있었다. 꼭 이직에 성공해서 아들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승객 여럿을 태운 버스는 뙤약볕 아래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랐다. 그늘 하나 없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 승객들은 버스에 올라타면 전부 다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성훈의 눈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 보였다. 기름값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지만, 에어컨 바람 하나에 행복해하는 승객들의 표정을 볼 때면 바람의 강도를 도저히 낮출 수 없었다.
이번 정류장은 월색 공원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우성 슈퍼입니다.
언덕 정상까지 올랐던 버스가 이제 막 비탈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길은 민준이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었다. 버스가 언덕을 내려갈 때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라 재미있다는 민준은 이 비탈길을 내려갈 때마다 싱글벙글 웃었다. 성훈은 백미러를 슬쩍 봤다. 역시나 마스크 위로 보이는 민준의 눈은 누가 봐도 신이 난 표정이었다. 아들 한 명 탔다고 근무시간이 이렇게 즐거워지다니. 회사에서 알게 되면 크게 잔소리 들을 일인걸 알면서도 성훈이 민준을 버스에 태우는 이유였다.
이번 정류장은 우성 슈퍼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구립 사랑어린이집입니다.
구석구석 빨간 벽돌집이 즐비한 동네는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한산했다. 날이 더운 만큼 평일이나 주말이나 이 시간대엔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기가 드물었다. 이번 정류장에서는 아무도 내리지 않으려는지 버스 안도 조용했다.
"어?"
그런데 그때였다. 민준의 목소리가 버스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아빠 저기!"
버스 안에 승객이 있을 땐 아빠한테 말 걸지 않기. 그 규칙을 어긴 민준의 외침과 동시에 사랑 어린이집 정류장에 쓰러져있는 한 노인이 성훈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