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을 이루는 풀꽃 4

참전 명예 수당 35만 원

by 김유수

220615 국가보훈처 ₩350,000



영수는 ATM 앞에서 통장에 찍힌 입금 내역을 확인했다. 참전 수당 밑으로는 한 줄의 입금 내역이 더 찍혀 있었다. 생계수당으로 들어오는 10만 원까지 합하면 총 45만 원. 이는 6·25 전쟁 때 총을 들고 싸운 영수에게 나라가 지급하는 보상금이었다.



"여기로 25만 원 입금해주소."



은행 창구에 방문한 영수는 계좌번호와 이름이 쓰인 메모지와 통장을 은행원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영수의 요구가 익숙한 듯 별 다른 질문 없이 업무를 처리했다. 20만 원은 인출해드릴까요? 이체를 마친 그녀가 상냥히 웃으며 물었다. 의자에 앉아있던 영수는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은행원이 인출해준 20만 원을 세서 봉투에 담고, 그것을 조끼 주머니에 소중히 넣은 영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출구로 향하는데 근처에 서있던 남자 직원이 얼른 달려와 문을 열어줬다. 고마우이. 영수가 말하자 직원은 안녕히 가시라고 친절하게 인사했다. 마스크 위로 웃고 있는 눈이 영수의 흰색 모자와 조끼를 순식간에 훑어내려갔다.



영수는 부지런히 걸어 집으로 향했다. 아무리 빨리 가려고 해도 동네 아래쪽에 위치한 은행부터 언덕 중턱에 있는 집까지 걸어가는 데는 30분이 족히 걸렸다. 마을버스를 타면 10분도 걸리지 않겠지만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과 폐지를 팔아서 번 돈으로 생활하는 영수에겐 버스비에 천 원을 쓰는 것도 큰 사치였다. 6·25 참전 국가유공자이지만 전쟁으로 인해 얻은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영수는 대중교통 지원 대상에서 제외였다. 때문에 폭우가 쏟아져서 도저히 걸을 수 없거나 최소 한 시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거리가 아니고서는 항상 걸어 다니는 쪽을 택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던 영수는 문득 뒤돌아 상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피부가 검고 쭈글쭈글한 노인의 모습은 쇠약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노란 문양이 새겨진 흰 모자가 검게 그을린 피부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영수의 시선이 입고 있는 조끼로 내려갔다. 오른쪽 주머니 위엔 태극기가, 왼쪽 주머니 위엔 노란 오각형과 그 안에 흰색 별이 새겨져 있었다. 6·25 참전유공자회. 오각형 밑에 새겨진 이 글자만이 아직도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자신을 유의미한 존재로 인정해주는 것 같아 영수는 사계절 내내 이 조끼를 입고 다녔다.



"거 뭣하는데 꾸물거리는감? 병원 늦겄구먼!"



30분을 꼬박 걸어 집에 도착한 영수는 숨 돌릴 새 없이 나갈 채비를 했다. 분명 은행에 다녀 올 동안 병원 갈 준비를 해놓으라고 했는데 옥자가 옷도 제대로 입고 있지 않아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버럭 잔소리를 하며 아내를 닦달한 영수는 그녀가 나올 때까지 모아둔 것들을 확인하러 밖에 나갔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허름한 주택 대문 옆엔 영수의 리어카와 그가 며칠간 모은 폐지, 재활용품이 파란 천막에 덮인 채로 쌓여있었다. 다행히 어제까지 모은 폐지가 그대로 있었다. 밤 사이에 누군가 폐지를 훔쳐가진 않은 듯했다. 병원에 다녀오면 곧장 폐지를 팔러 가야 하기에 영수는 리어카에 폐지를 옮겨 담았다.



"고만하고 인제 가소! 늦겄다며!"

"마스크는 어쨌우? 고거 안 하면 요새 슈퍼도 못 들어간다고 맻번을 말혀!"

"거참 여 있응께 걱정 마소."



옥자는 손에 쥔 마스크를 위로 들며 영수에게 보여줬다. 고개를 끄덕인 영수는 정리한 것들 위에 비닐을 다시 덮고 단단히 묶었다. 행여나 집을 비운 사이에 모아 둔 것들을 도둑맞을까 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혼자 힘겹게 올라왔던 길을 이번엔 옥자와 함께 내려갔다. 옥자보다 네 다섯 걸음 앞서 걷는 영수는 간간히 뒤돌며 그녀가 잘 오는지 확인했다. 그러면 그녀는 손등을 휘휘 저으며 얼른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일정 거리를 떨어져 걷는 노부부 옆으로 배달 오토바이도 휙 지나가고, 동산07 버스도 스르륵 지나가고, 강아지 산책을 나온 아줌마도 힘찬 걸음으로 지나갔다.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이지만 영수와 옥자 부부의 세상만은 여전히 느리게 흘러갔다.



먼 길을 걸어 병원에 도착한 노부부는 로비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에 강한 에어컨 바람이 닿으면서 시원함이 추움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영수는 더운 날씨에 느끼는 이 인위적인 추위를 실컷 누렸다. 특히나 옥자는 집에 에어컨이 없는 탓에 에어컨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영수는 외출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옥자가 병원에 올 때만이라도 잠시나마 더위를 잊길 바랐다.



앞사람들이 빠지고 노부부의 진료 차례가 돌아왔다. 이름이 불렸을 때 영수는 옥자를 데리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는 옥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보고 몇 가지 늘 하던 질문들을 몇 개 하더니 약을 처방해줬다. 천식을 앓고 있는 옥자는 평소에 기침이 심해 하루에 세 번 꼬박꼬박 약을 복용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언제부턴가 약을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가 되어버렸는데 하필이면 호흡기에 치명적인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건강 관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심하진 않지만 영수도 고혈압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보훈 수당이 들어오는 매월 15일에 옥자를 데리고 병원에 방문하고 한 달 치 약을 처방받았다. 오늘 들어온 45만 원 중 25만 원은 쪽방 월세로, 남은 20만 원은 진료비와 약값으로 남김없이 빠져나갔다.



약국에서 나온 노부부는 별다른 말없이 집에 가는 길로 향했다. 두툼한 약봉지를 손에 쥔 영수는 언제나 그랬듯 앞장서서 걸었다. 한발 한발 내딛다가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그랬듯 옥자가 주름진 손등을 휘휘 저었다. 언제 저렇게 늙었누. 등이 굽고 머리가 새하얀 아내를 보고 영수는 씁쓸함을 느꼈다.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새벽, 영수는 빈 리어카를 끌고 칠복동 일대를 부지런히 돌았다. 아직 재활용품 수거 차량이 동네에 오지 않은 건지 집집마다 큰 봉투에 담긴 재활용품들이 밖에 나와 있었다. 영수는 깨끗한 캔이나 플라스틱, 술병 따위를 한 개라도 더 찾기 위해 비닐봉지를 뒤졌다. 쓰레기를 뒤지다가 목장갑에 더러운 것이 묻으면 리어카 손잡이에 매달아 놓은 걸레로 대충 닦았다. 언제 재활용품 수거 차량이 올지 모르는데 장갑을 바꿔서 낄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새벽부터 점심때까지 동네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폐지와 재활용품을 수집한 영수는 집에 들렀다. 리어카에 담아온 것들을 대문 옆에 쏟아놨는데 얼마 전 그간 모은 것들을 팔아버린 덕에 공간이 남았다. 그러나 며칠 지나면 폐지와 각종 재활용품들이 금세 산을 이룰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누군가에겐 집 앞에 내다 버린 쓰레기에 불과하겠지만, 구순을 넘긴 가장에겐 쓰레기가 아니라 생계를 이어가게 해주는 소중한 재산이었다. 도둑맞지 않기 위해 천막으로 재산을 꼭꼭 덮어놓은 영수는 대문을 밀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부채질을 하며 TV를 보던 옥자가 집에 들어온 영수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들고 있던 부채를 내밀었다. 더위 때문에 온몸이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워진 영수는 구멍 뚫린 부채와 찬 물로 더위를 식혔다. 한 대 있는 낡은 선풍기는 전기 요금 걱정에 마음껏 틀지도 못했다.



"나 시장 댕겨올테니께 꼼짝 말구 집에 있어. 좀 이따 경숙이 올 거여."



물에 만 밥으로 허기를 달랜 영수는 옥자에게 신신당부한 뒤 집을 나섰다. 작년 즘부터 옥자에게 치매 증상이 시작된 이후로 집을 비우는 게 불안한 영수였다. 오후에 재가방문 요양보호사 경숙이 와서 3시간 동안 옥자와 함께 있어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가끔 자신의 이름과 사는 곳도 잊고 심지어 남편을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는 옥자 때문에 영수는 걱정이 나날이 늘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 종일 집에 들어앉아 옥자를 돌볼 순 없는 노릇이었다. 폐지와 재활용품을 주워서 팔아야 두 사람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수는 삐걱대는 리어카를 끌고 평안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엔 가구점, 생활용품점, 음식점과 같이 온갖 가게들이 모여있기에 두꺼운 박스를 많이 주울 수 있었다. 2-3년 전만 해도 폐지를 팔면 100kg당 육천 원 정도밖에 받지 못했는데 요새는 값이 많이 올라서 최대 만 이천 원까지도 받을 수 있다. 하루에 만 원씩만 벌어도 큰 소득이기에 영수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평균 열 시간이 넘도록 매일같이 폐지를 주우러 다녔다.



그런 영수에게 여름은 겨울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계절이었다. 빈 리어카도 무게가 상당한데 거기에 각종 폐지와 재활용품을 싣고 걷다 보면 온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거기에 높은 온도와 습도 때문에 숨까지 턱턱 막히곤 했다. 실외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던 작년 여름엔 마스크를 쓴 상태로 폐지를 줍느라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이제는 바깥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게 된 것에 감사하면서도 해를 넘어갈수록 점점 더워지는 날씨는 길바닥 위의 영수를 불구덩이 안에 가둬놓는 것만 같았다.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을 때 잠시 그늘 밑에서 숨을 고르기도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쉬는 사이에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다른 경쟁자가 박스를 하나라도 더 주워갈까 봐 마음이 급해지면서 영수는 다시 땡볕 아래로 나가게 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음이 든 음료컵을 손에 들고 마실 때 영수는 집에서 가져온 스타벅스 보온병을 들고 물을 마셨다. 망가진 곳이 없는 이 보온병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가 운 좋게 찾은 것이었다.



"할아버지! 여기에 리어카 세워 놓으시면 어떡해요!"



영수가 가구점 거리에서 버려진 박스를 줍고 있을 때였다. 가구 배달을 온 트럭기사가 창문을 열고 성화를 냈다. 가게 앞에 트럭을 대야 하는데 리어카가 길을 막고 있어서 그러는 모양이었다. 영수는 리어카를 금방 치우겠다 말하고 분주히 박스를 주워 날랐다. 얼굴에 짜증을 한가득 그려놓고 있는 트럭기사의 눈치가 보여서 결국 버려진 박스를 미처 다 줍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나야 했다.



영수를 잘 아는 몇몇 가게 주인들은 영수를 위해 일부러 박스를 빼놓기도 하지만,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이 한둘이 아니기에 운이 없으면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도 영수의 리어카는 가득 차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나마 오늘은 수확이 있는 편이어서 영수는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주운 것이 많을수록 리어카의 무게도 그만큼 무거워졌기에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나올 때보다 배로 걸렸다.



빵빵-!



무게가 상당한 리어카를 끌고 다니다 보면 횡단보도를 제시간에 건너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다. 깜빡이던 초록불이 꺼지고 빨간불이 켜졌음에도 횡단보도 한가운데를 지나는 일이 영수에겐 부지기수였다. 그러면 출발하지 못하는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며 영수를 재촉했다. 일부러 늑장을 부리는 게 아님에도 자동차를 탄 사람들은 걸음이 굼뜬 노인을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차 안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영수는 온몸에 가시가 박히는 기분이었다.



보이지 않는 눈초리를 견디며 여러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온 영수는 마지막 횡단보도 앞에 섰다. 이 횡단보도만 건너면 골목길로 들어설 수 있다. 매일 왔다 갔다 하는 길이지만 오늘따라 남은 길이 천리만큼 멀게 느껴졌다. 지칠 대로 지친 영수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이 간절하게 생각났다. 스타벅스 보온병 안에 담아온 물은 동이 나버린 지 오래였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영수의 옆에 서있던 초등학생 남자아이 여럿이 왁자지껄 떠들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영수도 리어카를 끌고 힘껏 앞으로 나아갔다. 마음만큼은 총을 들고 전장을 뛰어다니던 젊은 날의 굳셈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했다. 이미 초록불은 깜빡이기 시작했는데 리어카는 아직도 횡단보도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었다.



영수가 조금이라도 빨리 건너고픈 마음에 안간힘을 써도 속도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절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면 차들은 기다렸다는 듯 무섭게 경적을 울려댈 것이다. 사회에 폐 끼치는 존재를 벼랑 끝으로 몰아내듯, 맹렬히 울려댈 그 소리가 두려워 영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야! 밀어!"

"하나 둘 셋!"



갑자기 리어카에 속도가 붙었다. 두 발에 쇳덩이를 얹어놓은 것 같았던 발걸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마치 누군가 마법을 부린 것 같았다. 놀라고 얼떨떨한 영수는 앞으로 나아가며 고개를 힐끔 돌려봤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먼저 길을 건넜던 남자아이들이 되돌아와 리어카를 밀어주고 있다는 것을.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고 나서야 리어카가 인도에 올라왔지만 그때까지 경적을 울리는 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혼자서는 절대 내지 못하는 속도로 길을 건너온 영수는 힘들다며 헥헥대는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씩씩하게 웃었다.



"할아버지! 모자랑 조끼에 있는 그림 뭐예요?"

"6·25 참전유공자회? 이게 무슨 말이지?"

"그거 아니야? 6·25 전쟁?"



숨을 고르던 아이들은 영수의 모자와 조끼에 관심을 보이더니 너도나도 물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주춤했던 영수는 이내 눈가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거 전쟁 나갔던 군인한테만 주는 옷이여."

"진짜요?"

"아 참말이지! 내가 군에 있을 때 이만한 총을 들고 쏘다녔어."



영수가 두 팔을 벌리며 총의 길이를 보여주자 아이들이 감탄을 연발했다. 영수를 바라보는 여섯개의 눈동자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충성!"



아이들 중 한 명이 경례 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친구를 따라 경례하며 충성을 외쳤다. 영수도 리어카 손잡이를 놓고 아이들에게 경례했다. 70년이 지났어도 몸은 그때 그 시절에 배운 자세를 정확히 기억했다.



아이들과 마주 보고 경례하는 이 순간, 영수는 젊은이들의 눈치를 보던 쇠약한 노인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 몸 바쳐 싸운 위대한 영웅이었다. 6·25 참전 용사라는 과거의 이력은 사회에 더 이상 설 곳이 없는 영수를 떳떳하게 만드는 유일한 자부심이자 죽어서도 잊히고 싶지 않은 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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