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을 달리는 버스
사랑어린이집 정류장에 버스를 세운 성훈은 황급히 안전벨트를 풀었다. 대뜸 아빠를 부르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놀랐는지 승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정류장에 쓰러진 노인을 발견하고 저마다 놀라는 소리를 냈다. 그 사이에 승훈은 승객들을 뒤로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민준도 성훈을 따라 버스 계단을 폴짝 뛰어내려 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성훈은 할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반응이 없어 목부근의 맥박을 짚어보니 다행히 심정지 상태는 아니었다. 눈을 희미하게 뜬 노인은 가느다란 숨을 내쉬며 간신히 호흡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버스를 기다리다가 더위에 쓰러진듯했다.
"아빠! 어떡해?"
민준이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성훈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조용한 주택가엔 지나가는 사람도,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버스에 탄 승객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거나 힘을 쓰기 어려워 보이는 어린 여자 승객뿐이라 도움을 요청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쓰러진 노인을 맡기고 갈만한 가게도 근처에 없고, 구급차를 부르기엔 이 더위에 시간을 지체했다가 노인의 상태가 나빠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성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리고 이내 큰 결심을 하고 민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아빠 등에 업게 도와줘!"
민준은 지시에 따라 노인을 일으켜 세우고 성훈의 등에 올렸다. 성훈이 버스에 올라타자 앉아있던 승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일어나 노인이 바닥에 안전하게 누울 수 있도록 성훈을 도왔다.
"죄송하지만 지금 응급실부터 가겠습니다. 바쁘신 분들은 내려서 다음 버스 타 주세요."
부랴부랴 운전석에 앉은 성훈은 승객들에게 급히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버스기사의 판단에 동의를 한 듯했다. 한 할머니는 얼른 출발부터 하자며 성훈을 보챘다. 버스는 문이 닫히기 무섭게 출발했다.
언덕길을 급하게 내려오면서 버스가 심하게 흔들렸다. 민준을 비롯한 승객들은 노인의 머리와 몸이 의자에 부딪히지 않도록 팔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성훈은 백미러로 뒤의 상황을 확인하며 조심히 핸들을 돌렸다. 동산07 버스가 정해진 경로를 이탈하여 큰 길가에 들어섰을 땐 액셀을 밟아 버스의 속력을 올렸다.
배차간격에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눈치챘는지 후발 버스기사에게서 무슨 일이냐고 무전이 왔다. 성훈은 정류장에 쓰러져있던 사람을 태워 응급실에 가는 중이라고 짧게 설명했다. 그렇다고 경로를 이탈하면 어떡하냐고 나무라는 동료에게 일단 사람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성을 냈다. 무전기에서는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고, 승객들은 모두 침묵했다.
버스가 구급차가 아니다 보니 병원으로 가는 길이 험난했다. 빨간 신호등은 계속 나오고 우회전 차선을 가로막고 있는 승용차 때문에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내고. 구급차였다면 정차 신호도 무시하고 클락션을 울려대며 차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갔을 텐데 그러질 못하니 애가 타기만 했다. 성훈은 찰나의 사이에 노인의 상태가 악화될까 봐 겁났다. 손에 낀 흰색 장갑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손에서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도로 위에서 우여곡절을 넘기고 칠복동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응급실 앞에 동산07 버스가 멈춰 섰다. 버스 문부터 연 성훈은 승객들의 도움을 받아 노인을 등에 업었다. 묵직한 무게가 온몸에 실렸다. 아빠 금방 올 테니까 버스 지키고 있어! 민준에게 당부를 남긴 성훈은 노인을 업고서 응급실로 달려갔다.
코로나로 인해 응급실 접수 절차도 까다로워서 성훈은 간호사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느라 한참이나 애를 먹었다. 겨우 침상에 누운 노인은 의사와 간호사들의 응급처치를 받아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의사의 말로는 노인이 더위 때문에 잠시 정신을 잃은 듯 하나 자세한 건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평온해진 노인의 얼굴을 보고 성훈은 의자에 앉아 겨우 한숨을 돌렸다. 온몸에서는 더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손등으로 쓸어내린 이마에서는 땀이 흥건했다. 근무복도 이미 다 젖어버렸을 만큼 성훈은 노인을 살리기 위해 칠복동 한가운데에서 응급실까지 고군분투를 한 거였다. 노인이 소지하고 있던 핸드폰으로 가족에게 연락했다고 간호사에게 전해 들은 성훈은 안심하고 응급실을 나섰다.
"아빠!"
성훈이 병원 밖으로 나오자 버스 문 안쪽에 서있던 민준이 쏜살같이 달려 나왔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됐냐고 걱정하는 아들에게 성훈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줬다. 그러자 민준은 다행이라며 가슴께를 부여잡고 큰 숨을 몰아쉬었다. 버스 창문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승객들도 성훈의 반응을 보고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시말서를 제출한 성훈은 관리팀장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언짢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있는 관리팀장은 나가보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태도였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사죄한 성훈은 문을 닫고 나온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무 중에 멋대로 경로 이탈을 했다는 이유로 성훈은 징계를 받았다. 거기에 버스에 아들을 태우고 다닌 사실이 알려지면서 근무태만이라는 질책까지 들어야 했다. 2년 경력 달성을 코앞에 두고 회사에서 쫓겨날뻔한 했지만, 성훈이 거듭 사정한 끝에 3개월간 월급 10퍼센트 삭감이라는 선으로 이번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린 일의 결과가 징계라니, 성훈은 밀려오는 허무함에 버스를 운전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버스 운행 중에 경로 이탈은 명백한 잘못이고, 허락 없이 아들을 태우고 다닌 것 역시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그에 따른 처분이 너무도 부당했다. 몇몇 동료들은 월급까지 깎을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며 성훈을 위로했다. 성훈도 다른 버스기사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이번 징계처분은 월급을 조금이라도 덜 주기 위한 회사의 갑질이라는 것을.
그러나 성훈을 대신해 부당함을 나서서 피력해주는 동료는 한 명도 없었다. 성훈 역시 징계처분이 과하다며 반기를 들지 못했다. 회사를 상대로 근무 환경이나 급여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간 일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이직할 때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운수회사에 이력서를 내면 회사에서 전 직장에 연락해 기사의 평판을 물어보는 게 이 업계의 관례이다 보니 회사의 갑질과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게 마을버스 기사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안 그래도 적은 월급에서 10퍼센트나 깎인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이제 곧 민준이 여름방학을 맞이하는데 가족과 휴가를 가긴커녕 주 7일 풀타임 운행을 뛰어서 초과근무 수당이라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오늘도 자정까지 12시간이나 버스 운행을 해야 하는 성훈은 무사고를 기원하며 운전석에 앉았다.
"아으, 시원하다!"
명랑 아파트 정류장에서 한 아주머니가 올라탔다. 버스 카드를 찍은 그녀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창가에 앉았다. 밖이 많이 더웠는지 연신 시원하다며 조용한 버스 안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아저씨, 요즘 버스가 왜 이렇게 안 와요? 한 30분은 기다린 거 같네."
성훈은 백미러를 힐끔 쳐다봤다. 50대 전후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티셔츠 목덜미를 펄럭이고 있었다.
"운전할 버스 기사가 없어서 그래요."
"없으면 더 뽑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월급 줄 돈이 있어야 뽑죠."
"돈이 왜 없어요? 대중교통은 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거 아니에요?"
수다스러운 아주머니는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질문을 이었다.
"마을버스는 민간 회사가 운영해요. 저기 큰 시내버스랑은 달라요."
"아이고, 그럼 이걸 어디에 말해야 하나. 나 맨날 이 버스 타고 다니는데 한번 놓치면 큰일 나요."
"시청에 전화해서 민원 좀 넣어주세요. 버스 기사들한테 백날 말해봤자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어요."
성훈이 자조 섞인 투로 대답하자 아주머니는 어떡하냐며 안타까운 소리를 냈다. 잠깐이나마 성훈의 하소연 상대가 되어줬던 아주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가 버스를 타고 내리기까지 불과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으나, 만약 이 거리를 걸어왔다면 30분 이상은 족히 걸렸을 것이었다.
더운 날, 추운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에 마을버스는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황금 같은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도와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충분히 자부심 느낄만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산07 마을버스 기사 성훈에겐 3개월간 월급 10퍼센트 삭감이라는 씁쓸한 현실밖에 남지 않았다.
오전 5시 30분. 오늘도 어김없이 동산07 버스가 차고지를 나섰다. 누군가는 아직 자고 있을, 누군가는 슬슬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시간에 성훈은 이미 근무를 시작한 것이다.
첫차 출발 시간이 늘 일정해도 버스에서 보는 동절기와 하절기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동절기엔 막 출발한 버스 주변이 어두컴컴한데 하절기엔 일찍 떠오른 태양 덕분에 주변이 밝았다. 오전 근무를 하는 날이면 늘 피곤에 절어있는 성훈에겐 졸음을 유발하는 어두운 하늘보다 밝은 하늘이 훨씬 반가웠다.
성훈은 마을버스 기사로 취업하기 전엔 이렇게 이른 시간에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버스기사가 되어 첫차를 몰아보니 꼭두새벽부터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은 의외로 많다는 걸 알았다. 다들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젊은 청년층부터 연세가 많아 보이는 노인층까지 꽤 다양한 사람들이 마을버스 첫차를 이용했다. 아무런 말없이 좌석에 앉아있다가 내리는 승객들에게선 비슷한 삶의 무게가 보였다. 비록 속사정은 알 수 없어도 성훈은 자신처럼 이른 새벽에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곤 했다.
오전 7시가 지나면 교복 입은 학생들과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이 점차 늘어난다. 몇 개 없는 좌석은 일찍 탄 사람이 차지하고 있기에 뒤늦게 탄 사람들은 목적지까지 서서 가야 했다. 콩나물 바구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사람이 가득 들어찬 버스는 커브를 돌 때마다 고통에서 우러나오는 아우성으로 소란스러웠다. 버스 배차간격이 짧았다면 승객들이 조금이나마 분산되었겠지만, 2-3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포기할 수 없으니 승객들은 숨 막힘을 감수하고서라도 만원 버스에 올라타는 거였다. 타고 있는 승객이 많을수록 승훈의 부담감도 배로 불어났다. 자칫 급정거라도 했다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중고등학교 근처에서 교복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내리고, 그러다 보면 무거워서 기어가던 버스가 한결 가벼워진다. 한바탕 폭풍을 지나 보낸 성훈은 앞뒤 차와 배차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액셀을 밟았다. 이번 정류장은 명화초등학교입니다. 부지런히 달리다 보니 민준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저 멀리 보였다.
의아함을 느낀 성훈은 백미러로 승객들을 살폈다. 이 시간대에 명화초등학교에서 내리는 승객이 있는데 하차 벨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였다. 혹시 오늘은 타지 않았나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성훈이 기억하는 20대 여자 승객은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가씨!"
명화초등학교 정류장에 도착한 성훈은 백미러를 보며 소리쳤다. 그녀는 미동이 없었다. 성훈이 재차 그녀를 부르자 근처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졸고 있는 여자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그녀가 잠이 덜 깬 얼굴로 고개를 들더니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아가씨, 여기 명화초등학교예요. 안 내리세요?"
성훈이 말하자 여자 승객이 흐릿하게 뜨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허둥지둥 일어나 단말기에 카드를 찍었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성훈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그녀는 버스에서 내려 잰걸음으로 걸어갔다. 누군가의 지각을 막아준 성훈은 문을 닫고 다음 정류장을 향해 출발했다.
방금과 같은 일은 버스 운행 중에 종종 일어났다. 항상 특정 정류장에서 내리는 승객이 내리지 않거나, 칠복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칠복 고등학교에서 내리지 않거나, 장바구니 수레를 들고 탄 할머니가 평안 시장에서 내리지 않을 때 성훈은 한 번씩 승객들에게 내리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면 열 명중 여덟 명은 깜빡했다며 급히 버스에서 내리곤 했다. 물론 그들은 성훈에게 감사 인사를 잊지 않고 했다. 팍팍한 세상 속에서 성훈의 작은 관심은 일상에 지친 누군가에겐 뜻밖의 행운일 터였다.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열두 시간의 고된 운행을 마친 성훈은 녹초가 되어 차고지로 들어왔다. 퇴근할 때가 되면 목이 말도 못 하게 말랐다. 버스 운행 중엔 화장실에 들를 여유가 없으니 물이나 음료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에 멋모르고 물을 마시면서 버스를 운행했다가 화장실에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렸던 적이 있다. 알고 봤더니 버스기사에게 방광염은 흔하디 흔한 질병이라고 했다. 그때 고생한 이후로 근무 중에 웬만하면 물이든 음료든 일절 마시지 않았다. 기사 휴게실에 들어와 찬물부터 벌컥벌컥 마신 성훈은 입가에 묻은 물기를 손으로 닦았다. 그리고 퇴근 전 마지막 할 일인 버스 청소를 얼른 하기 위해 차고지로 다시 나왔다.
하루 종일 운전대와 기어를 잡고 있던 탓에 대걸레를 쥔 손아귀에 힘이 없었다. 시동을 껐더니 버스 내부가 금방 더워져서 땀도 주르륵 흘러내렸다. 누가 나를 집까지 태워다 줬으면 좋겠다. 나도 남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집에 가고 싶다. 퇴근 전에 청소를 할 때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운전을 업으로 삼다 보니 남이 운전하는 차에 타는 게 얼마나 편한 일인지 깨닫게 되어서 그러는 거였다.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며 대걸레로 바닥 청소를 하고 있을 때였다. 웬 경찰차 한대가 차고지 안으로 들어오더니 건물 입구에 멈춰 섰다. 갑자기 나타난 경찰차가 의아한 성훈은 청소를 하다 말고 유리창 너머를 주시했다. 경광등 불빛이 빨갛게 반짝이는 경찰차에서는 파란 제복을 입은 순경 두 명이 나오더니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