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을 달리는 버스
이제 막 퇴근하려던 성훈을 붙잡은 사람은 관리팀장이었다. 그가 갑자기 방문한 경찰들과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더니 성훈을 다급히 부르는게 아닌가. 영문을 모른 채 세 사람에게 다가간 성훈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경찰 앞에 섰더니 잘못한 게 없는데도 괜히 긴장됐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평안 파출소에서 나왔습니다."
"예예. 저한텐 어쩐 일로..."
"혹시 기사님이 얼마 전에 쓰러진 할아버님을 병원까지 모셔다 드린 분인가요?"
두 명의 경찰 중 선임으로 보이는 남자가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성훈은 일단 그렇다고 대답했다. 혹시 그날 너무 급했던 나머지 교통법규를 어기기라도 한 것일까 봐 덜컥 겁이 났다.
"할아버님의 가족분들께서 기사님을 애타게 찾고 계세요."
"예...?"
"꼭 만나 뵙고 싶다 하셔서 저희가 병원부터 수소문해서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회사에서 징계받은 걸로 모자라 경찰 조사까지 받는 게 아닌가 온갖 걱정에 휩싸였는데, 경찰의 입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성훈은 당시 경황이 없었던 탓에 응급실 간호사에게 자신을 버스기사라고만 소개했다. 정류장에 쓰러져있는 노인을 데려온 것이기에 이름이나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던 건데, 뒤늦게 소식을 들은 노인의 자녀들이 버스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경찰에 문의를 한 거였다.
순경들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성훈은 노인이 입원해있다는 병원까지 경찰차를 타고 갔다. 평생 타볼 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경찰차에 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설마 병원 가는 게 아니라 경찰서로 연행되는 중인 건 아닐까 의심하며 슬쩍 물어봤더니 순경들은 그런 거 절대 아니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분위기를 풀어주는 그들의 웃음에도 긴장을 놓지 못했던 성훈은 순경들이 말한 병원 앞에 도착했을 때야 비로소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고 기사님! 드디어 만났네. 어쩌면 좋아."
성훈이 병실에 찾아갔을 때 노인의 가족들은 한 자리에 모두 모여 있었다. 노인의 아내인 할머니는 버선발로 나오더니 성훈의 두 손을 덥석 붙잡고서 고맙다고 연신 말했다. 병상에 누워있던 할아버지도 아들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기사양반 고맙소. 내가 덕분에 살았어."
"아유, 아닙니다 어르신. 뭐라도 사들고 왔어야 했는데 급하게 오느라 빈손으로 왔네요. 죄송해서 어쩌죠."
"무슨 그런 말씀을. 저희가 뭘 해 드려도 모자란데."
노부부의 아들이 손사래 쳤다. 딸도 옆에서 거들며 감사하단 말을 거듭 전했다. 할머니는 이 상황이 감격스러운지 눈물까지 보였다. 성훈이 우는 할머니를 달래 드리고 할아버지의 건강상태를 전해 듣느라 병실은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순경들은 먼저 떠나고 성훈은 병실에 남아 노인의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저녁때가 한참 지나있었다. 때마침 주머니 속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무래도 슬슬 일어날 때가 된 듯했다. 계속 이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내보니 역시나 민준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성훈은 이제 그만 가보겠다며 노인과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실 밖까지 배웅을 나와준 노인의 가족들 덕분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비록 노인을 태우고 응급실에 간 일 때문에 회사에서는 징계를 받았지만 건강을 회복 중인 노인과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는 가족들 덕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건데 월급 몇 푼 줄어든 것이 사람의 목숨과 비교할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 계기로 새삼 깨달았다. 성훈은 후련한 기분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기사님!"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성훈이 올라타려던 찰나였다. 자리를 비워 인사를 하지 못하고 온 노인의 막내딸이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성훈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봉투 하나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이거 작지만 저희 가족이 드리는 사례예요."
"아니 뭐 이런 걸 다...!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성훈은 괜찮다며 앞에 내밀어진 봉투를 극구 사양했다. 하지만 그녀는 성훈의 손에 억지로 봉투를 쥐여주기까지 했다. 생각보다 두툼한 봉투 두께에 놀란 성훈은 어쩔 줄 몰라했다.
"저희 아버지 살려주신 일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돈이에요. 그러니까 받아주세요."
"아 이거 참..."
사례를 바라고서 행한 일이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보답을 받으니 오히려 민망하기만 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마지못해 가족의 성의를 받기로 한 성훈은 노인의 딸에게 감사하다며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제야 노인의 딸도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성훈을 웃으면서 배웅했다.
퇴근할 무렵 회사에 경찰이 찾아오고 두툼한 봉투를 받기까지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라 성훈은 병원에서 나오고 나서도 얼떨떨했다. 구석에 서서 봉투에 담긴 오만 원권 지폐를 눈대중으로 세어봤는데 금액이 상당해서 또 한 번 놀랐다. 이 돈을 정말 마음 편히 사용해도 되는 걸까. 성훈이 병원 앞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데 민준에게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어, 민준아."
-아빠 왜 안 와? 아까 전화도 안 받고.
민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성훈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노인을 구한 사람은 자신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민준과 통화하며 손에 쥔 봉투를 내려다보던 성훈은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아빠 금방 들어갈게."
노인의 가족에게서 받은 마음을 민준과 나누기로 결심한 성훈은 멀리서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성훈이 사례금으로 받은 돈은 300만 원. 징계처분으로 감봉된 금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 몇 배는 큰 액수였다. 깎인 월급 때문에 당분간의 가계 상태를 걱정했던 성훈은 노인의 가족들로부터 받은 사례금 덕에 숨통이 트였다. 한 달 치 월급보다 훨씬 많은 목돈이 생겼으니 오랜만에 가족과 외식도 하고 민준에게 새 운동화도 사줬다. 귀한 돈으로 산 신발이니까 깨끗하게 신어. 성훈의 당부를 들은 민준은 새 운동화를 애지중지하며 아껴 신었다.
쓰러진 노인을 구한 해프닝은 이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 날 성훈은 동산 구청에서 연락이 왔다는 관리팀장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구청 측은 경찰서로부터 성훈의 선행을 보고받았고, 길에 쓰러진 노인을 지나치지 않고 병원까지 데리고 간 성훈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이다. 어색한 헛기침을 해가며 이 사실을 전달하는 관리팀장의 표정은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 않았으나 성훈은 이 일로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관리 팀장과 징계 처분을 지시한 회사 사장 빼고는 모두가 성훈의 선행이 옳은 일이었다며 사기를 북돋워주는데 더 이상 위축되어있을 필요가 없었다.
구청과 약속한 날에 성훈은 민준을 데리고 표창장 수여식에 참여했다. 구청 직원들은 성훈과 민준을 반갑게 맞이해주고 그날 일에 관해 짧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들 성훈 혼자서만 노인을 구한 것으로 알고 있기에 성훈은 설명했다. 그날 노인을 구한 건 혼자가 아니라 아들 민준과 함께였고, 버스에 탑승하고 있던 시민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인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에 협조했다고. 이 이야기를 들은 동산 구청장은 성훈 옆에 딱 붙어있는 민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특하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민준의 표창장은 학교에서 별도로 수여식을 진행하게끔 명화초등학교에 연락을 취해놓겠다고 악속 했다. 아빠와 함께 했던 민준의 선행과 용기가 많은 친구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때. 아빠 사진 잘 나왔어?"
"응. 엄청!"
성훈과 민준은 소파에 앉아 자신들의 이야기가 실린 기사를 읽었다. 기사 사진 속엔 표창장과 꽃다발을 들고 있는 성훈과 동산 구청장, 그 가운데에 서 있는 민준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성훈이 수여받은 표창장은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인 TV장 위에 꽃병과 함께 나란히 놓여있었다. 상이라고는 까마득한 옛날 학생일 적에 받은 게 마지막이었는데 이 나이 먹고 잘했다며 표창장을 받은 일이 성훈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아들과 함께 받은 표창장이라서 그 의미가 더욱 컸다.
"내일 친구들한테 사진 보여주면서 자랑해야지."
핸드폰으로 사진을 구경하던 민준은 얼른 학교에 가고 싶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성훈은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봤다. 네가 없었다면 아빠도 할아버지를 구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자 민준은 대답했다. 자기는 그때의 아빠가 캡틴 아메리카보다 더 멋있는 영웅처럼 보였다고.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다고.
"진짜로 아빠가 자랑스러워?"
"당연하지!"
민준의 대답이 성훈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세 식구가 빠듯하게 살아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풍족함을 주지 못하는 아빠이지만, 아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환하게 웃는 민준을 보며 성훈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아주 오랜만에 떠올렸다. 가장으로서 짊어진 삶의 무게 때문에 잊고 살았던 그 감정은 고단하게 살아온 성훈을 위로했고, 눈부시게 빛날 성훈의 미래를 응원했다. 아마도 성훈은 지금 느끼는 행복을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었다.
성훈은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승객의 얼굴은 잘 기억하는 편이지만, 꼭두새벽에 버스를 타는 승객들은 유독 기억에 잘 남았다. 몇 안 되는 그 승객들은 아마도 모두 직장인일 듯했다. 그래서 성훈은 늘 새벽에 버스를 타던 승객이 제시간에 정류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괜히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주시하며 서행했다. 그러다가 눈에 익은 승객이 뛰어오는 걸 발견하면 기다렸다가 문을 열어주곤 하는데, 그것은 먹고살기 위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는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훈의 작은 배려였다.
그런데 자주 태우던 새벽반 승객을 보지 못하게 된 시점은 회사가 버스 배차간격을 늘린 이후부터였다. 버스를 타는 승객은 점점 감소하고, 기사들 월급도 겨우 주고, 그러니 새 기사도 고용 못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결국 남은 기사들이 벽치기 운행에 추가 근무까지 강행하다가 과로를 호소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회사는 동산07 노선을 비롯한 여러 노선의 배차간격을 늘리며 재정난을 억지로 버텼다.
버스 출발 시간이 바뀌면서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은 기존에 나오던 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오거나 아예 버스를 포기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 승객들의 불만은 고스란히 버스기사에게로 전달됐다.
"기사님! 버스가 더 일찍은 못 와요?"
새벽반 승객 중 한 명이 버스에 오르자마자 성훈에게 볼멘소리를 냈다. 아저씨라기엔 나이가 많아 보이고, 할아버지라기엔 젊어 보이는 그는 항상 신선 청과 정류장에서 타서 명랑 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리는 승객이었다. 배차 간격이 늘어난 이후로 성훈이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승객 중 한 명이었다.
"배차 간격 때문에 그렇게는 안돼요."
"뒤에 차 타면 늦어서 걸어 다니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요즘 20분을 일찍 나오는데 아이고, 그거 일찍 나왔다고 일할 때 피곤해 죽겠어요 내가."
자신의 사정을 하소연하는 말에 성훈은 대꾸하지 않았다. 동산07 노선은 승객의 연령대가 높다 보니 버스기사에게 주절주절 자기 얘기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성훈은 컨디션에 따라 어쩔 땐 승객들의 말에 꼬박꼬박 대꾸해주고, 어쩔 땐 한두 번 받아주고 말았다. 지금은 오전 근무 극초반이기에 남은 운행 시의 컨디션을 위해서라도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아 승객과의 대화를 단절한 것이다.
오전에 직장인과 학생 승객을 내려주고 나면 그 이후엔 버스가 좀 한산했다. 하지만 승객이 없다고 해서 버스 기사가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버스는 배차 간격을 맞추면서 정해진 정류장에 도착해야 했고, 운행이 조금이라도 밀리면 그만큼 회차지에 도착했을 때 운전대를 놓는 시간이 줄어든다. 화장실 한번 가지 못하고 동네를 몇 바퀴 연달아 운전한 성훈은 뱃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고 점심때가 한참 지났음을 깨달았다. 이번에 차고지에 들어가면 반드시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운전대를 돌렸다.
"이거 국민학교 가는감?"
"예?"
미영 세탁소 정류장에 도착한 성훈은 열린 문 밖에서 국민학교에 가냐고 다짜고짜 묻는 할머니를 쳐다봤다. 팔순은 족히 넘었을듯한 백발의 할머니는 삐쩍 마르고 등도 굽어있었다.
"국민학교 가냐고! 우리 딸 데리러 가야 한단 말이여."
"아, 예. 갑니다."
성훈은 노인이 말하는 국민학교가 명화 초등학교일 거라고 짐작했다. 성훈이 대답하자 노인은 난간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힘겹게 버스에 올라탔다.
"이거 돈은 어디에 넣는감?"
"앞에 돈통에 넣으세요."
안전사고의 위험 때문에 할머니가 좌석에 앉을 때까지는 무작정 버스를 출발할 수 없었다. 느릿느릿한 할머니의 행동이 답답한 성훈은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톡톡 건드렸다. 백미러로 보이는 그녀는 헝겊 지갑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돈통에 넣었다. 그런데 백 원짜리 네 개만 넣고서 빈자리에 앉으려는 것을 보고 성훈이 소리쳤다.
"할머니! 400원만 넣으시면 어떡해요. 버스요금 천 원이에요."
"무슨 천원이여. 나 얼마 전에도 400원 냈어. 저기 저 읍사무소 갈 때."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마을버스 요금이 몇 년째 똑같은데. 얼른 600원 더 내세요."
"시상에나, 천 원이면 짜장면 한 그릇을 사 먹을 텐데. 시방 그 큰돈을 내라고?"
자꾸만 궤변을 늘어놓는 할머니 때문에 버스가 출발하지 않자 타고 있던 승객들이 점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는 수없이 성훈은 할머니를 우선 자리에 앉히고 버스부터 출발시켰다. 요금도 제대로 내지 않았으면서 퍽 당당하게 앉아있는 할머니 때문에 기가 찼다.
저번에도 400원을 냈다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 할머니는 상습적으로 부정승차를 하는 듯했다. 할머니에게 600원을 어떻게 받아낼지 생각하다가 골치 아파진 성훈은 백미러를 힐끗 쳐다봤다. 색 바랜 모시 셔츠를 입은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