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 명예 수당 35만 원
본격적인 여름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한낮 최고 기온은 30도를 넘어서는 무더운 날이 이어졌다. 차라리 햇빛이 뜨겁게 작렬하는 날씨였다면 조금 나았겠지만, 곧 장마가 찾아오려는지 뜨거운 공기는 축축한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줄에 매달아 널어놓은 빨래가 하루 종일 마르지 않을 정도로 얄궂은 날씨에도 영수는 폐지를 줍기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비가 오는 날엔 폐지를 주울 수 없다. 그렇기에 장마가 오기 전에 최대한 많은 폐지를 모아서 팔아야 했다. 장마 기간이 길어질수록 폐지 모을 시간이 줄어들고 그만큼 수입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영수에겐 보훈 수당 말고도 매월 25일에 기초 노령연금이 들어왔지만 두 지원금을 합쳐봐야 1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이 돈에서 월세며 약값이며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데 끼니를 제때 챙겨 먹기에도 충분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인정사정없이 치솟고 있는 물가 때문에 생활고는 영수에게 더욱더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폐지와 재활용품을 팔아야 라면 한 묶음이라도 더 사고 두부 한 모라도 더 살 수 있다. 그래서 영수는 손바닥이 굳은살로 뒤덮이고 팔다리에 멍이 들도록 리어카를 끌며 동네를 전전했다. 밤마다 몸 이곳저곳에 파스를 붙이고 약을 바르느라 먹는 약 외에 드는 약값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응급처치도 하지 않으면 다음날 온몸이 쑤시는 통증을 달고서 폐지를 주워야 했다. 영수가 밥은 굶어도 약값을 아끼지 못하는 이유였다.
이렇게 산지도 이미 십 년이 훌쩍 넘었지만 살림은 여전히 어렵고 나이만 먹어간다는 생각에 좌절감은 늘 그림자처럼 영수를 따라다녔다. 리어카에 폐지를 싣던 영수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이마에 흐르던 땀이 눈에 들어간 걸 알면서도 이게 눈물인지 땀인지 헷갈려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늘에 낀 먹구름이 점차 짙어질수록 영수는 마음이 다급했다. 길바닥을 돌아다니는 중에 비가 온다면 낭패였다. 오늘 모은 폐지는 물론이고 모자와 조끼가 모조리 젖어버릴 것이다. 영수는 자신의 분신처럼 아끼는 국가유공자 모자와 조끼만큼은 비에 젖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오늘 수집한 양이 성에 차지는 않지만 일단 집으로 부랴부랴 향했다. 운 좋게도 빗방울은 집에 도착했을 쯤에야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늘었던 빗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굵어지고 하늘에선 천둥번개까지 쳤다. 천장을 두드리는 소란스러운 빗소리가 한 칸짜리 쪽방을 뒤덮었다. 옥자는 리모컨을 눌러 TV 볼륨을 높이고 영수는 비가 새는 곳이 있는지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하이고, 뭔 놈의 비가 이리 억수로 쏟아지누."
옥자가 덥다면서 중얼거렸다. 그녀는 손에 쥔 낡은 부채로 더위를 달랬다. 살이 많고 모양이 둥그런 부채는 사용한 지 10년도 더 된 고물이었다. 구멍이 듬성듬성 나있는 부채엔 어느 신축 아파트 분양 홍보 사진이 인쇄되어있었다. 그림의 떡과 같은 이 아파트 홍보 부채는 이상하게 낡고 구멍 나도 버리지를 못했다.
"시상에 내 정신 좀 보소. 명순이 데릴러 가야허는디."
빗소리가 한창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앉아있던 옥자가 큰일이라도 난 듯 허둥지둥 대며 일어섰다. 천장을 살피다 옥자의 말을 들은 영수는 뒤돌아서 버럭 화를 냈다.
"명순이는 뭔 명순이여!"
"아 핵교 갔잖어! 비 맞고 집에 오믄 고뿔 걸려싸."
또 시작이었다. 머리에 병이 걸린 옥자는 지금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버렸다. 이는 그녀가 보이는 치매 증상 중 하나였다. 치매를 앓기 시작한 이후로 옥자는 죽은 딸의 이름을 꺼내며 국민학교에 가야 한다고 보채곤 했다. 문제는 최근 들어 그 빈도가 잦아졌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영수는 옥자가 정신을 차리게끔 무작정 화를 냈다.
"염병 헐 소리 고만허고 앉어! 명순이 가는 읎어."
"아가 읎긴 왜 읎어?"
"죽었다 안 캤나! 고마 정신 차리소!"
영수가 소리침과 동시에 사나운 천둥소리가 온 집안을 헤집어놨다. 마주 보고 있는 두 노인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정신이 돌아왔는지 옥자는 허무한 표정으로 영수를 바라봤다. 느릿느릿 주저 앉는 그녀의 눈빛에 공허함이 가득 찼다. 얼굴엔 죽은 딸을 그리워하는 슬픔이 고스란히 보였다. 아내의 슬픔을 외면하고 싶었던 영수는 무심히 뒤돌아 방을 나왔다. 옥자가 명순을 찾을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절망스럽기만 했다.
50여 년 전, 아홉 살이었던 명순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민학교 다녀오는 길에 친구들과 개울가에 들렀다가 물에 빠져 변을 당한 것이다. 슬하에 첫째 아들 명호와 둘째 딸 명순, 셋째 아들 명철 세 남매를 둔 영수 부부는 돈 벌러 나간 사이에 하나뿐인 딸을 잃어버렸다.
날마다 빨래터에 나가 삯을 받고 일했던 옥자는 학교 간 명순을 한 번도 데리러 가지 못한 일이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그 한이 치매 증상으로 나타나면서 옥자는 물론이고 지켜보는 영수까지 괴롭게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어여뻤던 딸아이의 죽음은 영수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당시의 감정은 아흔이 넘어서도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인데, 혼자 과거로 되돌아간 아내가 딸을 데리러 가야 한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영수의 쓰린 가슴을 대신하듯 시커먼 먹구름이 세찬 비를 뿌려댔다. 다 쓰러져가는 집이지만 언덕 중턱에 위치한 덕에 집이 물에 잠길 위험은 덜했다. 그래도 창문을 열지 못하니 덥고 습한 공기가 비좁은 집안을 가득 채우며 숨을 막히게 했다. 영수는 현관 앞에 쭈그려 앉아 비가 그치길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러다가 바깥에서 무언가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봤다.
"이 염병...!"
대문 앞은 무너진 폐지들과 재활용품들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분명 모아둔 것을 천막으로 덮고 밧줄로 단단히 고정시켜놨는데 빗줄기가 워낙 거친 탓인지, 아니면 바람이 세게 불어서인지 비에 젖은 천막은 풀린 밧줄과 함께 힘없이 늘어져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바닥에 쏟아진 폐지들이 손쓸 새도 없이 젖어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영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젖어가는 폐지들을 급히 주웠다. 따가운 빗방울이 앙상한 몸을 난도질했다. 젖은 폐지들은 어두운 색으로 빈틈없이 변해버렸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렇지만 영수는 녹아내리는 재산을 조금이라도 건져내기 위해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쓰레기 더미 앞에서 안간힘을 쓰는 그의 얼굴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흘러내렸다.
장대비가 동네를 휩쓸고 지나간 후에도 흐린 날씨는 계속 이어졌다. 영수는 비가 오지 않는 틈을 타 리어카를 끌고 나왔다. 주말이 지나면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걱정이 돼서 마음 편히 집에 앉아있지 못했다. 당분간 밖에 나올 수 없으니 비 예보가 없는 오늘만이라도 폐지를 바짝 모아다가 팔아야 했다. 그전에 비에 젖은 폐지부터 팔아야 하니 먼 길을 걸어 값을 다른 곳보다 많이 쳐주는 고물상으로 향했다.
"거 10원만 더 쳐주소. 예?"
"어르신, 이것도 비싸게 쳐주는 거예요. 상자가 이렇게 다 젖었는데 이거 다른 데에서는 받지도 않아요."
영수가 가져온 폐지의 무게는 100kg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젖은 폐지의 값은 마른 것의 반값도 되지 않았다. 폐지가 머금은 빗물의 무게를 빼고 계산해서 영수가 받은 돈은 6000원. 비만 오지 않았더라도 만원은 넘게 받았을 것을 국밥 한 그릇 못 사 먹는 돈만 겨우 받고 쓸쓸히 돌아가야 했다.
단시간에 폐지를 가장 많이 주울 수 있는 곳은 시장뿐이었다. 영수는 평안 시장을 돌며 부지런히 박스를 수집했다. 배고픔도 잊고 돌아다녔더니 쌓은 박스의 높이가 어느덧 키를 훌쩍 넘어섰다. 습한 날씨에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버리고 목장갑을 낀 손은 퉁퉁 불어 쉰내가 진동했다.
영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박스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그가 전봇대에 걸린 어느 현수막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6·25 전쟁 72주년
조국을 위해 몸 바쳐 싸우신 영웅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매월 25일은 기초노령연금이 통장에 입금되는 날이다. 이번 달 연금 지급일은 토요일이기에 하루 일찍 돈이 들어왔을 뿐, 6월 25일이라고 해서 영수에게 특별한 이벤트가 생기지는 않았다. 매년 그랬다. 영수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수년 전에도 6월 25일에 폐지를 주우러 다녔다. 방송에서는 6.25 전쟁을 기념해 정치인들이 연설을 하거나 참전용사들에게 꽃다발과 훈장 수여하는 행사를 내보내고, 동네에서는 영웅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며 곳곳에 현수막을 걸어놓았지만 영수에게 해당하는 사항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그는 조국을 위해 몸 바쳐 싸운 영웅이 아닌 폐지 줍는 노인일 뿐이었다.
잊지 않겠다는 말을 수십 년간 보고 들었음에도 잊힌다는 설움을 절감할 여유는 영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병을 앓는 아내를 책임지고 내일 당장 먹고 살 돈을 벌려면 단 몇 분도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현수막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수는 박스가 쌓인 리어카를 끌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72년 전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난무하던 대지 위가 전쟁터였다면 현재는 살아 숨 쉬고 있는 이 세상 자체가 전쟁터였다.
종일 모은 폐지를 팔러 가던 영수는 조금씩 찾아오던 배고픔을 참지 못해 눈에 띈 편의점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에 앉아서 공부를 하던 여자 알바생이 일어나서 인사했다. 영수는 그녀를 지나쳐 냉장식품 매대로 향했다.
영수가 냉장식품 매대를 구경하는 시간은 짧았다. 샌드위치나 김밥이 먹고 싶었지만 값이 비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은 천 원 안팎의 컵라면. 그중에서도 영수는 900원짜리 육개장 작은 컵과 1250원짜리 육개장 큰 컵 두 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700원이었던 육개장 작은 컵은 어느새 900원으로 올라있었다. 1,000원이었던 빵의 가격은 1,300원으로, 1,300원이었던 바나나 우유의 가격은 1,500원으로.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식품 중엔 값이 오르지 않은 게 없었다. 고작 200원 300원이라도 영수는 그만큼을 더 소비하려면 결심이 필요했다. 평소였다면 육개장 작은 컵을 골랐겠지만 오늘은 6월 25일이니까, 350원을 스스로에게 내리는 보상이라고 생각하며 영수는 육개장 큰 컵을 골라 계산대로 갔다.
"1,250원입니다."
영수는 조끼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뭉치를 꺼냈다. 젖은 폐지를 팔아서 받은 천 원짜리 중에 두 장을 내미는 순간까지도 작은 컵으로 바꿔올까 고민했다. 알바생이 돈통에 돈을 넣고 거스름돈을 내밀 때까지 영수의 눈은 줄곧 알바생의 손에 고정되어있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알바생의 눈동자가 영수를 슬그머니 훑었다. 계산이 끝났음에도 컵라면을 들고 미적거리던 영수는 테이블에 가서 컵라면 포장지를 뜯었다.
유리창 밖 리어카와 마주 보고 앉은 영수는 뜨거운 컵라면을 허겁지겁 먹었다. 350원 더 비싼 컵라면의 맛은 그만큼의 값어치를 했다. 목구멍을 타 넘고 내려가는 뜨거운 국물도 시원하고 달게 느껴졌다. 점점 줄어드는 라면이 아까워서 천천히 먹어보려 했지만 눈 깜짝하는 사이에 컵라면 용기는 바닥을 보였다.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싹 비워버린 영수는 두 손으로 들고 있던 용기를 내려놓았다. 빈 용기를 내려다보는데 한두 시간을 쌔빠지게 폐지를 모아야 손에 쥐는 돈이 이토록 순식간에 없어진다는 사실에 문득 허무했다. 분명 배를 채웠는데 기운이 나지 않았다.
"저... 어르신."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영수에게 편의점 알바생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영수는 의아해하며 알바생을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은 그녀는 들고 있던 500ml짜리 포카리 스웨트를 내밀었다.
"밖이 많이 덥죠. 이거 드세요."
처음 만난 자신한테 대뜸 음료수를 건네는 의중을 모르니 영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수가 이걸 왜 주는 거냐고 물으려던 찰나였는데 알바생이 말을 이었다.
"오늘... 6월 25일이잖아요."
"..."
"감사합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영수는 알바생이 들고 있던 음료수를 두 손으로 받았다. 영수가 음료를 받자 고개를 살짝 까딱이며 인사한 그녀는 계산대로 돌아갔다. 다시 볼펜을 쥐고 문제집을 내려다보는 그녀에게서 영수는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손에 쥔 포카리스웨트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리어카를 번갈아 가며 봤다.
참으로 이상했다. 더운 여름에 달궈진 리어카 손잡이는 언제 잡아도 시리기만 했는데, 이슬이 맺힌 음료병은 냉기를 느끼지 못할 만큼 따뜻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영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6·25 참전 당시에 겪은 수많은 일 중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수를 괴롭게 만드는 기억이 하나가 있었다.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전우를 버리고 후퇴한 기억이었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는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이어도 같은 군복을 입고 있으면 모두가 전우애를 느끼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영수는 후퇴 명령이 떨어졌을 때 다리 한쪽이 잘려나가 울부짖는 전우를 차마 들쳐 업지 못했다.
고통으로 절규했던 전우의 표정은 마치 각인된 것처럼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나이가 구순이 넘도록 이렇게 고생하면서 사는 건 그때 그 전우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수는 6·25 기념일이 다가올 때면 여기저기서 보게 되는 후손들의 감사인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6월 25일이라는 날짜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지 않게 된 거였다.
하지만 알바생이 건넨 음료와 감사인사가 뭉쳐서 굳어있던 마음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6월 25일이 지닌 특별함은 나에게 여전히 유효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울컥함을 영수는 오래오래 끌어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