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 명예 수당 35만 원
장마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비가 안 오려나 싶어서 밖에 나가 보면 시커먼 먹구름이 여전히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시 비를 쏟아냈다. 발이 꽁꽁 묶인 영수는 옥자와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TV를 보거나, 치울 것도 없는 집을 정리하거나, 그마저도 다 끝내면 누워서 잠을 자는 것뿐이었다.
집에 있는 TV는 사용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옛날 모델이었다. 화질이 좋지 않은 뚱뚱한 TV로 볼 수 있는 채널은 지상파 여섯 개가 전부였다. 그거라도 틀어놓지 않으면 쪽방에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함께 산지도 60여 년인 노부부 사이의 침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어르신! 저 왔어요!"
TV 소리 외에 들리지 않던 쪽방이 소란스러워지는 건 경숙이 방문했을 때뿐이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평일에 매일 영수네 집으로 찾아오는 그녀는 옥자를 담당하는 재가방문 요양보호사였다. 옥자가 치매를 앓기 시작한 이후로 작은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바람에 늘 불안했던 영수는 동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돌봄 서비스를 신청했다. 기초생활 수급자였다면 나라에서 비용을 100% 지원해줬겠지만 영수와 옥자는 기초생활 수급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월 6만 원이라는 돈을 재가방문 요양 센터에 지불해야 했다. 나머지 금액이라도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게 다행이었다. 국가 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를 대상으로 지원해주는 재가 복지 서비스도 있지만 그것은 주 1-2회 집에서 짧게 머물다 간다 해서 신청하지 않았다. 영수에게 필요한 사람은 매일 집을 비워야하는 자신을 대신해 옥자를 오래 돌봐줄 사람이었다.
"어휴, 무슨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지. 버스 기다리는 동안 다 젖었어요."
"오늘도 버스가 늦었어?"
"말도 마세요. 원래는 늦어도 20분에 한 대씩 왔었는데 요즘은 한 30분씩 기다리는 것 같아요. 아버님! 여기 장 봐온 거 보세요."
검은 봉지를 영수에게 건넨 경숙은 젖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옥자는 경숙에게 어서 와 앉으라고 말했다. 경숙은 장 본 것들 정리부터 하겠다고 대답했다.
"깻잎 조림 해드리려고 했는데 세상에 무슨 깻잎 요만큼이 2천 원이나 하는 거예요. 오이는 두 개에 4천 원 5천 원 이렇고."
"오이가 그렇게 비싸?"
"그렇다니까요! 배추, 시금치, 상추 뭐 안 오른 게 없어요. 특히 상추는 요새 금추예요 금추. 근데 아버님, 이거 웬 포카리 스웨트예요?"
쭈그려 앉아 장 봐온 것들을 냉장고에 넣던 경숙이 포카리스웨트를 꺼내며 물었다. 뚜껑도 따지 않은 그 음료는 얼마 전 편의점 알바생이 영수에게 준 것이었다. 먹기 아까워서 음료를 냉장고에 보관해둔 것을 영수는 경숙에게 뚜껑 따서 마시라고 권했다. 하지만 경숙은 아버님 일 가실 때 마시라며 음료를 제자리에 내려놨다.
냉장고 정리를 마친 경숙은 옥자 옆에 앉아 숨을 골랐다. 옥자는 낡은 부채를 경숙에게 부쳐주고 영수는 컵에 물을 따라와 경숙에게 건넸다. 두 노인은 1년이 넘게 집에 방문하고 있는 경숙을 자식처럼 아꼈다. 비록 하루에 3시간뿐이지만, 그 시간 동안 집안 청소도 해주고 반찬도 만들어주고 필요한 것들을 대신 사다 주는 경숙은 두 노인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두 아들보다 그녀가 진짜 친자식 같았다.
경숙은 가방을 주섬주섬 뒤져 꺼낸 마트 영수증을 영수에게 건넸다. 깻잎, 감자, 마늘, 두부, 라면... 품목이 몇 개 되지도 않는데 합계 금액엔 3만 천 얼마가 찍혀있었다. 3만 원만 주셔요. 다리를 쭉 뻗고 앉은 경숙이 호쾌하게 말했다. 영수는 서랍에 넣어둔 봉투에서 만 원짜리 세장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영수와 옥자가 경숙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말동무가 되어준다는 점 때문이었다. 매일이 똑같고 지루한 날들이라 딱히 나눌 이야기가 없는 노부부에게 영숙이 해주는 이야기는 뉴스보다 유익하고 드라마보다 재미있었다. 아버님도 계신 김에 감자전을 해 먹자며 싱크대 앞에 선 경숙은 강판에 감자를 가는 동안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러면 옥자와 영수는 한 마디씩 거들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근데 아버님은 아들들 언제 찾으시려고 그래요."
"뭣하러 찾아."
"뭣하긴요! 지금 자식들 때문에 여태 기초수급자 신청도 못하신 거잖아요. 그것만 돼도 나라에서 지원받는 게 훨씬 많아질 텐데."
"고런 거 다 필요 읎어."
"필요 없으면 아드님 도움이라도 받으셔야죠. 아들 재산 많다고 그랬다면서요 동사무소에서."
노부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경숙은 연이 끊긴 두 아들을 찾아보라며 성화를 내곤 했다. 그동안 영수 부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이 되지 않았다. 부모를 부양할 자식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작년에 부양의무자 제도라는 것이 폐지됐다길래 혹시나 하고 희망을 가졌던 영수는 동사무소에 기초생활 수급자를 신청하러 갔다가 좌절하고 말았다. 동사무소 직원 말로는 첫째 아들의 재산이 기준 이상이라 부모의 기초수급자 선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자식들과 연락 끊긴 지 20년 가까이 된다고 사정해봤지만 제도상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영수 부부가 기초수급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가족 해체를 신청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이미 끊어진 가족관계임에도 나라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서류상으로 가족의 단절을 확실하게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영수는 가족 해체 신청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부모를 등졌다 해도 자식은 자식이었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못 먹고 못 배운 아이들에게 늘 미안함을 가지고 살았던 영수는 늙어서까지 자식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식들을 찾을 생각이 없는 거였다.
"요즘 행복 주택 그거 잘 나오거든요. 아버님은 유공자니까 신청만 하면 바로 될 텐데."
"되면 뭐혀. 보증금 낼 돈두 읎어."
"그러니까 이럴 때 자식들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아드님들 어떻게 사는지 안 궁금하세요?"
자신이 춥고 덥고 굶주릴지라도 영수는 환갑을 넘었을 아들들이 그저 건강하게 잘 살고 있기만을 바랐다. 옥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노부부의 소원이 있다면 죽기 전에 딱 한 번만이라도 자식들을 만나는 것. 그거면 내일 당장 죽어도 더 이상 여한이 없을 듯했다.
"그냥 경숙이 누가 우리 딸 혀."
"아이고, 기초수급자 그거만 되시면 내가 하루에 여덟 시간씩 우리 김옥자 여사님 딸 노릇 해드릴게."
경숙의 대답에 옥자가 참말이냐며 허허 웃었다. 감자전을 부치는 경숙도 따라 웃었다. 지글지글 전 부치는 소리와 천장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그녀들의 웃음소리와 어우러져 정겨운 화음을 만들었다. 이 작은 쪽방 안에서 웃지 않은 사람은 영수뿐이었다. 정겨운 화음 소리가 커질수록 늙은 가장의 가슴에는 짙은 안개가 끼었다.
며칠간 지겹게 내리던 비가 그쳤다. 장마가 지나간 뒤에 찾아온 건 뜨겁고 습한 공기였다. 30도를 훌쩍 넘는 기온에 높은 습도까지 더해져 아침부터 밤까지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졌다. 비 예보가 없었는데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이런 날씨임에도 영수는 폐지를 주우러 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집을 나섰다. 옥자에게 집에 꼼짝 말고 있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했다.
비가 그치는 날만을 기다렸던 듯, 동네며 시장이며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들이 많았다. 영수는 리어카를 끌다가 멀리서 경쟁자를 발견하면 얼른 방향을 꺾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경쟁자들이 다녀간 곳에는 주울만 한 게 이미 동나 있을게 뻔해서 그랬다. 가정이나 상점에서 버리는 쓰레기들은 곧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의 생계와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폐지 줍는 노인들은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젊은이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 전쟁을 매일 치르면서 살았다.
평안 시장을 전전하다가 큰 수확을 얻지 못한 영수는 옆동네까지 진출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돌아가는 길이 고되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가 거리를 지나다가 가로수 밑에 버려진 폐지를 발견하면 힘든 것도 금방 잊어버릴 만큼 반갑기만 했다. 장마 동안 벌지 못한 돈을 이제야 벌게 되었는데 폐지가 있는 곳이라면 천리라도 걸을 수 있었다.
6차선 도로 가장자리에서 리어카를 끌던 영수는 저 멀리 무더기로 쌓인 폐지를 발견하고 눈을 번뜩였다. 주변에 경쟁자로 보이는 노인들도 없었다.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영수는 리어카를 끌고 힘차게 나아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뒤쪽에서 부우웅 소리가 점차 커지더니 영수의 리어카 옆으로 트럭 모양의 오토바이가 쌩 지나갔다.
"아니 저 썩을놈이...!"
리어카를 뒤에 매달아 개조한 오토바이 주인은 영수도 잘 아는 경쟁자였다. 남들이 리어카와 수레를 끌 때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폐지를 주웠다. 어느 고물상이 값을 더 쳐주네, 요즘 건강은 어떻네 하며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여타 노인들 사이에서 그는 상도덕이 없기로 유명한 작자였다. 폐지를 발견했다 하면 누가 먼저 주우러 가고 있든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쓸어 담는 짓을 영수도 여러 번 당했다.
폐지가 쌓여있던 곳에 영수가 다다랐을 때 오토바이 주인은 이미 그 폐지를 리어카에 다 실은 상태였다. 영수가 그걸 다 가져가면 어떡하냐고 삿대질하자 오토바이 주인은 먼저 와서 주웠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역정을 냈다. 열 살 이상은 차이나는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분해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볼일이 다 끝났다는 듯 얄밉게 사라지는 오토바이의 뒷모습을 영수가 씩씩대며 바라봤다.
한번 재수가 없는 날은 하루 종일 되는 일이 없었다. 새벽같이 나와 점심때가 지나도록 돌아다녔는데 리어카에 실은 폐지는 많지 않았다. 주택가에서 폐지를 싣고 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전동 킥보드를 피하려다 리어카 모서리에 허벅지를 부딪히기도 했다. 도로 위를 다니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만으로도 충분히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노인들에게 최근 들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전동 킥보드는 무시무시한 살인기계나 마찬가지였다. 인도는 물론이고 좁은 골목길까지 빠른 속도로 쏘다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킥보드에 치이기라도 하면 아마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영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옥자가 살아있는 동안엔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병을 앓는 데다가 등까지 굽어 힘을 쓰지 못하는 옥자는 아마 남편이 죽는다면 혼자서 살아남지 못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영수가 받는 참전 수당은 유공자 본인이 사망하면 지급이 중단되는데 이런 현실에서 옥자가 무슨 돈으로 먹고 산단 말인가. 이 동네에 사는 동안 주변에 혼자 살던 노인들이 고독사 했다는 이야기만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는데 이런 세상에서 자신이 죽고 난 후의 옥자를 생각해보면 영수는 그저 속만 까맣게 타들어갔다.
옥자를 돌봐줄 자식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영수는 오래전 연락이 끊긴 두 아들을 떠올렸다. 가난한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도 가지 못한 첫째와 공부는 잘했어도 대학을 포기해야 했던 막내는 크는 동안 부모에게 원망하는 소리 한번 하지 않았었다. 일찌감치 일을 시작해 가계에 보탠 두 아들 덕에 영수는 가장으로서 무겁게 짊어지고 있었던 부담을 덜고 조금씩이나마 저축을 할 수 있었다. 나중에 집안에 큰일이 생길 것을 대비해 착실히 모아뒀던 목돈은 어느새 지방에 소형 아파트 한채 정도는 매입할 수 있을 정도로 불어있었다.
그런데 그 돈을 모두 가져간 것은 첫째였다. 크고 작은 일을 하며 가정을 꾸려가던 첫째는 어느 날 사업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하다며 영수에게 목돈이 있다면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내와 함께 찾아와 무릎까지 꿇으며 정중하게 부탁하는 아들의 말을 영수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사업이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있고 빌려준 돈은 꼭 배로 갚겠다고 약속하는 첫째에게 영수는 비밀리에 모아둔 돈을 통장째로 건넸다.
하지만 돈을 받아간 이후 첫째는 점점 연락이 뜸해졌고 집으로 찾아오는 횟수도 줄었다. 사업이 잘 되고 있느냐고 물으면 아직 진행 중이라는 대답만 늘어놓을 뿐 이렇다 할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연락이 끊겼다. 이 모든 소식을 알게 된 막내아들은 왜 형 말만 믿고 그 큰돈을 다 준거냐며 영수를 심하게 나무랐다. 그렇게 다투면서 생긴 갈등이 풀리지 않으면서 막내아들과도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가진 돈도 모두 날리고 자식들에게서 씻지 못할 상처를 받았지만 영수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돈 한 푼 지원받지 않고 가정까지 꾸린 자식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늘 가슴에 남아있었기에 자식들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몫은 평생의 동반자인 옥자를 책임지는 것. 오직 그뿐이었다.
고혈압 때문에 죽든, 폐지를 줍다 전동 킥보드에 치여 죽든, 리어카를 끌고 가다 차에 치여 죽든 영수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에서 살았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홀로 남겨질지 모르는 옥자를 위해 작년부터 매월 10만 원씩 옥자의 이름으로 저축했다. 장롱 맨 아래칸 옷더미 속엔 비밀번호를 적어둔 옥자의 통장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 때문에 평생을 고생만 하며 살아온 아내에게 영수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산이었다.
만약 옥자가 죽는다면 그녀보다 딱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영수는 항상 생각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를 이 전쟁터 같은 세상에 홀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영수를 살게 하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경숙이구먼."
더위에 지친 영수가 그늘 밑에 앉아 옥자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투박한 폴더폰을 펼친 영수는 커다랗게 뜬 경숙의 이름을 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시유."
"아버님! 지금 어머님이랑 같이 계셔요?"
어딘가 다급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다짜고짜 옥자랑 같이 있냐고 물었다. 영수가 같이 있긴 뭘 같이 있냐고 대답하자 핸드폰 너머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가 갑자기 왜 이러누. 의아한 영수는 곧바로 이어진 경숙의 말을 듣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어머님이 집에 안 계세요...! 아이고 이걸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