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을 찾는 손님들
[포켓몬 빵 없어요]
주말 대타로 편의점에 출근한 유진은 검은 매직으로 이면지에 글씨를 휘갈겼다. 문 앞에 붙여뒀던 종이가 비에 젖어 찢어지는 바람에 새로 쓰는 것이다. 젖은 종이를 잠깐 떼놓은 사이에도 포켓몬빵이 있냐고 물어보는 손님이 둘씩이나 다녀갔다. 유진은 이제 포켓몬의 포 자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지난 2월, 십여 년 만에 재출시된 포켓몬 빵은 전국 모든 편의점의 알바생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하루에도 열몇 명씩 포켓몬빵이 있느냐고 묻는 손님에게 앵무새처럼 없다고 대답하는 일은 양반이다. 왜 이렇게 조금 발주하는 거냐, 알바생이 몰래 빼놓은 거 아니냐면서 딴지 거는 손님부터 입고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겠다는 막무가내 손님까지. 1,500원짜리 빵 하나를 사기 위해 기상천외한 진상을 부리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자 유진이 일하는 GS25 편의점은 한 달 전부터 포켓몬빵 발주를 아예 중단하는 특단의 조치까지 내려 버렸다.
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편의점인데 포켓몬 빵을 사러 오는 손님은 초등학생이 아닌 죄다 성인이었다. 유진이 보기에 아이들은 포켓몬 빵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쩌다 남아있는 포켓몬 빵을 초등학생이 산다면 그건 빵을 먹기 위함이지 안에 든 스티커를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래서 포켓몬빵 대란이 더욱 이해가지 않았다. 성인들이 아무리 옛 추억을 회상하고자 포켓몬 빵을 산다지만, 죄 없는 알바생에게 진상을 부리는 행태를 보면 요즘 성인은 초등학생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어서 오세요."
들어온 오후 물류를 정리하던 유진은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인사했다. 원래 일하는 시간은 평일 주간이지만 토요일인 오늘은 주말 알바생의 부탁으로 출근한 거였다. 주말 출근은 처음인데 의외로 편했다. 평일엔 학교 끝나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어 바쁜데 이곳은 학교 앞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오히려 주말에 손님이 적었다.
"저기요, 혹시 단팥 크림빵 없어요?"
빵 진열대 앞에서 묻는 손님은 명화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자아이였다. 일하면서 종종 보는 얼굴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유진은 아이가 찾는 빵이 연세우유 단팥 생크림빵인 줄 알고 그건 CU에서 파는 거라고 대답했다. 포켓몬 빵만큼은 아니지만, 연세우유 빵 시리즈가 유명해진 이후로 편의점에 와서 그 빵을 찾는 손님이 심심치 않게 있어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파란색 봉지에 있는 건데..."
그제야 유진은 아이가 말하는 빵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바닥에 놓인 물류 박스에서 주종발효 단팥 크림빵을 꺼내 주자 아이는 이게 맞다며 활짝 웃었다. 교통카드로 1,300원을 결제한 아이는 계산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편의점을 나갔다.
물류 정리를 끝낸 유진은 계산대 위에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문제집을 펼쳐놓고 공부했다. 3년 동안 다녔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직업을 갖고자 남들이 기본적으로 준비한다는 자격증 공부부터 하는 중인데 여간 막막한 게 아니었다. 하고 싶은 직업이 딱히 생각나지 않을 땐 원래 하던 일을 다시 해야 하나 고민됐으나, 두 번 다시 그 직종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퇴사한 거라서 어떻게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어서 오세요."
공부할 때 하더라도 돈 받고 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순 없었다. 유진은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이했다. 이번에 들어온 손님은 할아버지였다. 피부가 거무죽죽하고 몸이 왜소한 할아버지는 밖에 세워진 리어카의 주인인 듯했다.
손님이 물건을 고를 동안 유진은 곁눈질로 문제집을 내려다봤다. 얼른 계산해주고 의자에 앉고 싶었는데 할아버지는 컵라면 매대 앞에 한참이나 서 있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고민일까 싶어 유진이 그를 가만히 관찰하는데 문득 그의 흰 모자에 새겨진 오각형 문양이 눈에 띄었다. 감색 조끼에도 새겨진 문양과 태극기도 왠지 범상치 않아 보였다.
"1,250원입니다."
유진은 할아버지가 가져온 컵라면의 바코드를 찍으며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조끼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냈다. 대여섯 장 겹쳐진 돈뭉치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내려놓은 그는 돈이 돈통에 들어가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까지 유진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다소 진득한 할아버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유진은 슬그머니 눈치를 봤다. 그러다 그의 조끼에 새겨진 문구를 보고 흠칫 놀랐다.
[6·25참전유공자회]
그 글자를 읽자마자 유진은 오늘 출근 준비를 하며 봤던 뉴스를 떠올렸다. 6·25 전쟁 72주년 행사에서 정치인들이 참전용사들에게 꽃다발과 감사패를 전달하는 장면을 보고 오늘이 6월 25일임을 알았다. 그런데 뉴스에서 봤던 멋진 훈장이 달린 자켓을 입은 참전용사의 모습과 지금 컵라면을 허겁지겁 먹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상반되어 놀란 것이다.
그가 컵라면 매대 앞에서 그렇게 길게 고민하던 이유도, 컵라면을 계산해 놓고도 미적거리던 이유도 밖에 세워진 낡은 리어카를 보니 어렴풋이 짐작 갔다. 인터넷 기사에서나 봤지, 나라를 위해 싸운 영웅의 삶이 이토록 빈곤하고 초라하다는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적은 처음이라 유진은 마음이 무거웠다. 하나였던 나라가 반으로 갈라졌다한들, 나라를 지킨 그들이 있기에 후손들이 이 땅에 태어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거였다. 어떠한 대우를 받아도 모자랄 그들이 이렇게 궁핍함 삶을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부채감까지 느꼈다.
라면을 다 먹은 할아버지는 유리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유진은 그 틈을 타 냉장고에서 포카리스웨트 하나를 꺼내와 자신의 카드로 결제했다. 그리고 앉아있는 할아버지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어르신, 하고 그를 부르자 무슨 일이냐고 묻는듯한 표정이 돌아왔다.
"오늘... 6월 25일이잖아요."
"..."
"감사합니다."
더운데 드시라며 건넨 음료수를 보고 당혹스러워하는 그에게 유진이 덧붙였다. 혹시 이런 행동이 그에게 실례가 되는 건 아닌지 뒤늦게 걱정되어 살짝 주춤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할아버지는 두 손으로 포카리스웨트를 받았다. 그에게 눈짓으로 인사한 유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카운터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이후에도 한참을 앉아있다 일어났다. 할아버지가 음료를 언제 드시나 싶어서 몰래 살폈던 유진은 계산대로 다가오는 그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검고 쭈글쭈글한 손에 들린 포카리스웨트는 뚜껑도 열지 않은 상태였다.
"아가씨."
처음엔 그가 음료를 다시 주려는 줄 알고 당황했지만, 이내 유진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살포시 미소 지었다.
"고맙소."
한 손에 음료를 쥔 할아버지는 다른 한 손을 눈썹 앞에 곧게 세웠다. 영락없는 전쟁 영웅의 경례였다. 감사 인사를 이런 식으로 받아 보는 것은 처음인데 기분이 꽤 좋았다. 안녕히 가세요. 유진은 편의점을 나서는 그에게 두 손 모아 공손하게 인사했다.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떠날 때까지 그녀는 오랫동안 유리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유진쌤, 나 왔어!"
평소보다 한가했던 어느날이었다. 퇴근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았을 무렵, 반가운 얼굴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진의 전 직장동료 혜영이었다. 민간 어린이집에서 함께 근무했던 두 사람은 올 2월 말에 함께 퇴사했다. 유진은 다른 직업을 찾기 위해 취업준비생이 되었지만 혜영은 운 좋게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바로 이직해서 일을 다니는 중이었다.
이제는 직장동료가 아니어도 두 사람은 자주 연락하고 지냈다. 혜영의 직장이 명화초등학교와 가까워서 그녀는 종종 퇴근 후에 유진을 만나러 오곤 했다.
"혜영쌤! 설마 지금 퇴근한 거예요? 여덟 시가 넘었는데?"
"이것도 일찍 퇴근한 거야. 평가제 준비하느라 요즘 맨날 열 시까지 야근한다고."
1+1 행사하는 커피를 계산대에 내려놓은 혜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유진이 계산해주자 그녀는 컵에 달린 빨대를 빼서 뚜껑에 꽂았고, 남은 커피는 유진에게 건넸다.
"작년에도 평가제에 시달렸는데 이직하자마자 평가제가 웬 말이에요."
"내 말이. 그때 맨날 밤새우고 주말에도 늦게까지 일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여긴 서류가 많아서 더해."
"왜요?"
"확인 다 끝난 서류를 뒤집어엎고 수정한걸 또 뒤집어엎고 글자 하나 틀린 거 없나 계속 확인하고. 미쳐버리겠어."
어린이집별로 2-3년에 한 번씩 실시되는 평가제는 모든 보육교사가 몸서리치는 제도였다. 어린이와 학부모에게 양질의 보육 환경을 제공하는 기관임을 인증하고자 실시하는 것이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제도인지 보육 현장에 몸 담고 있는 교사들 조차 납득하지 못했다. 평가자에게 잘 보여야 하는 그날 하루를 위해 어린이집을 통째로 재정비하고, 몇 개월치 서류를 다시 작성하고, 평가자와의 면담에 대비해 예상 질문에 대한 모범 답변을 외우는 게 양질의 보육 환경과 어떻게 연결이 된단 말인가.
게다가 평가제를 준비하는 보육교사들은 개인 시간과 열정을 마땅한 대가 없이 갈아 넣어야 했다. 평가제를 앞두면 매일 늦은 밤까지 야근하는 건 물론이고 때로는 어린이집에서 아예 밤을 새우거나 주말 내내 출근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거의 한 달은 그렇게 일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더 한만큼 추가 근무 수당을 다 받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비로 교재와 교구를 사는 교사들도 있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보육교사들은 대다수가 평가제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유진도 전 직장에서 평가제를 겪어봤기에 이직하자마자 그 과정을 또다시 겪는 혜영이 안쓰럽기만 했다.
"하루 종일 애들 보고, 알림장 쓰고, 애들 집에 보내면 전화로 부모 상담하고, 그러다 보면 일지 쓸 시간 없어서 맨날 새벽까지 집에서 일하다 자고. 근데 평가제 준비하느라 주말에도 출근해. 난 대체 언제 쉬어?"
"와... 듣기만 해도 너무 숨 막혀."
"웃긴 건 여기는 이게 당연한 거야. 새벽까지 일지 쓰고 자거나, 새벽에 일어나서 일지 쓰다 출근하거나 이런 게 당연해. 안 그러면 어린이집에서는 일할 시간이 없으니까!"
"진짜 그 정도예요?"
"나 요즘 후회해. 그냥 이직하지 말고 쌤처럼 아예 이 일 그만둘걸 하고."
혜영의 푸념은 끊이지 않고 나왔다. 유진은 혜영의 말에 공감하며 맞장구 쳐줬다. 그러다 손님이 들어오면 잠시 대화가 멈췄으나 손님이 나가고 나면 다시 이어졌다. 쉼 없이 한탄하던 혜영은 빨대를 쪽 빨더니 소주컵 내려놓듯 커피를 탁- 내려놓았다. 울분을 다 쏟아내서 마음이 좀 진정된 모양이었다.
"근데 들었어? 이번에 사랑 어린이집 아동학대로 신고 들어갔대."
"아동학대요? 왜요?"
"놀이터로 바깥놀이 갔는데 애 하나가 뛰다가 어디에 부딪혔나 봐. 그래서 이마에 멍이 들었는데, 그 애 부모님이 담임한테 애 안 보고 뭐했냐면서 난리 쳤대. 그러고 방임으로 경찰에 신고했다더라."
유진은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받는 상황이었다. 비단 사랑어린이집뿐만 아니라 많은 어린이집에서 이와 같은 이유로 신고당하는 일이 잦았다. 놀다 보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다치는 게 어린애들인데 어떤 부모는 아이를 제대로 보지 않은 담임선생님의 잘못이라며 과하게 책임을 묻거나 방임이라는 죄로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다쳐서 집에 가면 교사가 학대한 게 아니냐고 의심하며 CCTV 열람을 요구하는 부모도 많았다.
"그냥 다 우리 잘못이지 뭐. 애가 뛰다가 넘어져도 교사 잘못, 애가 모기에 물려도 교사 잘못, 애가 옷에 밥을 흘려도 교사 잘못. 그러다 아동 학대했다고 한 번 몰리면 인생 끝나는 거야."
"맞아요. 진짜 너무해."
"아동학대는 친부모가 더 많이 하는데 왜 맨날 우리만 쥐 잡듯이 잡아? 이러니까 다들 못 버티고 뛰쳐나가지."
아동학대의 90%는 가정에서 일어난다는 통계가 존재하는데도 보육교사들은 아동학대의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으며 일해야 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어린이집 아동학대사건이 뉴스나 기사에 크게 보도되면서 보육교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바닥을 치는 수준이었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유아교육과에 진학하고 보육교사가 된 유진은 해가 지날수록 가혹해지는 근무환경을 견디는 게 너무 힘들었다. 유진이 퇴사를 결심한 이유도 아이 가방에 소형 녹음기를 몰래 달고 등원시켰던 부모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는 보육교사들이 한순간에 아동학대 가해자로 몰려버리는 현실이 씁쓸했다.
"쌤은 다시 어린이집 들어올 생각 없지?"
열악한 근무환경과 부모들의 갑질에 시달렸던 유진은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나올 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으나 담임으로 맡았던 아이들이 아직도 눈에 밟히곤 했다. 편의점에 오는 초등학생들을 볼 때면 그간 돌봤던 아이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했다. 일이 힘들었어도 어렸던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에 보람과 행복을 느꼈던 터라 가끔은 어린이집에서 일할 때가 그립기도 했다.
"네. 전혀요."
그러나 역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이가 모기에 물려왔다며 전화로 난리 쳤던 부모, 교사의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원장에게 컴플레인 걸었던 부모, 코로나에 걸린 교사에게 선생이란 게 처신을 어떻게 하고 다닌 거냐고 삿대질한 부모, 맘카페에 왜곡된 이야기를 써서 교사를 욕 먹인 부모. 잠깐 사이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일들만 해도 이렇게 많았다. 아동 보육의 세계에서 철저히 갑인 부모에게 교사는 을도 아닌 병이나 정쯤 됐다. 어쩌면 그보다 더 하위 단계일지도 몰랐다. 유진은 더 이상 그런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싶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한창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편의점 문이 열렸다. 혜영과 대화하던 유진은 반사적으로 인사했다. 곧이어 모습을 나타낸 손님은 닮은 구석이 있는 두 남자아이였다. 편의점에 들어왔다 하면 왁자지껄 떠드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이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계산대 앞을 지나간 아이들이 멀어지고 나서 유진은 혜영에게 눈짓했다.
"쌤, 저 애들이에요. 제가 저번에 말했던."
유진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혜영이 아이들을 유심히 쳐다봤다. 형과 동생 사이로 보이는 두 남자아이는 손을 꼭 잡은 채 냉장식품 매대 앞을 서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