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을 이루는 풀꽃 8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

by 김유수

편의점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들을 잘 기억하는 유진이 요즘 들어 관심 있게 지켜보는 형제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형과 훨씬 어린 동생. 이름을 모르는 그 아이들은 한 달 전쯤부터 저녁때만 되면 두 손을 붙잡고 편의점에 들어왔다.



처음엔 편의점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겠거니 하고 신경 쓰지 않았던 유진이 그 형제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는 파란색 카드였다. 매일 저녁마다 오는 형제가 먹을걸 사고 결제할 때 사용하는 파란색 카드는 신한카드사에서 나온 거였다. 당연히 부모님의 카드일 거라고 생각했던 유진은 아이들이 한 번도 부모님과 온 적이 없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 형제에게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형인 아이가 포스기에 뜨는 합계금액을 먼저 확인하고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하며 7천 원이 넘지 않게 가격을 맞추는 행동이었다. 아이가 진열대의 가격표만 보고서는 계산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 유진은 아이 대신 물건을 골라 가격을 맞춰준 적이 몇 번 있었다. 도와준 유진에게 고맙다고 소심하게 인사하는 형 뒤엔 언제나 동생 아이가 한쪽 눈만 빼꼼 내민 채 서 있었다.



유진이 물건을 대신 골라주면서 알게 된 점은 그 파란색 카드로는 탄산음료나 과자가 결제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도대체 이 카드가 뭔가 싶어서 뒷면을 살펴봤다가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카드는 서울시에서 결식아동들에게 지원해주는 급식비인 꿈나무 카드였던 것이다.



급식 1회 지원 단가가 7,000원인 꿈나무 카드는 일일 단가를 초과해서 결제하면 이후에 쓸 수 있는 금액이 점점 줄어버린다. 그러면 다음 달 급식비가 충전되기 전까지 잔액부족으로 결식아동들이 카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이 카드로는 식사라고 볼 수 없는 탄산음료나 과자,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은 품목은 구매하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유진은 매일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가는 형제가 안쓰럽기만 했다.



"6,900원입니다."



오늘도 삼각김밥 두 개와 우유 두 개, 컵라면 한 개로 7천 원을 간신히 넘기지 않게 구매한 형제는 테이블 구석자리에 앉았다. 유진은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혜영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애들 몇 살 같아 보여요?"

"글쎄... 형은 초등학교 1, 2학년쯤 돼 보이고 동생은... 다섯 살? 여섯 살?"

"여섯 살 치고는 너무 작지 않아요?"

"잘 못 먹으면 저만할 수도 있지. 편식 심했던 애들 생각해봐."



유진은 혜영과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며 형제를 관찰했다. 아이들은 먹는 동안 대화가 거의 없었고, 표정도 항상 어두웠다. 웃는 모습을 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유진이 형제의 물건을 계산해주며 몇 번 말을 걸어본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형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을 회피했고 동생은 형 뒤에 숨어 있기만 했다. 어린이집에서 일할 때 아이들과 라포 형성을 곧잘 했던 유진은 자신에게 좀처럼 경계를 풀지 않는 형제가 어렵기만 했다.



"쌤, 저기 동생 팔이랑 다리 보세요."

"봤어. 아까 편의점 들어왔을 때부터."

"맞아서 생긴 멍 같지 않아요?"



유진이 형제를 신경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최근 들어 생기기 시작한 동생 아이의 멍자국이었다. 보육교사였던 유진은 아이들이 놀거나 뛰다가 생기는 상처들을 많이 봐왔다. 그런데 동생 아이의 몸에 난 멍의 모양과 크기는 어딘가에 부딪친다고 해서 생길법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학대의 흔적 같았다.



혹시 괜한 오해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진은 혜영에게 자신이 느낀 의문점들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역시 혜영의 생각도 같았다. 깔끔하지 못한 차림새, 두 형제가 매일 7천 원어치의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는 끼니, 어린아이들 특유의 밝음이 보이지 않는 얼굴, 결정적으로 동생 아이의 몸에 난 멍자국. 이 모든 이유를 종합해보면 형제가 가정에서 신체학대와 방임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유진과 혜영의 공통 의견이었다.



비록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유진은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인 전직 보육교사였기에 학대 정황이 보이는 형제를 보고도 못 본 척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형제가 대화를 허락하지 않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던 중이었다.



이에 혜영은 자기가 한번 나서보겠다며 뽀로로 음료 세 개를 꺼내와 계산했다. 그리고 음식을 거의 다 먹어가는 아이들에게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얘들아, 너네 혹시 뽀로로 음료수 좋아해?"



혜영이 살갑게 말을 걸자 음식을 먹던 형제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혜영은 아이들과 살짝 떨어진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에 음료 세 개를 올려놨다.



"이거 두 개 사면 하나 더 준다고 해서 세 개를 샀는데, 혼자 다 먹기엔 너무 많아서. 괜찮으면 이거 너네 마실래?"



굳어있던 형제는 혜영의 말을 듣고 조금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동생 아이는 음료수가 먹고 싶은지 형과 음료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혜영은 음료 뚜껑을 따서 형제가 앉은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형의 눈치를 보던 동생은 혜영이 먹어도 된다고 말하자 두 손으로 음료를 잡고 허겁지겁 마셨다.



혜영은 자신이 햇살 어린이집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며 형제와 대화를 시도했다.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집은 어디인지, 동생에게 난 멍은 어쩌다 생긴 건지. 그러나 형제 중 누구도 혜영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음료수를 손에 쥔 동생은 형의 눈치만 살폈고, 우물쭈물하던 형은 끝내 혜영의 눈을 피해버렸다. 유진은 자신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혜영에게 그만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얘들아, 저기 이모도 선생님이야. 그러니까 무슨 도움이 필요하면 저기 선생님한테 이야기해. 알았지?"



혜영이 손가락으로 계산대 쪽을 가리키자 형제가 유진을 쳐다봤다. 유진은 상냥하게 웃으며 형제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별다른 반응이 없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차라리 자신이 괜한 오해를 한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점장님이 알바생들에게 지원해주던 식대가 8천 원에서 9천 원으로 올랐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8천 원으로는 국밥 한 그릇도 사 먹지 못하게 되자 점장님이 특별히 식대를 올려준 거였다. 하지만 유진은 근무 중에 9천 원으로 저녁을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요즘 배달음식은 기본 배달료만 2000원 이상인 데다가 최소 주문 금액도 높아서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이 제한적이었다. 그렇다고 편의점 음식으로 9천 원어치를 먹자니 그것도 싫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웬만한 식품류는 다 먹어봤던 터라 이젠 편의점 음식이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유진은 튀김요리를 만들며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고민했다. 근처에 음식을 포장해올 만한 가게도 마땅치 않아서 매일 저녁을 고민하는 게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저녁도 굶은 채 밤 10시까지 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월급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최소 주문금액을 맞춰서라도 맛있는 걸 시켜먹고 싶은데, 취업준비생이라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돈 쓰기가 망설여졌다. 이제는 밥 한 끼를 든든하게 먹으려면 만 원짜리 한 장은 기본으로 써야 할 만큼 물가가 올랐지만 직장인과 알바생들이 받는 월급은 그대로이니 허리띠를 졸라 매야 매월 나가는 고정지출을 감당할 수 있었다. 유진도 핸드폰 요금, 보험료, 적금을 비롯한 각종 고정지출이 빠져나가고 나면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재취업이 불확실한 지금은 먹는 것에 함부로 돈을 쓰지 못했다.



더군다나 편의점은 물가가 오르는 것을 가장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매월 말일 저녁마다 다음날부터 바뀌는 행사 상품 가격표를 교체하다 보면 상품의 가격이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20% 이상 오른 것이 보였다. 확정된 내년 최저임금은 고작 5%밖에 오르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임금 대비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한낱 서민이고 취업준비생인 유진은 뉴스에서 백날 인플레이션이니 금리인상이니 하며 떠드는 걸 보는 것보다 당장 일터에서 체감하는 물가 상승이 피부에 확 와닿았다. 그래서 돈쓰기가 더욱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2,500원? 아 너무 비싼데."



우르르 몰려온 초등학생들은 저마다 먹을 것을 고르며 시끄럽게 떠들었다. 개중 한 남자아이가 튀김음식 진열대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아이들이 한테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단연 조각 치킨과 닭꼬치 같은 즉석 튀김류였다. 그러나 날이 지날수록 편의점 상품들의 가격도 올라가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던 닭다리 앞에서 등을 돌리는 경우가 늘었다. 치킨 한 조각에 2,500원, 3,000원씩 하는데 어른도 사 먹기 망설여하는 금액을 어린아이들이 흔쾌히 지출 할리는 만무했다. 음식을 튀기는 일이 은근히 번거로웠던 유진은 튀김이 잘 안 팔리는 게 좋으면서도 아이들이 음식 앞에서 돈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이 꼭 자신의 모습과 닮은 것 같아 보여 씁쓸했다.



저녁때가 될 때까지도 저녁 메뉴를 정하지 못한 유진은 결국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웠다. 편의점 음식 수요가 늘어나면서 몇 년 사이에 편의점 도시락도 퀄리티가 일반 도시락집 못지않게 좋아졌다. 유진은 반찬 넣는 칸만 9개인 도시락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산대 앞을 지켰다. 그러던 중에 익숙한 얼굴의 아이들이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언제부턴가 유진이 이 시간쯤만 되면 기다리게 되는 어린 형제였다.



오늘도 동생의 손을 꼭 붙잡은 형은 삼각김밥 두 개와 우유 두 개, 컵라면 한 개를 가져왔다. 형제가 먹는 음식은 맛만 다를 뿐 종류가 거의 같았다. 삼각김밥과 컵라면과 우유, 어쩔 땐 개수 하나를 줄이고 소시지를 추가했다. 합계 금액이 7천 원을 초과하면 우유를 물로 바꿔오기도 했다. 편의점 도시락 한 개의 가격이 5천 원 전후다 보니 형제는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 여러 개로 배를 채우는 듯했다. 유진이 생각하기엔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고 해도 편의점 음식 7천 원어치로 굶주린 배를 채우기엔 부족해 보였다.



"7,100원입니다."



형제는 이제 유진이 도와주지 않아도 얼추 가격이 맞춰지게끔 음식을 구매했다. 유진은 파란색 꿈나무 카드를 리더기에 꽂아 결제해줬다. 그러면서 형제를 슬쩍 훑어보다가 동생 아이의 팔다리를 보고 놀랐다. 지난번에 있었던 멍은 거의 없어졌는데 다른 위치에 또 다른 멍이 생긴 것이다. 반면에 형인 아이에겐 멍이나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계산할 동안 튀김 진열대를 쳐다보던 아이는 유진이 계산이 다 끝났다고 말하자 서둘러 먹을 것들을 챙겼다. 형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 동생 아이의 종아리에 가늘고 기다란 멍자국이 선명했다.



유진은 형제가 저녁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란히 앉아 젓가락질이 서툰 동생에게 라면을 먹여주는 형은 언제나 자신이 먹던 것까지 동생에게 양보하는 착한 아이였다. 자그마한 손으로 동생의 입에 묻은 것을 닦아주는 행동에서 나이에 맞지 않는 어른스러움이 보이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며 초등학생들을 많이 봐온 유진은 한창 철없고 시끄러울 나이에 묵묵히 동생을 챙기는 아이를 마냥 기특한 마음으로 볼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들의 행동과 성격은 가정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는 것을 어린이집에서 일하면서 몸소 느꼈기에 그랬다.



신체학대는 물론이고 정서학대와 방임까지 당하는 것이 의심되는 형제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유진은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말을 걸어도 대답을 잘해주지 않고 웃는 모습 한번 본 적 없었던 형제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고민하던 중에 방금 전 튀김 진열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의 모습이 생각났다. 종이 트레이에 큼지막한 치킨 한 조각을 담아 먹기 좋게 자른 유진은 구석에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유진이 가까이 다가가자 동생 아이는 몸을 움찔거리며 놀랐다. 형 역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지난번 혜영이 말을 걸었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이 치킨 먹을래? 저번에 뽀로로 음료수 주신 선생님이 너희 오면 주라고 나한테 맡겨 놓고 갔어!"



트레이에 담긴 치킨을 테이블에 올려놓자 동생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형의 눈길도 치킨으로 향했다. 한 끼에 7천 원만 써야 하는 아이들에게 3천 원짜리 치킨 한 조각은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싼 음식일 것이다. 먹고 싶어도 그림의 떡처럼 바라보기만 했어야 할 음식이 눈앞에 놓이자 아이들이 동요하는 게 보였다. 유진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며 동생 아이 앞에 앉았다. 망설이는 아이들에게 정말 괜찮으니 먹으라고 권하자 우물쭈물하던 형이 유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는 역시나 동생에게 먼저 치킨을 먹여줬다. 치킨 한 조각이 입에 들어가자 동생 아이가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며 웃었다. 형도 치킨을 먹으며 따라 웃었다. 형제에게서 좀처럼 보기 드문 웃는 얼굴이었다. 형제가 치킨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유진은 이름이 무엇인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동안 말을 걸어도 대답을 어물쩡 피하기만 했던 형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형의 이름은 윤호, 동생의 이름은 윤우. 나이가 각각 9살과 5살이라는 것까지 알아낸 유진은 이만하면 큰 수확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질문을 하면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할 수 있으니 천천히 친해지기로 했다.



"그런데 있잖아, 윤우는 다리에 왜 멍이 들었어?"



아이들이 먹은걸 대신 치워준 유진은 가장 궁금했던 멍의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윤우는 옆에 앉은 형을 쳐다봤고 윤호는 다시 말없는 아이가 되었다.



아무래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유진은 많이 아팠겠다며 윤우를 걱정해주고 윤호에게 동생을 잘 챙겨주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불편해할까 봐 정리를 도와주고 얼른 계산대로 돌아왔다. 머지 않아 편의점을 나선 아이들은 언제나 그랬듯 두 손을 붙잡고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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