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일보의 기적
정호의 24시간은 남들보다 훨씬 길었다. 24시간 교대근무라는 악조건에 적응하며 일을 한 지도 어언 2년째. 명랑 아파트 경비원 정호의 하루는 동산07 버스 첫차와 함께 시작되었다.
새벽같이 나와 버스에 오른 정호는 뻐근한 눈가를 비볐다. 좌석에 앉아 점점 밝아지는 창밖 풍경을 감상하는데 하품이 쏟아져 나왔다. 동산07 버스의 배차간격이 늘어난 탓에 기존에 나오던 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나와야만 했다. 그 20분 덜 잔 게 뭐라고 몸이 이토록 피곤한 건지. 버스를 한번 놓치면 이 더운 여름날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언덕을 올라야 했기에 정호는 피곤함을 무릅쓰고서라도 버스 시간에 맞춰 일찍 나오는 거였다.
명랑 아파트 정류장에 내린 정호는 터벅터벅 걸어 경비실로 향했다. 그러면 퇴근을 앞둔 영남이 오셨냐면서 정호를 반겼다. 영남은 이곳에 근무한 지 3개월 정도 된 신입 경비원이었다. 나이 63세에 신입이라는 수식어는 다소 어울리지 않았으나 아파트 경비원들의 평균 연령이 60대인 것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수식어도 아니었다. 우체국 공무원이었던 정호도 60세에 정년퇴직한 후 3년 정도는 매달 나오는 퇴직연금과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생활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자식들한테 용돈 받는 게 미안해서 경비원 일을 시작하게 된 거였다. 현재는 명랑 아파트 경비실에 눌러앉아있는 정호도 한때는 지금의 영남처럼 신입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영남이 퇴근하고 나면 정호의 24시간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근무복으로 갈아입은 정호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레기장에 가서 입주민들이 밤 사이에 버려놓은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한낮엔 땡볕이라 너무 덥고, 저녁엔 주변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으니 그나마 덜 덥고 밝은 아침시간에 이 일을 해야 했다. 게다가 내일 새벽엔 분리수거 트럭이 오는 날이라서 오늘 하루는 재활용 쓰레기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올 것이었다. 분리수거 트럭이 오기 전날은 하루 종일 쓰레기 정리만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KF94 마스크를 끼고 있어도 여름철 쓰레기장의 냄새는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 고약한 냄새를 맡으며 쓰레기를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이때 가장 간절히 생각나는 것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었다. 요즘 세상에 에어컨 설치 안된 실내 일터가 어디 있겠냐마는 명랑 아파트의 경비실이 그러했다. 2평짜리 좁은 경비실에 냉방기라고는 사용한 지 1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선풍기 한대가 전부였다.
쓰레기 정리를 마치고 온 정호는 경비실에 들어와 선풍기부터 켰다. 선풍기 바람만으로는 부족해 부채질까지 하는데도 경비실 자체가 더워서 몸에 오른 열기가 내려가질 않았다. 근무복은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지 오래다. 뽀송하게 마르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듯했다.
정호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힘든 점은 긴 근무시간이나 보장되지 않는 휴게시간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여름에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 하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겨울엔 온풍기를 틀고 껴입기라도 하면 되지 여름엔 옷을 벗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더울 때마다 찬물로 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저 더위를 참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작년 여름 입주자 대표 회의에서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길래 올해엔 에어컨 아래에서 일하는 걸 기대했으나, 에어컨 설치에 동의하는 입주민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진행이 미뤄졌다는 소식을 부녀회장에게 전해 듣고 정호는 상심했다. 올 6월에 한번 더 찬반 조사를 했을 때도 입주민의 절반 정도밖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서는 이제 기대도 하지 않는 상태였다.
정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쓰레기장을 정리하다가 문득 내가 경비원인지 청소부인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다. 거기에 찜통 속인 경비실에 앉아있다 보면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솟구쳤다. 그러나 이 나이 먹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걸 알기 때문에 현실에 순응해야만 했다. 정호는 이렇게 일해서 받은 월급으로 집에서 살림하는 아내를 책임지고 자식들한테 손 벌리지 않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 정호는 경비실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부채질을 하는 것 외에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바깥에서 할 일을 다 끝내고 경비실에 앉아있는 이 시간이 가장 느리게 흘러갔다. 볼만한 것이라고는 16개의 분할화면으로 보이는 아파트 CCTV 영상뿐이었다. 하지만 날이 더워서인지 바깥으로 나오는 사람도 없고 모니터는 거의 정지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정호가 하릴없이 CCTV 영상만 바라보고 있을 때, 열린 창문 너머로 여자아이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안경 쓴 얼굴이 꽤나 똘똘해 보이는 아이는 정호에게 밝게 인사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지루한 시간에 찾아온 고마운 손님이었다. 정호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신을 103동 501호에 사는 권민서라고 소개한 아이는 정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가족이나 주변 이웃을 인터뷰하고 신문 만드는 게 여름방학 숙제인데, 저는 경비원 할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싶어서요."
"나를?"
정호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듣고 허허 웃었다. 인터뷰라니. 살다 보니 누군가와 인터뷰할 날도 오고 참 별일이었다. 손에 노트와 볼펜을 들고 있는 민서는 눈빛이 꽤나 반짝이는 것이 정호의 허락을 기다리는 듯했다. 정호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노트를 펼쳤다.
"경비원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하나요?"
"아침 여섯 시 반부터 다음날 아침 여섯 시 반 까지 일하지."
"진짜요? 그럼 잠은 어디서 자요?"
"여기 뒤에 작은 침대 있잖아. 야간 순찰 돌고 나면 여기에 누워서 잠깐 눈을 붙이는 거야. 근데 많이는 못 자. 늦은 새벽에 아파트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민서는 창틀에 올려놓은 노트에 인터뷰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정호는 아이의 노트를 슬쩍 훑었다. 준비한 질문이 상당히 많아 보였다. 입주민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자신의 근무환경에 대해 물어봐주는 요 작은 아이가 기특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날이 더우니 경비실 안으로 들어오라 하고 싶어도 사람 한 명 겨우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라 차마 그러진 못하고, 선풍기를 아이 쪽으로 돌려줬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야무지게 넘긴 아이는 다음 질문을 했다.
"경비원이 하는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음... 아파트 내에서 위험한 일이 발생하는 걸 예방하기 위해 틈틈이 순찰도 돌고, 아파트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가서 확인하고 조치도 취하고, 아파트 주변도 항상 깨끗하게 청소하고 또... 아파트에 수도 공사 같은 무슨 일이 생기면 안내방송도 하고 그러지."
"그게 다예요?"
"다 일리가."
꽤 구체적인 대답을 원하는 민서에게 정호는 성심성의껏 답변해줬다. 쓰레기장 정리도 하고, 입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가서 중재도 하고, 택배실 관리도 하고... 하는 일을 하나둘 열거했더니 경비원의 업무가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정호 스스로도 놀랐다. 협소한 주차공간 때문에 가끔 입주민 대신 주차를 해준다고 말했을 때 이미 민서의 노트는 가지런한 글씨로 한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운 상태였다.
경비원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경비원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인지, 입주민한테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민서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그래도 정호는 모든 질문에 기쁜 마음으로 답해줬다. 단지 초등학생의 방학숙제를 도와주고 있을 뿐인데 처음으로 입주민한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다 이야기한다는 생각에 속도 시원하고 뭉클했다.
"할아버지, 경비실 사진도 찍어도 돼요?"
"그럼."
인터뷰를 마친 민서는 신문 만들 때 쓸 사진이 필요하다며 경비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내부 사진을 찍더니 경비실 안이 엄청 덥다며 깜짝 놀랐다. 왜 에어컨이 없냐고, 정말 순진무구한 얼굴로 묻는 아이에게 정호는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다. 쓴웃음으로 넘긴 말을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인터뷰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혹시 또 궁금한 게 생기면 와도 돼요?"
"당연하지. 또 물어보러 와."
"네! 안녕히 계세요."
허리를 꾸벅 숙이며 예의 바르게 인사한 민서는 103동을 향해 총총 뛰어갔다. 정호는 신나 보이는 아이의 뒷모습을 경비실 앞에 서서 흐뭇하게 바라봤다.
경비실을 뜨겁게 달군 태양이 저물고 나면 그나마 근무하기가 수월했다. 열대야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공기가 후덥지근한 건 피차일반이었지만, 적어도 순찰 돌 때나 쓰레기 정리할 때 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정호는 밤 10시가 넘어갈 때쯤 놀이터를 비롯해 아파트 구석구석을 돌며 순찰했다. 이제는 눈감고도 다닐 수 있을 만큼 명랑 아파트는 정호에게 익숙하고도 친밀한 공간이었다.
정호가 이 시간대엔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는 지하 주차장과 지상주차장 사이사이는 물론이고 외부와 차단된 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평소와 같이 순찰 돌던 중이었다. 담벼락 쇠창살 너머로 익숙한 여자아이의 얼굴과 아이를 둘러싼 남학생 무리가 보였다. 어두워서 침침한 눈에 힘을 줬더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여자아이는 902호에 사는 지우가 분명했다.
남학생 무리는 얼핏 보이는 겉모습이나 행동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늦은 시간임에도 큰소리로 웃거나 욕을 하며 자기들끼리 장난쳤고, 지우는 그 사이에 섞여 함께 웃고 있었다. 정호는 일전에 아파트 주변에서 저 아이들을 봤을 땐 동네 질 나쁜 청소년 무리겠거니 하면서 한심하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902호에서 벌어지는 가정폭력을 알고 나서는 남학생 무리에 껴있는 지우가 걱정되기 시작한 거였다.
정호가 902호의 일을 알게 된 건 같은 동 905호에 사는 경숙 때문이었다. 경숙이 워낙 수다스러운 성격이라 오가다 마주치면 꼭 짧은 담소라도 나누는 덕분에 정호는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 대부분을 경숙을 통해서 듣곤 했다. 이웃집 일에 사사건건 참견을 하는 경숙을 보며 오지랖이 참 넓은 아줌마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경숙이 어느 날 목소리를 낮추고 말하는 것이었다. 902호 아이들이 아빠한테 맞고 사는 것 같다고.
경숙이 복도를 지나가다 우연히 듣게 되었다는 소리는 902호 부부 중 남편이 아내와 자식에게 지르던 고함과 물건이 부서지고 매 맞는 소리, 잘못했다고 비는 아이들과 아내의 울음소리였다고 했다. 경숙은 처음엔 한 번뿐이겠거니, 하며 남의 집 사정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최근에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그런 소리가 들린다며 마음이 불편해 죽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겠냐고 경비실까지 내려와 정호에게 어떤지 의견을 묻기도 했다.
경숙의 이야기를 들은 정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불량해 보이는 남학생들과 어울리던 지우의 모습이었다. 택배 보관실에서 종종 마주치던 지우는 인사도 잘하고 밝은 아이였는데 언제부턴가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놀이터나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는 것을 보곤 했다. 그때마다 의아하게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런데 지우가 아빠로부터 가정폭력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집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납득이 된 것이다.
가정폭력으로 받은 상처 때문에 이제 중학교 1학년이라는 지우가 혹시 나쁜 길로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정호는 심히 걱정했다. 경숙의 말대로 902호를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싶었지만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기에 출동한 경찰이 별다른 조치 없이 떠날 것이 우려됐다. 때문에 확실한 증거도 없이 남의 가정을 무턱대고 신고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었다.
정호는 경비실 주변을 서성이며 지우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혹여나 늦게 들어갔다가 아빠한테 오늘도 아빠한테 혼나는 것은 아닌지, 내 손녀의 일이 아님에도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아이를 기다리는데 지우가 눈에 띈 시각은 11시가 다 되어갈 쯤이었다. 정호는 혼자 터덜터덜 걸어오는 지우의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안녕하세요."
경비실을 지나치다 정호와 마주친 지우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정호도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웃어줬다.
"일찍 다녀야지. 여자애 혼자서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해."
걱정되는 마음으로 한 말에 지우가 멋쩍게 웃었다. 얼른 들어가라며 손짓하자 지우가 한번 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정호는 멀어지는 아이가 101동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