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엄마와 선생님
한번 신경 쓰기 시작한 이후로 보람의 눈엔 달라진 건우의 모습이 자꾸만 보였다. 친구들과 놀 땐 개구쟁이처럼 잘 노는 것 같아 보이는데 수업시간엔 달랐다.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고, 수학 문제도 전에는 한번 가르쳐주면 척척 잘 풀던 아이가 간단한 문제에서도 헤매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무엇보다 수업 중에 혼자만 다른 생각에 잠겨있는 것처럼 눈빛이 흐릿한 건우를 발견할 때가 많아졌다.
건우가 걱정됐던 보람은 다른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 건우에게 요즘 가족이나 친구들과 별일이 없는지 슬쩍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그런 거 없어요.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는 아이에게 요새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야기하면 건우는 아니라면서 열심히 듣고 있다고 대답했다.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데 계속 꼬치꼬치 캐물으면 오히려 반감을 살까 봐 보람은 적당한 선에서 대화를 끝내곤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건우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2학기 상담 주간을 앞두고 건우의 부모님과 아이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보람은 건우 부모님이 상담 신청서에 희망하지 않는다고 체크해온 것을 보고 낙담했다. 1학기보다 2학기 상담 희망자가 적은 건 당연한 일이지만 달라진 아이에 대해 당사자에게도, 학부모에게도 들을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기만 했다. 하루는 일단 부딪쳐보자는 마음에 건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연결음만 길어질 뿐 끝내 전화연결은 되지 않았다.
"같은 반에 좋아하는 여자애라도 생긴 거 아니야?"
방과 후에 보람은 또래의 친한 선생님들과 커피 한잔을 마시며 건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동료 선생님들은 건우가 짝사랑을 시작해서 좋아하는 아이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차분해진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지만 보람은 다른 선생님들은 직접 보지 못해 느낄 수 없는 건우의 미묘한 변화가 사춘기나 짝사랑 때문은 아닐 거라고 추측했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일지도 몰랐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이나 학교 폭력 같은 아주 무거운 문제가.
"설마 건우가 집에서 학대당하는 건 아니겠죠...? 아니면 학폭이나..."
"뭐? 그런 거면 또 학년부장 선생님부터 보고 올리고 교무부장님 보고 올리고 교감선생님에 교장선생님에 구청에 교육청까지 보고만 몇 번을 올려야 하는데 어휴 생각만 해도 머리 아파."
"그러다 중간에서 기각이라도 당하면 일 벌어진 거 수습은 혼자 다해야 하는데 어떡할 거야. 그냥 아니다 생각하고 깊게 신경 쓰지 말아요. 우리만 해도 당장 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보람은 씁쓸하게 웃었다. 학교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져서 교사들은 한 해가 사건 사고 없이 그저 무탈하게 지나가길 희망했다.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개개인이 맡은 행정업무가 너무 많아서 교사들 사이에선 내가 교육자인지 행정 공무원인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자주 오갈 정도였다. 그러니 보람은 동료 선생님들의 조언이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이해해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대면 수업하니까 좀 살 것 같지 않아요? 나 진짜 작년에 너무 힘들었어. 딴짓하는 애들한테 제발 화면 보라고 잔소리하고, 아침마다 전화해서 애들 깨우고 난리도 아니었지. 근데도 애들 출석부는 빨간 줄로 도배돼있고."
"우리는 그냥 모닝콜 담당이었죠 뭐. 아니면 콜센터 직원이거나."
어느새 대화 주제가 바뀌어서 코로나가 대유행이었을 때 겪은 고충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대해서 보람 역시 할 말이 많았다. 하필이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한 직후에 교사로 임용되어서 지난 2년간은 교육이 먼저가 아닌 행정이 먼저인 교사로 일했다.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온라인 원격수업 시대가 열리면서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복잡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정부와 교육청 지침 때문에 교사들은 시도 때도 없이 콜센터 직원처럼 학부모의 민원 전화를 받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 시스템에 맞게 수업자료를 준비하고 수업 녹화와 영상 편집에 산더미 같은 행정업무까지 처리하느라 교사들은 주말에도 일하는 게 당연해지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나는 코로나 걸려서 아파 죽겠는데도 원격 수업했잖아. 대체교사 못 구해서."
"맞아요. 저도 그랬잖아요. 열나고 목소리도 안 나오는데 억지로 수업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일시적으로 완화되었을 땐 할 일이 두배로 많았었다. 교사들은 온라인 수업은 온라인 수업대로 준비해야 했고, 대면 수업은 대면 수업대로 준비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등교한 아이들의 체온을 수시로 체크해야 했고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 아이들에게 입이 마르도록 잔소리를 해야 했으며 점심시간엔 아이들이 떠들지 못하도록 단단히 단속해야 했다. 교실 방역도 온전히 담임교사의 몫이었다.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에 한번, 퇴근하기 전에 한번 교실 전체에 소독제를 뿌리고 닦아내느라 출퇴근 시간이 30분 당겨지고 늦어지는 날이 허다했다. 학생들에게 배부하라고 교육청에서 자가진단키트 대용량 제품이 들어오면 내용물을 품목별로 분리해 한 세트씩 수백 개가 넘는 세트를 만들어 포장하다가 늦게까지 야근하는 날도 잦았다.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로 교사들은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었으나 대체교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코로나에 걸렸어도 자가격리기간에 아픈 몸을 일으켜 온라인 수업을 강행하기까지 했다.
"근데 사람들은 교사들이 코로나 덕분에 다들 집에서 푹 쉰 줄 알더라? 애들이 학교 안 가고 놀았던 만큼 교사들도 놀았을 거 아니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진짜. 애들은 학교 안 나와도 선생님들은 맨날 출근에서 야근까지 했는데. 나는 5년 일하면서 작년, 재작년에 야근을 제일 많이 했어."
"진짜 작년, 재작년에 비하면 올해는 양반이다 양반. 학교에서 직접 수업하고 이젠 현장학습도 가고 얼마나 좋아. 그렇지 보람 쌤?"
"네! 너무 좋아요. 생각해보니까 저 이번 현장학습이 임용되고 처음 가는 거더라고요."
푸념은 끝도 없이 이어졌지만 마지막엔 이제야 진짜 교사가 된 것 같다며 다들 대면 수업의 기쁨을 공감했다. 이는 3년 차인 보람이 올해 들어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이었다. 북적북적한 교실에서 내 제자들과 눈빛을 주고받고 상호작용하며 수업한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구나. 온라인 수업할 때는 느끼기 힘들었던 이 뿌듯함을 5학년 2반 아이들을 통해 얻게 되었으니 그만큼 보람에겐 올해 맡은 반 아이들이 더욱 소중하고 애틋한 것이었다.
티타임이 끝난 후, 내일은 어떤 활동을 해야 아이들이 좋아할지 생각하며 수업 준비를 마친 보람은 퇴근하고 학교를 나섰다. 버스를 타기 위해 학교 앞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주변 곳곳에 명화초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이후로 하교 후에 삼삼오오 모여 노는 아이들을 많아지면서 볼 수 있게 된 퇴근길 풍경이었다. 한창 거리두기 단계가 강화되어 학교 주변에서 활기라는 걸 찾아볼 수 없었던 시기가 지금은 꿈만 같았다.
보람이 예전의 학교 주변 모습을 떠올리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맞은편 편의점 앞에 홀로 앉아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익숙한 차림새라 유심히 봤더니 분명 건우인 것 같았다. 어깨가 축 처진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건우는 신발 끝으로 땅을 툭툭 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본 적 없었던 건우의 어두운 분위기를 느낀 보람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아이에게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확신이 생기자마자 어두운 아이를 도저히 모르는 척할 수 없기에 보람은 건우가 있는 건너편을 향해 길을 건넜다.
"건우야!"
보람이 이름을 부르자 건우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보람을 쳐다봤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아이는 보람이 가까이 다가오자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왜 집에 안 가고 여기 있어? 누구 기다려?"
"아니요 그건 아닌데..."
건우는 말끝을 흐렸다. 보람이 이유를 다시 물어도 우물쭈물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역시나 말하기 힘든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게 확실했다. 지금이야말로 아이의 속마음을 들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듯했다. 보람은 다정히 웃으며 말했다.
"건우네 집 명랑 아파트인가?"
"네? 네."
"그럼 선생님이 데려다줄까? 선생님은 집에 가려면 명랑 아파트 지나가야 하거든."
뜻밖의 제안이었는지 건우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보람은 더욱 살갑게 굴며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건우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람은 건우와 명랑 아파트까지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다. 학교 다니는 건 재미있는지,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는지, 공부가 어렵지는 않은지, 부반장이라서 힘든 점은 없는지. 보람의 질문에 건우는 씩씩하게 대답하고 소리 내서 웃기도 했다. 밝아진 아이에게 보람은 건우가 부반장이어서 선생님은 정말 힘이 난다는 말로 분위기를 띄웠다. 쑥스러워하며 웃는 건우의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길을 걸은 지 15분쯤 됐을까. 건우의 감정에 대해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고 싶었던 보람은 예상보다 빨리 드러난 명랑 아파트 입구를 보고 초조했다. 이제야 건우가 속마음을 드러낼 것 같은 타이밍에 가까워졌는데 오늘도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집에 가면 부모님은 계셔?"
"아빠는 저녁에 오고... 엄마는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요."
"어머니가 많이 바쁘셔? 말씀드릴 게 있어서 얼마 전에 선생님이 건우 어머니한테 전화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
"엄마가 원래 모르는 전화번호는 잘 안 받아요."
"그렇구나."
두 사람이 함께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고, 101동 앞에 다다랐을 때 건우는 보람을 올려다봤다. 어디까지 데려다 줄 거냐고 묻는듯한 표정이었다. 보람은 건우를 따라 자연스레 101동 현관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건우야."
"네?"
"요새 건우가 축 처져있는 모습을 많이 봐서 선생님이 너무 걱정되는데, 혹시 왜 그런지 말해줄 수 있을까?"
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보람은 조심스레 물었다. 보람의 질문에 흠칫 놀란듯한 건우는 대답이 없었다. 보람을 쳐다보던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고 침묵만 이어졌다.
"무슨 일이든 선생님은 건우 편이야. 그러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면 안 될까?"
엘리베이터가 9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두 사람은 복도 한가운데에 잠시 멈춰 섰다.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대답을 망설이는 건우를 보람이 한번 더 회유했다. 말로 하기 어려우면 편지로 써서 줘도 괜찮고, 문자를 보내도 된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피던 아이는 보람을 쳐다봤다. 마스크로 가려진 입에서 금방이라도 어떤 대답이 나올 것 같았다. 갈등에 빠진 눈동자와의 눈 맞춤이 길어졌다.
"사실..."
"박건우?"
건우가 뭔가를 말하려던 그때였다. 코너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나오더니 건우를 부른 것이다. 화들짝 놀란 건우는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왜 하필이면 지금일까. 갑작스레 학부모를 마주쳐서 당황스러웠지만 보람은 침착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건우의 담임선생님이라며 살갑게 건넨 인사를 아이의 엄마가 떨떠름하게 웃으며 받아줬다.
"선생님께서 저희 집까진 어쩐 일로..."
"아, 퇴근길에 건우를 우연히 마주쳤거든요. 그래서 같이 왔어요 어머님."
"그러시구나... 감사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들어가자 건우야."
무언가에 쫓기듯 건우의 엄마는 아이의 등을 떠밀어 집에 얼른 들어가려 했다. 보람은 건우 엄마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며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냐고 다급히 여쭸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시간이 안된다며 죄송하단 말을 남기고 건우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보람은 쾅 닫힌 902호 현관문을 허망하게 바라봤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드디어 건우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결국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아이와의 대화가 중단된 것이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아이의 학부모도 얼떨결에 마주치게 되었는데 이렇다 할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속상함과 아쉬움에 자리를 쉽사리 떠나지 못하던 보람은 마음을 추스르고 걸음을 뗐다. 1층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저기요...!"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던 보람을 어떤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붙잡았다. 보람이 휙 뒤돌자 웬 아주머니 한분이 주위를 살피며 다가왔다. 저요? 어리둥절한 보람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조금 전에 밖이 시끄러워서 뭔가 하고 내다봤는데... 건우 담임 선생님이라면서요."
목소리를 낮춘 아주머니의 표정은 꽤 심각해 보였다. 누구길래 건우의 이름을 아는 걸까 하고 보람이 생각하고 있는 사이, 그녀는 건우 담임선생님이라면 꼭 말해야 할 것 같다며 자신의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사정했다. 처음 만난 사람이고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선뜻 대화하기가 꺼려졌던 보람은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꺼내놓은 서론을 듣고서 크게 놀랐다. 아무래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보람은 결국 그녀를 따라 905호 안으로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