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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수 Aug 22. 2023

애 하나 키우는데 드는 돈이 억 소리 나 ④

시작은 파산핑부터

어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파산핑'. 국산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의 캐릭터들을 어른들의 표현으로 변형한 것이다. 시즌 3을 기준으로 티니핑 캐릭터의 종류가 50가지가 넘는다. 조만간 시즌 4가 나온다고 했으니 캐릭터의 종류는 또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신기하게도, 어른들이 보기엔 색깔만 조금 다르고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캐릭터들을 어린아이들은 이름까지 정확하게 알고 구분한다. 내가 어린이집에서 근무할 때 티니핑 색칠하기를 하는 아이들에게 "이건 무슨 핑이야?"하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캐릭터의 이름을 망설임도 없이 정확하게 대답했다. 내가 만약 틀린 이름을 대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그게 아니라면서 강력하게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50가지가 넘는 캐릭터의 생김새와 이름을 모두 꿰뚫고 있을 만큼 캐치 티니핑의 캐릭터들은 뽀통령에 이어서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이 티니핑이 어쩌다 파산핑이 되었을까. 우선 아이들한테 인기가 많은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형태의 굿즈로 시중에 판매된다. 대표적으로 캐릭터들의 봉제인형이 있는데 이 캐치 티니핑 인형 한 개의 가격이 무려 2만 원 중반이나 한다. 그런데 캐릭터의 종류가 50가지가 넘으니 이 중 다섯 개만 사줘도 10만 원이 넘고 더 보태서 열개만 사줘도 2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봉제인형뿐인가. 각종 장난감, 학용품, 피규어까지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현혹시키는 굿즈들이 장난감 매장에 전시되어 부모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티니핑 캐릭터를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안 사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나둘 사주자니 그러다간 결국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해서 어른들은 우스갯소리로 티니핑에 파산핑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다.


요즘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식비와 생필품 구매비 이외에도 이런 아이들의 기호에 맞는 물건을 사주는데도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시작은 파산핑부터였지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들은 더 좋고 비싼 문물에 눈을 뜨면서 부모가 선뜻 사주기 힘들만한 물건을 사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초등학생 아이 둘의 엄마였던 나의 전 직장동료 J는 애플워치를 차고 있는 내게 물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가 애플워치를 사달라고 떼쓰는데 이걸 사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라고. 내가 차고 있던 애플워치의 가격은 35만 9천 원으로 직장인인 나조차도 수많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신중하게 구매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딸아이가 애플워치가 갖고 싶다고 난리라는데 너무 비싸서 사줄 수가 없다고 한숨을 쉬던 J는 삼성에서 나온 3만 원대 시계 갤럭시 핏을 손목에 차고 있었다.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면, 얼마 전 유튜브 슈카월드 채널에서 다룬 이야기이다. 요즘은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는 청소년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영상이었는데 나는 그 영상을 보고 무척이나 놀랐다. 지금 한국의 휴대폰 시장은 삼성의 갤럭시와 애플의 아이폰이 대부분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청소년들 사이에선 안드로이드 핸드폰을 사용하면 집이 가난해서 아이폰을 사지 못하는 거라는 말을 듣게 되고 아이폰을 사용하는 친구들의 채팅에 안드로이드 핸드폰을 쓰는 친구가 끼게 되면 그 뒤로 대화가 중단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안드로이드 핸드폰을 쓰는 친구가 아이폰을 쓰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된다는 거였다.


어른들 입장에선 그깟 핸드폰 종류가 뭐라고 친구들 사이에 소외감을 주고 소외감을 느낄 수 있냐고 하겠지만, 친구들과의 일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할 시기인 청소년기에 유행하는 물건을 나만 가지지 못한다면 정서적으로 큰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나도 청소년기에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내가 청소년일 때와 지금 청소년인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물건의 값이 천지차이라는 점이다. 캐치 티니핑은 양반이었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선 닌텐도, 아이폰, 애플워치, 아이패드는 물론이고 유명 아이돌이 명품 브랜드 앰버서더를 맡게 되면서 아이돌이 착용한 명품 옷이나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내가 청소년기일 때 부모님 등골을 휘게 했던 최고가 물품은 인터넷 강의를 듣기 위한 기계인 전자사전, PMP나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패딩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청소년들이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의 가격은 최소 30만 원부터 최고 200만 원 그 이상까지 무척이나 광범위하다. 웬만큼 중산층 가정이라도 선뜻 사주기 어려울만한 물건들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 중이라는 말이다.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본인들이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을 사려면 얼마나 많은 노동을 해야 하는지 가늠하지 못한다. 그러니 부모님께 무턱대고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와 값이 비싼 물건이라 사줄 수 없다고 말하는 부모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선 값이 너무 비싸 사줄 수 없는데 나만 없다며 떼쓰는 자녀를 볼 때면 마음이 편치 않으니 무리를 해서라도 원하는 물건을 사줄 수밖에 없다.


청소년기만 지나면 끝인가? 아니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선 아이패드가 필수품이라고 한다. 전공책을 스캔해서 파일로 만들어 넣으면 무거운 전공책을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아이패드 하나만 들고 수업에 들어가도 된다. 노트와 필기도구를 챙길 필요도 없다. 아이패드에 노트 어플을 깔면 패드와 한 세트인 펜슬로 필기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생 때만 해도 전공책이나 프린트물을 챙겨 다니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전공책을 들고 다니는 대학생이 거의 없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가장 저렴한 모델로 펜슬까지 구매했을 때 100만 원 남짓한 전자기기를 웬만한 대학생이 소유하고 있다니. 만약 내가 대학생일 때 아이패드가 유행했다면 나는 청소년기에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을 성인이 되어서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무궁무진한 유행 아이템이 등장할지 모르겠지만 자녀가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시기가 되기 전까지는 유행 아이템의 값을 부모가 지불해야 한다. 비싸다는 이유로 무조건 안 사주기엔 자녀가 친구들 사이에서 느낄 소외감과 박탈감을 생각하면 그러기도 쉽지 않다. 이번 파트의 요지는 아이를 키우는 데엔 의식주에 필요한 비용만 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정서를 고려한 물건을 사주는 데에도 큰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자라나는 자녀의 정서를 책임지는 것도 부모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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