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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우 Feb 06. 2022

다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프롤로그. 첫인사

오랫동안 쓰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글을 써서 먹고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일인 것만 같았습니다.      


전자공학과를 나왔고, 그래서 첫 직업은 다국적 기업(그냥 미국 회사의 한국지사인데... 그때는 왜인지 그렇게 불렀습니다) H사의 엔지니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좋은 직장이었습니다만 3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짧게나마 매우 친하게 지냈던 입사 동기에게 남긴 말이 아직 생생합니다.

“나 이제 글 써서 먹고살 거야.”     


돌이켜보면, 그러고 나서 막상 아무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백수 생활 몇 달에 곧 굶어 죽을 것 같아 입사지원서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타깃은, 한번 맛을 본 지라,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주 5일 근무하는 외국계 기업들이었습니다. 엔지니어는 적성에 안 맞으니, 이번에는 그 분야에서 특히 명성이 있다는 P사에 마케터로 지원했습니다. 아무튼 서류 전형과 1차 필기 통과하고 면접만 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향후 제 인생을 뒤흔들게 될 우연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어느 늦은 아침, 신문 하단 여성지 광고에서 <경력 및 신입기자 모집>이라는 아주 작은 구인 소식을 보게 된 것입니다. 잡지 기자, 특히 여성지 기자는 지나치게 다양했던 희망직업 목록에도 아예 없던 직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스친 당시 생각은 이랬습니다. “어쨌든 글 쓰는 일이잖아. 재미있겠는데?”


운명이었는지, 굴지의 글로벌 기업 P사의 최종 면접일과 저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여성 잡지의 1차 면접일이 하필 같은 날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눈곱만큼의 고민도 없이, ‘글을 써서 먹고살기 위해’ 잡지사가 있던 여의도로 향했습니다.      


그 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최후의 1인'으로 남았습니다. 그 회사는 한국 잡지 역사상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잡지 아카데미’라고 불리던 H사였고, J잡지 역시 당대의 문인들이 선배 기자로 거쳐 갔던 엄청난 곳이라는 사실을 저는 ‘입사 이후에야’ 알게 됐습니다. 아무튼 H사 50여 년 역사 최초로 전자공학과 나온 전직 엔지니어 출신 기자가 탄생했고, 2년여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생의 많은 ‘할’을 그곳에서 배웠습니다.      


그로부터 참 다양하게 살았습니다. 출판사 의뢰로 어린 나이에 단행본도 출간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전문 분야 잡지의 편집장까지 경험했습니다. 몇몇 공연을 제작했고 대형 패션쇼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사업자니 법인사업자니 회사도 여러 차례 창업했다 망했다 했습니다. 여기저기 들락거린 회사도 열 곳이 넘네요. 어쩌다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되어 투자업무도 했고, 현재의 ‘본캐’는 '영화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 들어 이상하게 심심합니다. 가끔씩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엄습합니다. 가슴 설레는 일이 점점 없어집니다. 나이 들면 원래 이런 것일까요? 이 나이는 처음 되어보니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많은 시절을 시대의 선봉에 서서, 뭔가를 주도하고 설파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백건대, 사실 저는 ‘트렌드’에 느린 사람입니다. 그냥 눈치껏 빠른 척하며 가식떨며 살았던 것이 지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브런치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불과 며칠 전의 일입니다.     


오랫동안 쓰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유는 많았습니다. 후일로 미루기도 했고, 자신감도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몸이 더 건강해지면 써야지. 경험과 지식이 더 쌓이면 써야지. 이번 영화가 흥행하고 나면 써야지. 돈을 더 벌고 여유가 생기면 다시 써야지. 그런데 모두 핑계였습니다. 더 나이가 들면 몸은 당연히 약해질 것이고, 나이가 든다고 경험과 지식이 그냥 쌓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직업과 직장을 전전하며, 참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지금은 주로 ‘영화사 대표’, ‘영화제작자’, ‘프로듀서’로 지칭됩니다. 그런데 아주 오랫동안 거의 쓰지도 않은 주제에, 스스로 생각하는 저의 정체성은 항상 ‘글쟁이’였습니다. 왜인지는, 진짜 잘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됐고, 일단 써보기로 했습니다. 뭐든, 무작정, 다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말입니다. 그로부터 가슴이 다시 설레기 시작합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주신 브런치팀 분들과 먼저 오신 이곳 작가님들께 감사의 첫인사를 올립니다.

“안녕하십니까. ‘글 쓰는 사람’ 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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