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이복희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올 때마다
방향을 잃는다
불빛 넘실대는 거리를 등지고
건물 그림자가
아스팔트 바닥에 얼룩지듯
나는 컴컴한 골목을 습관처럼 찾는다
신호대기 중인 차들
눈 부릅뜨고 일제히 출발 신호 쪽으로
한 뼘 두 뼘 타이어를 재촉하는데
나는 너에게로 가는 길목에서 등을 돌린다
너와 내가 스쳐 갈
환승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로수 잎사귀 사방으로 흩어지는 난독증을 앓는다
직진밖에 모르는 네 앞에서
후진하는 법부터 배운 나
어쩌면
이번 생의 마지막 환승구간
너를 향한 발끝이 정지선에 멈춰 있다
너무 밝은 불빛에 눈앞이 캄캄해지듯
환승하는 밤엔 무언가 자꾸 자란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지하로
아무 일도 아닌 듯, 아무것도 아닌 듯
자꾸만 사라지는 얼굴이 있다
[백조]2025, 하반기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