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콧대 없어!
문득 남편이 식탁에서 밥을 먹다 아들을 보며 말했다.
“이야, 벌써 콧대가 있네. 나는 어릴 때 없었어.”
그러자 샐쭉해진 표정의 아들이 하는 말.
“나 콧대 없어!!”
“아냐, 여기 있잖아.” 하니까 또 하는 말.
“아니야, 콧대 없다니까?”
알고 보니 아이는 코에 묻은 더러운 때로, 코 때를 생각했다는 것.
푸하하, 내 코에는 때가 없다고 삐지는 귀여운 꼬마라니!!
아이랑 있다 보면 아주 말이 유창하고 못하는 소리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아직 말을 배우는 중이라 참 재미있는 말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또 내가 아는 만큼의 언어로 어른의 상황을 이해하니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아이의 시선.
많은 무의식의 오해가 거기서 출발한다.
어른들은 상황을 종합해서 사람의 행동과 그 이면의 감정까지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단편적으로 그 상황 자체만 받아들이기도 하고
자신이 느낀 감정 그 자체만 진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리고 나중에 훌쩍 자라 어른이 된 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은 채
부모에 대한, 가족에 대한, 세상에 대한 나도 모르는 무의식 속
생각의 습관 같은 지침서를 가지기도 한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이렇게 하면 반응을 어떻게 할 것이라는 예측부터
세상이 나에게 어떤 곳인지까지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린 지도를 만들어왔고,
어른이 된 뒤에도 처음 만들었던 그 지도를 수정하며 살아오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지도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우리 지도가 남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도 잘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 지도의 기본 바탕이 남들과 다르다고 깨닫는 사람이 많지도 않거니와,
바꾸고 싶다고 해도 깨부수기가 쉽지가 않다.
어느 겨울날,
남편이 해외출장으로 자리를 오래 비워
나는 혼자 많은 것을 해내느라 지쳐갈 때쯤
어느 날은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무척 불렀더랬다.
산책이 간절했던 나는 집에서 걸어서 5~10분이면
가는 마트를 가자고 다섯 살 아들을 꼬셨다.
거기 있는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엄마 두부도 하나 사고 오자고.
안 가겠다고 하던 아이는 겨우 설득되어,
걷기 싫다며 유모차까지 타고 가서 신나게 비행기를 탔다. 그러고 나서하는 말.
“나 이제 장 보러는 안 가고 싶어. 집에 갈래.”
그 말을 듣자마자 진짜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냐며, 엄마의 입장을 아냐고!’
다다다 감정을 쏟아내고 두부를 사서 씩씩대며
집으로 온 나는 눈물을 와다다 쏟고 말았다.
엉엉 아이처럼 한참 울고 나서, 그리고 난 깨달았다.
나는 그 순간, 여덟 살 아이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늘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억누른 채로,
세 살 어린 남동생에게 양보해야 했던 내가 갑자기 불쑥 튀어 오른 것이다.
내 아이는 그 나이 때쯤 내 남동생이었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늘 접어두어야 했던 서러운 아이였다.
그 생각이 들자 정신이 들었고,
눈치 보며 혼자 그림을 그리던 아이를 불러다가
‘엄마가 오늘 힘든 일이 있어서 울었다고,
너 때문이 아니라며, 화내서 미안하다’고 안아주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란 얼마나 용서받기 쉬운 존재인지.
아이는 자기가 부모처럼 눈물을 닦아주고
“엄마가 우는 걸 처음 보았다”라고 말했다.
(아닐 텐데… 너는 아마 기억이 안 나는 것뿐일걸)
아름다운 마무리로 사태가 금방 진정되는 것 같았던
그날의 일은 아들의 복기로 몇 달 동안 불쑥불쑥 떠올랐다.
저녁 먹다가 불쑥, 옷 입다가 불쑥.
“근데 엄마도 울었잖아. 나는 어른도 우는지 몰랐어.”
이 일이 겨우 세 돌이 좀 지난 아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어떤 지도를 그리게 될지 겁이 났다.
엄마가 독박육아 하느라 심신이 지쳤고,
어린 시절에 억압이 많아서 너에게 남동생을 투사했고…
이런 이야기를 그 아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이는 그저 가기 싫은 마트에 억지로 갔고,
타고 싶던 거 탔고, 집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가 엉엉 울었을 뿐인 일인데!
나는 필사적으로 다른 지도로 덮어주려고 애썼다.
“엄마가 그날 직장에서 너무 힘든 일이 있어서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눈물이 났어.
어른도 울 수 있지만, 엄마는 너 때문에 운 게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것만 이야기해서 속상하긴 했지만,
너 때문에 운 게 아니라 몸이 힘들었어.”
이 이야기를 체감상 열 번 정도는 한 것 같았을 때,
아이는 더 이상 그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이의 무의식은 언제, 어떻게, 무엇이 콕 박힐지 모르는 일이라
내가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는 없겠지만,
나로서는 마무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그 후의 일은 아이에게 달린 일일 것이다.
혹시 아이에게 유달리 화나는 포인트가 있다면,
내 무의식을 살짝 들여다볼 필요도,
내 내면 속의 아이를 만나 볼 필요도 가끔은 있다.
그걸 인지만 하더라도 상처가 씻은 듯 낫지는 않아도,
내 아이와는 분리해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 아이는 내 인생의 지도를 새롭게 만들도록 도와주러 온 스승 같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내 내면아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숙제 같은 일들까지.
아이는 아직 지도를 그리는 중이다.
그 지도가 조금 덜 험하고, 덜 복잡하게 그려지길 바란다.
아이답게 단순하게.
무언가 어려운 일을 어린 마음으로 억지로 이해해 내기 위해
많이 꼬이고 꼬인 꼬불꼬불한 지도가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내 안의 오래된 지도를 들여다보며
조금씩 다른 길을, 아이와 함께 걸어가기로 한다.
진짜 내 아이의 눈을 바라보려 한다.
그 속엔 내가 아닌,
그 아이만의 세상이 펼쳐져 있으니까.
육아는 어쩌면,
서로의 지도를 천천히 그려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기 전엔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과거의 학자들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지금까지(아직까지는)
내게 가장 깊은 것을 가르쳐준 것은
바로 이 작은 아이를 사랑으로 기르는 일, 육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