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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교리장 Dec 22. 2022

게으름이 '악' 이라고?

필자가 대학에 강의차 갔던 날,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졸음과 지겨움에 고통받고 있었다.

나 또한 그때가 기억 안 날리 없으나, 그 때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것은 더 잘 알고 있으니.


'여러분, 게으름과 '악'은 동의어입니다.'


이 말에 많은 학생들이 괴성과 신음을 질러대며 항의를 표현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말고사 분량의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다. 전국 대표 똘똘이 들이 모여 학기 마다 하위 10%씩을 유급시키는 무서운 곳.

그곳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게으르다고 했으니 화가 날 만도 하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게으름과 '악'은 동의어가 맞다.

다만, 여기서 게으름은 친구들과 불금을 누리고 늦잠을 자고  깨었을때의 상쾌함.

시험 끝나고 아랫목에서 늦잠을 잔 뒤 따뜻함을 모세혈관으로 누리는 행복감.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악한 게으름은 '변화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을 말한다.


가만히 있는 것은 썩거나 고장난다. 이 법칙은 거의 만물에 적용된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우리는 같은 자세로 1분도 버티기 힘들다. 집을 일주일만 가만히 두면 썩은 내가 진동하고 새로운 생태계 (곤충계, 박테리아계)가 탄생한다. 이 법칙은 인간이 모인 사회나 각 개인의 성격에도 정확히 적용된다.




옛날 이야기를 하나 시작하겠다.


5개의 가족이 모인 부족마을이 있다. 이 부족에는 힘이 가장 센 추장 P (power)가 있다.


추장은 사냥을 잘 해 한 번 다녀오면 사슴 한 두마리, 토끼 다섯 마리는 거뜬하다. 다른 남성들은 토끼 두세 마리가 고작이다. 추장네 가족들은 모두 잘 먹어서 아들들도 힘이 세다. 다른 가족들은 토끼 두세 마리로는 어른 한 두명 배를 채우기도 빠듯하다. 아이들은 왜소하고 노인들은 죽어간다.


추장은 어느 날 변화의 도전을 받는다. 이는 다른 가족들의 간절한 부탁일 수 있고, 얼굴이 노랗게 뜬 아이들과 노인들의 모습을 본 제 양심의 소리일 수도 있다.


이 때 그는 변화를 선택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변화를 선택하여 음식을 나눌 경우 (시나리오 A), 다른 가족들은 추장에게 충성하고 군대를 이루어 효율적인 사냥을 할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더욱 장성하여 이들은 커다란 부락으로 발전할 것이다.


다른 시나리오에서는, 추장 P는 자기 가족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딱히 예쁠 것도 없는 다른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모두 귀찮았다. 그래서 그냥 하던 대로 했다 (시나리오 B). 다른 가족들은 어느 날 밤 P의 집을 습격하여 모든 식량을 빼앗아 도망갔다. 추장과 아들들은 몽둥이 찜질을 당해 한 동안 앓아누워야 했다.



원시공산제를 시작한 시나리오 A를 다시 살펴보자.


마을은 더욱 커져 50개의 가족이 모인 부락이 되었다. 이들은 선조의 지혜를 따라 모든 사냥 및 채집품을 균등하게 나누었다. 이제 부족국가의 새로운 추장은 물자 관리에 능하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C (clever)이다.

추장 P의 손자인 M (mighty)는 체격이 크고 사냥에 능하다. 그가 곰이나 멧돼지를 잡아올 때면 마을은 축제가 벌어진다. 그런데 사투를 벌여 거대한 멧돼지를 잡아온 날에도 그와 그의 가족들은 몇 점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M은 자기 아들보다 C의 아들이 더 덩치가 좋은 것을 보고 마침내 화가 한계에 이르렀다. M은 C에게 자기가 잡아온 사냥물은 자기 가족이 소유하겠다고 주장하였다.


이제 C는 변화의 도전을 받는다. 변화를 선택하여 C는 마을사람들과 회의를 한다. 비교적 사냥이나 채집을 잘하는 이들이 M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사냥이나 채집을 잘 못하는 가족들은 굶어야 할 것이고 이들은 도둑이 될 것이 뻔했다. 그러므로 C는 식량의 절반을 사냥이나 채집한 가족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절반을 거두어 가장 식량이 부족한 가족에게 나누었다. 또 이웃 마을에서 간혹 밤중에 쳐들어와 창고를 털어가는 일이 있었으므로, 야간 경비를 서는 가족에게 약간의 음식을 더 나누어주었다.


이제 부락은 두 번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원시자유주의에서 원시공산제를 거쳐, 약간의 복지와 군사업무를 갖춘 초기 정부체제로 바뀌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굶는 자는 줄어들었고 부락의 인구는 계속 늘어났다.


C가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는 음식품을 모으고 나누는 일에 아주 능했다. 게다가 나누어 주는 과정에 약간씩 남는 자투리 고기로 국을 끓여 아이들을 먹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굳이 사람들을 모아 회의하면서 M의 눈치를 보며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이 귀찮았다. 그래서 그냥 하던 대로 했다.

그러자 M은 자기와 의견이 맞는 사람들과 이웃마을로 떠나버렸다. 유력자들이 떠난 C의 마을은 식료품 부족으로 기아에 허덕이고 결국은 이웃마을의 노예가 되는 처지가 되었다.




이 이야기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세 인물은 각각 다른 상황 에서 변화하여 선을 실천하고, 게으름으로 악한 결과를 가져왔다. 각 상황에 해당하는 인물이나, 본인의 과거 상황과 맞는 비유가 있는지 떠올려보자.


이처럼 인간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발전해왔다. 발전을 거부하거나 변화를 귀찮아한 (게을리한) 집단은 도태되거나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를 가진 사회는 점진적인 변화가 어려우므로 파괴 후 재탄생의 과정을 거친다.


개인의 인품 또한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발전한다. 우리는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많은 경험과 선택을 토대로 삶의 지도를 획득한다. 모든 지도는 경험과 필요에 의해 획득되므로 유용하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지도는 썩어 해롭게 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면 나를 미워할 것이다' 라는 것과 같은 지도는 해로울 수 있다. 어렸을 때는 말을 잘 듣는다고 어른들에게 칭찬 제법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서도 이 지도에만 의지한다면 싫은 일 잔뜩 떠맡고 술과 같은 회피기제에 빠져있거나,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우울감이 심해져 폐쇄적인 삶을 살고 있게 될 것이다. 창의력을 제한시켜 업무 성과가 어느 정도 이상 오르지 못하며, 리더로 발돋움 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


('후회하지 않는 결정'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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