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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Dec 31. 2020

2020년을 보내며

단순한 삶을 실천한 한 해

         

 아침에 일어났더니 그가 따라 나오며 한 마디 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올해의 마지막 날이나 새 해 첫날이나 다를 바 없지만, 마지막이라고 말하니 ‘마지막’이란 의미가 더 다가온다.


모두에게 2020년은 그랬겠지만 상상하지 못한 한 해였다. 절대로 갈 것 같지 않은 시간들이 그래도 꾸역꾸역 흘렀다. 질긴 세월 속에 사건들도 많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로 한 덩어리가 되었다. 이렇게 긴밀하게 엮여 있다는 것을 전염병을 겪으며,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먼 나라도 바로 우리 이웃처럼 가까이 느껴졌다.


 우리는 사상 초유의 고립을 경험해야 했다. 모든 일상이 통제되었고, 사람들을 마음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언제나 입은 봉쇄하고 타인이 가까이 오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우리는 어디론가 낯선 나라로 가서 낯선 공기를 마시며 생의 다른 날들을 살고 있던 시간을 접어야 했다. 


완전히 집콕으로 잠기게 되자, 처음의 몇 달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답답하고 우울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몸은 상황에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나만 겪는 상황이 아니었다. 견뎌보니 해낼 만했다. 모든 것은 몸이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시간은 예전보다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고 공평하게 흘러갔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시간을 누렸던 과거와는 달리 전염병은 모두에게 같은 힘으로 다가왔다.


 아침에 일어나 두 시간 글을 쓰고, 식구들 밥을 해 주고, 신문을 보고 책을 읽고, 오후에 산책을 했다. 일어나면 자연스레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썼다. 어느 날은 쓸 것이 넘치고, 어떤 날은 쓸 것이 없어 깜박이는 커서만 쳐다보기도 했다. 신문 기사에서 찾기도 하고 책을 읽고 쓰기도 했다. 일정량을 채우기 위해 쥐어짜 내는 날도 많았다. 매일 그렇게 쓰다 보니 어떤 날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자연은 제자리에서 이리 맑은데

 

 2018년 학교를 그만두고 정신없이 미친 듯이 다른 나라를 돌아다녔고, 그 이듬해 2019년 1월부터 매일 한 장씩 쓰기로 작정했다. 한 해를 그렇게 쓰고 나니 글 쓰는 힘이 조금 생겼다. 올해는 한 주제로 1000 단어를 쓰리라 마음먹었다. 스티븐 킹이 하루에 이천 단어를 쓴다는 말을 읽고서부터 생긴 목표였다. 매일 천 단어 쓰기, 매일 6킬로 걷기. 대충 만보. 매일 읽기. 그것들을 실천하기 위해 나의 삶은 아주 단순하게 돌아갔다.


 단순하게 살기는 내 첫 수필집 머리말에 쓴 말이기도 하다. 여행할 때는 호텔에서도 쓰고 달리는 차에서도 기차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썼다. 걷다가 낯선 나라 골목 카페에서 쓰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참 행복했다. 누가 읽을 것도 아니고 어디에 내놓을 만한 글도 아니지만 나는 그저 쓰는 일이 좋았다.


 쓴다는 것은, 언젠가 누가 읽어주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일이겠지만 당장 어떤 일을 글로 쓰는 일은 나를 살아있게 했다. 충만하게 했다. 여행하고 돌아다닐 때는 쓸 것들이 넘쳐났다. 시간이 부족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잠긴 세월이 이어지다 보니 활자화된 것을 많이 읽게 되었다. 집에 있는 책들을 읽고 한 달에 적어도 여덟 권 이상 새 책을 사 날랐다. 누군가 좋다고 추천한 책은 읽고 싶어 못 견뎠다. 그렇게 사고 다 읽은 책도 있지만 아직까지 못 읽은 책도 있다.


 언젠가는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서문만 읽어도 책 값어치를 한 것이라고 하니 조바심은 없다. 나를 위해 그 정도 사치는 누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읽고 싶은 책을 '원 없이 다'는 아니지만, 읽고 싶은 마음을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고귀한 영혼과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것과 같다.”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이 쓴 <아미엘의 일기>에 나온 글. 그런 생각으로 읽었다.

나날이 쓰고 읽은 글이 늘어나면서 내 안의 사유나 성찰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신문의 깨알도 다 읽으면 햇살이 눈부신 따스한 시간이 다가온다. 산책을 나간다. 남편과 갈 때도 있고, 주말이면 앤젤과 갈 때도 있지만 혼자 갈 때가 많다. 혼자 걷는 일은 정말 좋다.  내가 늘 가는 오솔길이 생겼다. 그 길에 들어서면 나는 어린 시절 우리 집 동쪽의 오솔길로 들어서는 기쁨을 누렸다.

 

조지아, 카즈베기. 다행히도 올해 이런 하늘이 많았다.


 자연이 변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잘 알아차리지 못하던 주변의 작은 것들이 다가왔다. 누가 먼저 피고 지는지 눈여겨보게 되었다. 개나리가 지면서 철쭉이 피고 목련이 지면서 수수꽃다리가 피고....


 반짝이는 햇살을 보면 살 것 같았다. 새소리를 들으며 생의 기쁨을 누렸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하면서 나는 칸트가 되어가는 기쁨. 걸을 때 나도 모르게 노래가 나왔다.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시원한 공기는 내 몸을 깨끗하게 씻어 내렸다.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작은 것에 시선을 두고 깊이 생각하려고 했다.


 산책하면서 나는 깊어지려 했다. 글을 붙들고 있으면 그 말이 그 말이고 내가 생각한 영역을 빙빙 돌뿐이겠지만, 산책으로 신선한 공기를 폐에 담고 오면 달라졌다. 새소리를 듣고 흰구름을 보고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보고 바람에 일렁이는 물살을 보면서 마음을 비웠다.


  그렇게 내 안으로 여행을 많이 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오래도록 평화롭게 내 안을 탐험한 적이 없다. 늘 바쁜 생활이 나를 집어삼켰고, 해야 할 것들에 휘둘려 늘 스치는 생활을 했다. 깊이 들여다볼 여유도 없었고 깊이 들여다볼 시선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강제적으로 내 삶이 통제되고 삶이 단순해지며 조용해지자 내 안을 들여다 보고 일상을 세심하게 보는 시선이 조금씩 생겨났다. 작은 것들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위대한 것은 일상 속에 있다.”


<조개 줍는 아이들>을 쓴 로자문드 필쳐의 말을 느껴 보는 날들이었다.


<포와시 거리>, 모리스 위트릴로



 

 한 해가 다 갔다.

 늘 해를 보낼 때마다 후회가 앞서곤 했다. 잔뜩 계획을 세우고 결심했던 일들이 한 해 말미에 가서는 잔뜩 후회만 쌓이던 날들이었다. 올해도 여전히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후회하지 않으련다.

올해 내가 결심한 '읽고, 쓰고, 걷고'를 잘 실천한 한 해로 여기기로 했다.


돌아보니 정말 단순한 한 해였다.

쓰고, 읽고, 걷고 그것에 몰입한 한 해. 어디를 가더라도 거의 매일 산책하고, 매일 글을 썼다. 노트북을 보니 올해만 373개의 글이 저장되어 있다. 뿌듯하다. 올해를 잘 보낸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문득 이 시가

와 닿는다!!!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올바른 행동에 충분히 고심한 후에

결론에 이르렀을까?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

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나는 그런 말을 해, 아니 어쩌면

그냥 생각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사실 난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러곤 정원으로 걸어 들어가지.

단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정원사가

그의 자식들인 장미를 돌보고 있는.


                 —   <정원사>, 메리 올리버





새해에는 모두에게 힘나는 일만 생기면 좋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추위 속에도 민들레가 피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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