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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May 21. 2021

이해의 선물

'2센트의 마음'을 가진 어른이 많아졌으면

          

 아이들이 새 교과서를 받아오는 날에는 내가 먼저 교과서를 읽었다. 중,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읽을거리가 많았다. 학창 시절 읽었던 교과서의 글과 아이들의 교과서 글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받아온 국어 교과서에 폴 빌리어드의 「이해의 선물」이 실려 있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고, 폴 빌리어드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 책을 샀다. 전화교환원 이야기인 <안내를 부탁합니다>도 감동적이었다. 그가 나중에 교환원을 만나 나눈 이야기는 더욱 가슴에 남았다. 그가 생물학자였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원제는  「Growing Pains」인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 관한 추억이다.”


내 어린 시절에 행복했던 기억이 뭘까. 그때 문득 아버지가 교과서를 싸 주면 나는 그 옆에서 몰입하여 책을 읽던 순간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새 학기가 되어 새 책을 받아오면 아버지가 교과서를 싸 주셨다. 교과서마저 후배들에게 물려주며 써야 했던 팍팍한 시절, 깨끗이 쓰기 위해 표지를 종이로 싸야 했다. 커다란 숫자가 쓰인 달력을 소중하게 보관했다가 교과서에 맞게 종이를 오렸다. 남은 종이도 귀퉁이를 반듯하게 잘라 메모지로 만들어 서랍에 넣었다가 무엇인가를 쓰셨다. 종이가 그렇게 귀하던 시절이었다.


하얗게 싼 교과서 표지에 ‘국어 2학년 1학기 덕수국민학교 2학년’이라고 붓글씨체로 고아하게 써 주시면, 아래 이름은 내가 썼다. 아버지 글씨로 이름을 얻은 교과서를 왼쪽에 벽돌처럼 쌓아놓고 한 권씩 조심스레 펼쳐 읽었다. 그림도 찬찬히 보았다. 교과서의 글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읽은 책은 오른쪽으로 다시 쌓아 놓았다. 왼쪽의 책들이 오른쪽에 다 넘어가 쌓아지면 다시 책을 읽고 왼쪽으로 옮겼다. 그 시절 교과서는 최고의 읽을거리였다.

 

 고된 농사일로 뭉툭해지고 거칠어진 손으로 교과서 귀퉁이를 접어 눌러 반듯한 선이 남게 싸는 모습. 성스러운 물건을 다루듯 딸이 공부할 교과서를 싸는 아버지. 방바닥에 엎드려 교과서에 정성을 다해 글씨를 쓰고, 나는 다리를 뻗고 앉아 글을 읽는 그 그림이 행복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교과서를 싸면서 책을 소중히 하라는 말씀, 그 말은 오래 내 마음에 남아 아직도 나는 책을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그것은 아버지가 사랑을 담아 주신 선물이었다.




 


 「이해의 선물」 은 어항 속 금붕어들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다. 먹이를 주면 몰려들었다 흩어지기도 하고, 가만히 있다가 꼬리를 휙 돌리며 유영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알록달록 금붕어들이 담긴 비닐봉지를 꼭 쥐고 환하게 웃고 서 있는 이야기 속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어린 폴은 엄마가 물건을 살 때마다 무엇인가를 내미는 것을 보고, 혼자 사탕 가게에 가서 사탕을 고른다. 사탕가게 묘사가 인상적이다.


종이 울리는 사탕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앞줄에는 갖가지 향의 박하사탕이 있었고, 깨물면 부서지면서 입 안이 상큼해지는 드롭스가 있고, 다음 칸에는 작은 초콜릿 캔디 바가 있었고, 그 상자 뒤에는 입에 넣으면 툭 불거져 나올 만큼 큰 눈깔사탕이 있었다. 녹이지 않고 그냥 입에 넣고 있으면 오후가 즐거웠다.


위그든 씨는 사탕 값으로 내민 아이의 손에 쥐어진 버찌 씨 여섯 알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사탕과 거스름돈 2센트를 아이에게 내어준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열대어 가게를 운영했고 어느 날 가게에 와서 이것저것 고르는 오누이를 보고, 알록달록 사탕에 넋을 빼앗기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위그든 씨를 떠올리게 된다.


“모자라나요?”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 비로소 폴은 진짜 위그든 씨가 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아직 어려서 잘 모르면서 갖는 확신에 찬 아이의 목소리에 어떤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때 다른 곳에서 이와 똑같은 장면을 본 것 같은 약간 섬뜩한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갖고 싶은 물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순간 다시 아주 강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 친근한 느낌은 사탕가게에서 맡았던 향기 그 향기가 향수가 되어 내 콧잔등을 스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아주 오래전 위그든 씨가 내게 해주었던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내가 위그든 씨에게 던졌던 도전이 무엇이었고, 그것을 그분이 얼마나 지혜롭게 받아들였는지 깨달았다. 나는 다시 한번 위그든 씨가 바라보던 눈빛을 의식하며 작은 사탕가게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주고 간 동전이 자신이 어렸을 때 내밀었던 체리 씨로 보였다. 두 아이의 순진한 마음을 지켜준 힘은 위그든 씨에게 이어받은 선물이었다.

  



은박지로 싼 체리씨앗을 가지고 간 아이

“모자라나요?”

“아니다, 돈이 조금 남는구나. 거스름돈을 내주마.”

손바닥에 2센트를 넘겨준 위그든 씨의 마음.



 체리씨앗을 물건과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진 어린이는 이 세상에 많고 많다. 하지만 그 마음을 고이 지켜 줄 수 있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


 ‘버찌 씨를 가져간 마음’을 온전히 지켜 줄 수 있는 위그든 씨 같은 어른들이 많아지길.


 폴이 위그든 씨의 선물을 또 다른 '버찌 씨 아이'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2센트의 마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이해의 선물’이 되어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환기 <론도>. 1938년, 캔버스에 유채, 61x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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