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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Dec 30. 2021

2021년을 보내며

올해는 이렇게 보냈어요

          

2021년이 하루 남았다.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오늘인 별로 다를 것도 없는 날들이지만 왠지 해가 바뀌는 날은 의미심장하다. 한 해를 돌아봐야 하는 숙제 같은 기분. 그래야 내년을 또  잘 보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신문에 실린 최인철의 <마음 읽기>에 나오는 글을 따라 나도 써 보았다. 뭔가 하나를 고르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올해의 공간      


해돋이를 보았던 잠실대교 위 조망대다.

 그곳에 서서 늘 해돋이를 봤다. 어디서든 해돋이는 위대하다. 해돋이를 보는 순간 영원한 삶이 이어지리라 생각하곤 한다는 말을 비밀의 화원에서 읽은 적이 있다. 새로운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어제까지 구질구질하던 일도 모두 새로 태어날 것만 같았다.


우리는 해돋이를 보면서 운동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강물에  퍼져 오르는 햇살을 맞았다. 그는 그렇게 떠오르는 해를 가슴에 담기라도 할 것처럼 두 팔을 벌리고 해를 안곤 했다. 이윽고 해가 강물 위로 떠올라 수면 위에 수억의 잔물결로 햇살을 부려 놓을 때마다 그 모습에 그만 압도되곤 했다. 날마다 보는 광경이지만 그랬다. 우리는 날마다 해돋이를 보고 산책을 하면서 버텼다. 어서 전염이 시대가 가기만을.   


막 해가 올라오는 순간. 그때 하늘이 아름답다.

   

올해의 문장     


메리델 르 수에르의 "나는 나이 들수록 더 빛나는 사람이다."는 말을 좋아한다.

빛난다는 의미는 내적인 충만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이 문장에 마음이 가게 했다.  


에릭 와이너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우리는 나이 들수록 더 강렬한 형태의 자기 자신이 된다.”면서 기존의 성격적 특성을 더욱 증폭시켜 고집스럽게 변하거나 투덜대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지만 노화는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라도 늘 생각하고 있어야겠기에 저 문장을 새겼다.


최인철 님은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멋진 순간을 얼마나 가졌는가로 평가된다.”를 올해 지탱해 준 말로 뽑았다. “행복 천재들은 소소한 경험이라도 숨 막히는 경험으로 바꿔놓는다. 그 경험을 충분히 만끽하고 천천히 음미하는 것,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것, 그 경험을 맛볼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기는 것, 이 모두가 행복 천재들의 기술이다.”라는 그의 말도 기억하고 싶다.

 


올해의 습관

    

아침마다 <금강경>을 조금씩 읽는다.

내 친구 수연이는 하루에 두세 번을 독송한다는데 나는 겨우 두 세 꼭지 독송한다. 그것도 어떤 날은 넘기기도 한다. 독송하기 전에 합장한 후에 책을 들고 독송한다. 가족들이 있을 때는 크게 읽지 못한다. 아무도 없을 때만 큰 소리로 읽는다. 한쪽에 해설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읽는다.


여러 번 읽은 지금은 독음이 없는 원문으로 읽어본다. 물론 해설을 같이 곁들여 본다. 금강경을 읽을 때면 부처님의 공기가 내 주변에 느껴지곤 한다. 소리 내어 읽을 때는 더 경건해진다. 그 깊은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복이나 법은 실체가 없는 것이고 그저 이름이 그러하니라 하는 글을 읽으며 어떤 것에도 머물지 말고 탐하지 말아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금강경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봉은사 대웅전


저녁에는 <더 시크릿>을 읽는다.

한 번을 정독한 이후부터는 아무 데나 펼쳐서 한 장 정도 읽는다. 그래도 좋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어떤 사람이 평생 곁에 두는 책으로 <더 시크릿>을 말하던데 나에게도 오래 있을 것 같다. <금강경>과 <더 시크릿>은 어쩌면 정 반대편의 책일 수도 있다. <금강경>은 ‘모든 것은 무이며 집착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더 시크릿>은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라’에 가까운 책이기에 그렇다.


 모든 것은 내 마음가짐이며 그것이 우주에 전달되어 내가 마음먹은 대로 우주가 대답한다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만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 준다는 시크릿의 힘을 믿는다. 좋은 마음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을 불러오고 나쁜 기운이 내 안에 있으면 자꾸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그렇다. 간절한 결과가 방금 이루어진 것처럼 진짜로 느끼고 그 기쁨을 늘 기억한다. 그러면 나에게도 대답이 왔다.


딸이 비관적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렇게 말한다.

“좋은 것만 생각해. 지금 나에게 원하는 것이 오고 있다고 생각해.”

딸은 어두운 표정이다가 금세 밝아진다. “알았어, 엄마.” 나는 딸이 그렇게 말할 때 참 좋다.

시크릿의 힘이 크다고 부처님의 힘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부처님을 찾는다. 부처님은 나의 마음을 지탱해 주고 원하는 일을 고정해 준다. 내게 오는 좋은 일의 근원이라고 여긴다.


다이어리를 쓴다.

그날 스케줄을 써 놓아야 잊어버리지 않고 해낼 수 있다. 0.28 시그노 펜으로 빼곡하게 써 놓은 메이킹 메모리 노트. 다이어리를 쓰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쓰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감사한 일은 특별한 일도 있지만 정말 사소한 것도 쓴다. 하늘이 맑아 흰구름을 보았다는 것도 고마운 일 목록에 든다. 늘 같은 날 같지만 미세하게 들여다보면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다른 생각을 한 날들이다. 다이어리를 쓰면서 나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나의 가장 나쁜 습관인 미루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여전히 미루고 있지만. 그래도 다섯 가지를 계획하면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은 이루고 넘어간다. 그런 날들이 쌓이면 고쳐지겠지. 그렇게 작은 성공 경험이 모여서 뭔가 이뤄지는 것이니까.  

    


올해의 책      


올해 나는 책을 꽤 많이 읽었다. 뭘 하나 고르라 할 때 나는 결정 장애에 걸린 사람이 된다. 그러니 올해의 책은 이거다,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권을 모두 읽었다. 올해 목표로 했던 일인데 어쨌든 읽었다. 읽었다는 데 의미가 있긴 하지만. 이제 반 읽었다. 2022년에는 나머지 6권을 읽을 것이다.


최근에 읽은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과 <구멍가게, 오늘도 열었습니다>가 기억에 남는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망가진 책을 수선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썼다. 그 하나하나의 사연이 너무도 곡진하여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망가진 책을 보여주고 어떻게 수선할지 설명하고 그리고 완성된 그 모습이 궁금하여 애가 탈 때야 딱 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단아한 사진과 아름답게 탄생한 리미티드 에디션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도 그런 책이 없을까 고르다가 아이들의 일기를 제본한 것에 옷을 입혀주기로 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을 만들 생각을 하니 마음이 흐뭇해졌다.


<구멍가게, 오늘도 열었습니다>는 이미경 화가의 책을 읽고 그림이 너무나 예뻐 또 산 책이다. 이소영의 <식물과 나>를 만났을 때 기쁨이었다. 그를 오롯이 만나는 기쁨이었다. 오래된 구멍가게들을 그린 그림. 배경을 다 지우고 오롯이 가게만 드러난 그림은 정말 예쁘고 다정했다.  노란 장판을 깐 낮은 평상, 낮은 지붕, 나무 유리문, 굴뚝, 빗물받이, 대빗자루… 그런 것들이 세월의 더께를 안고 편안하게 앉아 있다. 어린 시절로 데려가는 아름다운 책이다.

조던 스콧의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요제프 차프스키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가 올해 내내 오래도록 자리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책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8, <윈터링>, <사람에 대한 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올해의 전시      


<미술과 문학이 만났을 때> 전시가 참 좋았다.

그날 비가 와서 비옷을 입고 갔다. 문학과 미술이 만나면 예술이 풍부해질 수밖에 없었다. 친구와 나는 스탠드 불빛 아래 앉아 시를 나직이 소리 내어 읽었다. 김기림의 글이 참 좋았다.       


나의 소년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길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도라갔다.

내의 첫사랑도 그 길 우헤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푸른 한울을 때 없이

그 길을 너머 강가로 내려갔다.

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저져서 도라왔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히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나려 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아렸다.

할아버지도 언제는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도라오지 않는 어머니, 도라오지 않는 계집애, 도라오지 않는 이야기가 도라올것만처름 멍하니 기다려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여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그 작품을 읽고 또 읽고 읽었다. 그 전시는 오래도록 남았다. 다시 가려했지만  전염병으로 인원을 제한하여 못 가고 말았다. 대신 도록을 샀다. 도록에 나온 작품들을 매일 읽었다. 거기 나온 시도 옮겨 썼다. 달튼 브라운 전시도 좋았다. 그의 ‘정적의 순간’은 좋아하는 그림이 되었다. 꼭 보고 싶었던 12월 31일까지 있다는 박래현 전시는 결국 못 보고 말았다. 도대체 예약 불가. 내년 1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가기로 했다.      


달튼 브라운, 정적의 순간, 2021



올해의 잊지 못할 일들     


그 어떤 일보다 딸의 결혼은 나의 인생에서 놀라운 일이었다. 그 어리던 딸이 저렇게 커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새 살림을 하고 가정을 꾸려 살아간다는 것이 기쁘고 황홀했다.  마스크 시대라 결혼식에 온 하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결혼사진을 찍었지만 그래도 하길 잘했다. 늘 혼자 현관에 서서 “나 갈게~~” 하던 딸이 이제는 든든한 남편과 함께 현관에 서서 “저희 갈게요.” 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흐뭇하다. 딸과 사위가 이쁘게 잘 사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나는 딸과 사위가 잘 될 것이라고 언제나 믿는다. 이제 그들에게 좋은 일만 생길 것이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일은 올해의 가장 슬픈 일이었다. 시어머님이 가시는  새벽에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집안에 흙이 가득하고 공사 중인 집에 들어온 것처럼 어수선하여  모습을 보며 상심했었다. 그러고 그날 오후 돌아가셨다. 장례식 날은 정이월이었지만 바람   없이 따스한 봄날 같았다. 일하는 분들과 조문객들 모두 불편함 없이 일을 치렀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 아버님은  우리를 살피시는  안다.      



올해 나는 유난히 약력이 길어진 해였다. 2018 2 28일을 마지막으로 학교생활을 정리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약력에 썼다. 약력이랄 것도 없다. 작가로서 활동한 사소한 이력이다. 이곳저곳 공모에 도전하였고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하고 깨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글을 단련하는 기회가 되었다. 2021 아르코 창작지원을 받게  것은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내년 어린이날이 오기 전에 책을 내기로 했다.


 제주어로 써서 모아둔 작품을 푸른향기 한효정 대표님이 응모해 주셔서 2021 출판콘텐츠에 당선이 되어 책을 내게 되었다. 8월에 원고를 다듬어 10월까지 마무리하고 바쁘게 책을 만들어냈다. 제주어를 지켜내는  힘이 고자 하는 작가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을 느꼈는데  숙제를 해결한  같아 조금은 뿌듯하다.


 내게 다가오는 좋은 일에 나는 그저 감사한다. 감사할 일이 많으니  감사하게 되고 좋은 일은 눈사람 굴리듯  커진다. 남에게 베풀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니 베풀면서 살려고 한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살피지 못한 것들, 소홀한 관계, 이루지 못한 일들이 아쉽기도 하고 후회가 없진 않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가게 두기로 했다. 내년에는 더 나아지길 바라면서 좋은 것들만 기억하기로 했다. 힘든 이 시기도 다 지날 것이다.


 한창 키가 자랄 중학교 때, 한 해에 11센티미터가 자라기도 했다. 올해 나는 그 중학생 시절처럼 그 어느 때보다 내면이 성장한 해였다. 내년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일현 선생님의 말씀처럼 10년이면 얻을 수 있다는 ‘나만의 창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기 위해 오늘도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두에게 좋은 일만 있기를!

새해에도 건강하고 복된 날들이길!

모두 행복하세요!


카페 나무새 안의 멋들어진 등


2021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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